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발표…마지막 시즌 16년 만의 우승으로 해피엔딩 여부 관심
‘배구여제’ 김연경(37·흥국생명)은 지난 2월 13일 깜짝 발표를 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다. 성적과 관계없이 은퇴할 생각이다.”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였다. 조짐은 있었다. 직전 경기인 9일 페퍼저축은행과의 경기 종료 후에 열린 김해란의 은퇴식에서 선수들을 대표로 전체 사인이 그려진 유니폼 액자를 전달했던 그는 “나도 해란 언니를 따라가겠다”라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김연경이 은퇴를 고민하는 시기인 만큼 막연한 은퇴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경기에서 김연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퇴를 발표했다.
사실 결심을 한 지는 꽤 됐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마음을 굳혔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김연경은 진작 자신의 유튜브 채널 ‘식빵언니’에 올릴 영상도 찍어둔 상태였다. 은퇴를 밝힌 다음 날 이 영상이 업로드됐고, 김연경의 그간 소회가 공개됐다.
“최고의 기량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었다”
은퇴를 결심한 시점에 대해서는 “매년 고민했다”라며 “팀도 개인적인 성적도 계속해서 좋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아깝지 않겠나, 이르지 않겠나라는 이야기를 계속했고, 가족들도 뭔가 조금 더 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해서 더 했다. 지금은 제가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들이 커져서 은퇴를 생각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것들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던 김연경은 “큰 부상은 아니지만, 관절이나 이런 것들이 아프면서 힘들 것 같았다. 최고의 기량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그러려면 올해가 맞는 거 같다는 생각에 결심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제 김연경이 마지막 시즌에서 그토록 바라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흥국생명은 지난 2023~2024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에 그쳤다. 김연경도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독주 체제로 정규리그 1위도 달성했다. 김연경의 생일인 2월 26일 정관장-GS칼텍스전에서 정관장이 패배하면서 흥국생명이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제, 김연경의 진정한 ‘라스트댄스’가 시작된다.
지금은 배구계를 주름잡고 있지만, 김연경이 처음 배구를 시작할 때부터 슈퍼스타였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김연경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키가 거의 크지 않았다. 수원한일전산고등학교(현 한봄고등학교) 1학년 시절까지도 키가 170㎝가 되지 않았다.
작은 키로는 공격수로 뛸 수 없으니 리베로나 세터 훈련을 더 많이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성장기를 맞이하며 키가 자라기 시작했다. 고교 3년 동안 22㎝가 자라면서 공격수로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김연경은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까지 능한 완성형 선수가 됐다.
고교 배구계에서도 입소문이 나 2005년 11월에는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당시 김연경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김연경은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에서 주전으로 모든 세트에 출전했고, 공격 득점 3위에 오르는 활약을 했다.
김연경은 2005년 10월 열린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 영입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김연경은 정규리그 득점(756점)과 공격(성공률 39.68%), 서브(세트당 0.41개) 등 7개 부문 1위에 올랐다. 흥국생명은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김연경은 데뷔 첫해에 정규리그 MVP, 챔피언 결정전 MVP를 비롯해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을 휩쓸었다.
다음 시즌에도 활약을 이어간 김연경은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흥국생명은 다음 시즌에도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김연경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2008~2009시즌 흥국생명은 3위에 그쳤지만, 김연경은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으로 팀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려놓았고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일본·튀르키예 등서 월드스타로 활약
김연경에게 한국 무대는 너무 좁았다. 그리고 2009년 일본 여자 배구팀 JT마블러스와 2년 계약을 맺으면서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에서도 김연경은 ‘100년에 한 번 나올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는 튀르키예 리그에서도 활약을 이어갔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 그것도 한국 선수가 유럽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김연경은 그런 시선을 깨고 ‘월드 클래스’로서의 활약을 선보였다. 유럽 진출 첫해 팀을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해에도 MVP와 득점왕을 동시에 수상했다.
2017~2018시즌은 중국 리그에서 한 시즌을 뛰었고, 그다음 해에 다시 튀르키예 리그로 복귀해 엑자시바시 소속으로 활약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엑자시바시와 계약 해지를 하던 중 김연경은 국내 복귀를 택했다.
해외 무대를 오갔던 시절인 2020~2021시즌에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던 김연경은 복귀 후 첫 시즌인 2022~2023시즌, 2023~2024시즌에도 다시 MVP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김연경이 국내 무대에서 뛰는 동안 MVP를 받지 못한 건 2008~2009시즌이 유일할 정도로 매 시즌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다.
김연경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대표팀의 부름에 계속 응했다.
프로 데뷔 첫 시즌을 마친 후 무릎 수술을 받았던 김연경은 재활 중에도 대표팀에 차출돼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에서 에이스로 나섰다.
프로 2년차에도 무릎 수술과 재활을 거친 김연경은 또 대표팀 경기를 소화했다. 이렇다 보니 다음 해에도 또 무릎이 탈이 났고, 수술을 받았다. 이 여파로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에 참여하지 못했고, 한국 여자배구는 본선에 실패했다.
그리고 김연경은 다시 강해져서 돌아왔다. 2009 FIVB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다음 해 일본에 진출한 뒤에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은메달에 기여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 예선에서는 한일전 22연패의 사슬을 끊어내며 대표팀을 8년 만에 본선에 올렸고, 모든 경기를 끝까지 뛰어 36년 만의 올림픽 4강 진출을 일궈냈다. 김연경은 국제배구연맹에서 선정한 런던올림픽 MVP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금메달을 한국에 안겼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내며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2020년에는 복근 부상을 안고 한국의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에서는 다시 4강을 이끌어 한국에 배구 붐을 일으켰다. 이 대회를 끝내고 김연경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김연경은 화려한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김연경의 소속팀 흥국생명은 이제 모든 신경을 챔피언결정전에 집중한다. 김연경도 정규리그 남은 기간 최대한 체력을 비축할 예정이다.
김연경의 마지막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16년 전이다. 최근 2시즌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올랐으나 아쉽게 준우승으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이제 김연경은 18년 만에 통산 3번째 통합 우승의 기쁨을 기다린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코트와 작별하기를 바란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