다시 기술 열망의 사이클이 시작될 조짐이다. 이번엔 ‘의도 경제(intention economy)’라는 이름이다. 주목 경제의 폐단과 폐해를 극복하고 소비자 주도성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안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거대 언어모델로 재탄생한 AI 검색이다. 검색창이 이전보다 훨씬 길어지면서 소비자 의도 분석이 훨씬 쉬워졌다. 현재 오픈AI를 필두로 구글, 퍼플렉시티, 네이버에 이르기까지 대형 빅테크 대부분이 AI 검색에 뛰어들 채비를 마쳤다. ‘차세대 검색 기술’로 진입하기 위한 스타트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한 편이다. 소비자들의 주목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개인정보를 약탈해왔던 ‘주목 경제’ 기술 메커니즘과 절연할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지금 서 있다.
AI 검색은 소비자들의 ‘주목’보다 ‘의도’에 집중한다. 검색창에 입력하는 20단어 이상의 긴 질문을 분석해 소비자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한다. AI 검색은 시맨틱 라우터와 같은 기술로 무장해 소비자들의 실제 의도를 감지하고 추론한 뒤 가장 적합한 결과물을 AI로 생성해 보여준다. 의도 경제는 검색창에 입력하는 질문의 길이가 획기적으로 길어지면서 현실에 가까워졌다. 이 과정에서 공급자들은 소비자들의 의도에 적합한 제품,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어뷰징’으로 상징되는 여러 조작적 기법으로 소비자들의 주의를 끌어모았던 얄팍한 상술은 AI 검색 앞에서 무력화한다. 제품 및 콘텐츠 공급자로서도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 이득이다.
의도 경제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주목 경제가 한창 꽃피울 무렵인 2006년 등장한 디지털 경제 이론이다. 소비자들의 주목과 개인정보 갈취를 견인할 수밖에 없는 ‘주목 경제’에 대한 비판과 성찰로 시작됐다. 이를 처음 주창한 독 설스(Doc Searls)라는 인물은 의도 경제의 시대가 오면 “고객은 그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그들이 원하는 것, 원하는 방식, 원하는 장소와 시기, 그리고 금액까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장 주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건은 있다. 개인정보의 모든 통제권을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수단이 마련돼야만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가 약관을 제안하고 공급자가 서명해야 하는 ‘주객전도’의 계약구조가 가능해진다. 고객 커먼스(Customer Commons)라는 비영리 조직이 십수 년째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의도 경제는 누가 봐도 이상적인 경제 구조다. 소비자가 공급자와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데다 그들의 진정한 의도 앞에 공급자를 줄 세우는 풍경도 가능해서다. AI의 진전으로 기술적 조건은 거의 완비된 상태다. 그저 단서 조항만 충족된다면 AI 검색이 펼쳐놓은 내일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허나, 역사적으로 늘 그래왔듯,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열망으로 시작해 실망으로 귀결된다. 의도 경제 또한 주목 경제처럼, 이윤을 향한 욕망과 권력에 의해 곧 일그러질지도 모른다. 또 한 번 속는 셈 치고 다시 새 기술에 희망을 품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