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지프스>·연극 <전락> 등
알베르 카뮈(1913~1960)의 대표 작품을 뮤지컬과 연극으로 동시에 접한 것은 처음이다. 소설 <이방인>과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모티브로 한 뮤지컬 <시지프스>, 미완성 유작 <최초의 인간>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 <퍼스트 맨: 카뮈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이하 퍼스트 맨), 후기 소설 ‘전락’을 각색한 연극 <전락> 등이 그러하다. 작년 말 한 달가량 상연된 연극 <정의의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연말연시 공연계는 온통 알베르 카뮈다.
우리는 왜 지금 이 시점에 카뮈 작품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일까. 해답은 ‘부조리(不條理)’에 있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는 ‘그것은 모순이다’”라고 말한다. 아울러 “이 정신과 이 세계는 서로 부둥켜안지 못한 채 서로 힘을 겨루듯 떠밀며 버티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부조리한 상태’에서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반항과 직시는 바로 이런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카뮈식 해법이며 지금 한창 상연 중인 작품들이 구체적인 예시들이다.
뜨거운 태양 직시하기
창작 초연 뮤지컬 <시지프스>(추정화 작·연출, 허수현 작곡·편곡·음악, 김병진 안무, 김미경 무대, 백시원 조명,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작)는 다 무너진 세상에 남은 생존자들 이야기다. 폭력의 악순환, 이기주의와 욕심으로 공멸한 미래, 죽을 날만 기다리던 이들은 한때 열정적으로 활약한 배우들이다. 폐허 더미에서 찾아낸 카뮈의 <이방인>에 다시 빠져든 이들은 결국 굴러떨어지더라도 매일 언덕 위로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자신들만의 연극을 시작한다. 언노운(이형훈·송유택·조환지 분)이 주인공 뫼르소로, 포엣(정다희·박선영·윤지우 분)과 클라운(정민·임강성·김대곤 분), 아스트로(이후림·김태오·이선우 분) 등은 그의 주변 인물들이 되어 극중극으로 들어간다.
평범한 직장인 뫼르소는 요양원에 방치했던 어머니 부고를 받고 장례식에 왔다. 살인적 열기 탓인지 어머니가 어제 죽었는지 오늘 죽었는지도 모른다. ‘뜨거운 태양’으로 인한 어질하고 매스꺼운 감각에만 빠져 있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연이어 여자친구를 사귀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던 중 친구를 공격한 아랍인을 죽였다. 총을 여러 발 쏜 이유가 강렬한 태양 때문이라고 증언한 그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어머니 죽음과 우발적인 살인에 이어 자신의 죽음까지 모두 태양과 연결된 부조리함이다.
뫼르소의 삶을 집어삼킨 뜨거운 태양은 뮤지컬 <시지프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발광다이오드(LED) 패널 100여장으로 무대 전면을 완전히 채우고 조명 디자인까지 덧대어 구현한 ‘뜨거운 태양’은 무대뿐 아니라 객석까지 완전히 장악해버린다. 소극장 무대 디자인으로서는 파격적이다. 겉으로는 타오르는 태양이지만 맥락과 의미상으로는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쩌지 못하는, 부조리한 세상이다. 희망과 용기를 상징하는 보편적인 태양과는 상반된다.
작품은 중반 이후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의 성찰과 부조리함의 대비를 록 사운드와 안무, 군무로 표현한다. 무기력과 허무주의에 빠져 침몰하는 뫼르소를 건져낸 것은 일차적으로 그 자신이다. 부조리한 자신의 상황을 직시한 순간 솟구치는 ‘반항’ 덕이다. 어머니가 왜 죽음 직전에도 남자친구를 사귀며 매일 열심히 살았는지 비로소 이해한 것이다. 뮤지컬 <퍼스트 맨>(손효원 연출·고야경 작·17Again 작곡·박영신 음악·남경식 무대·노명준 조명)에 등장하는, 카뮈 본인이기도 한 이방인(정동화·유태율·현석준 분) 역시 그러하다. 어머니 카트린(안유진·전성민 분)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부조리한 자기 죽음을 통찰하기에 이른다.
<퍼스트 맨>은 실제 카뮈 어머니 카트린과 그의 미완성 유작 ‘최초의 인간’에 등장하는 극 중 어머니 루시를 패치워크하며 시공간을 넘나든다. 그의 영혼이 미완성 유작 속 주인공이 되어 실제 자신의 어머니 카트린을 만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된다. 전반부는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구체적인 재연이다. 아버지 앙리(전우형·김우성 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자마자 전사한 후 너무 가난해 꿈도 꿀 수 없었던 삶과 이를 폭력적으로 극복하려던 외조모 샤를로트(장예원·박세화 분)에 대한 원망과 화해가 덧대어졌다. 자신을 발탁해 고등교육을 시켜준 스승들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부조리 철학이 등장한다.
진창에 빠진 나를 구원하는 나
알베르 카뮈의 저작은 ‘부조리’에서 출발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직시’하고 ‘반항’하며 연대를 통해 ‘사랑’을 재인식하는 과정이다. 그의 미완성 유작 소설 <최초의 인간>을 모티브로 한 <퍼스트 맨>은 이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들여다보기라 할 수 있다. 43세에 노벨상을 수상한 카뮈의 작가이자 사상가의 삶을 담아낸 넘버 ‘카페 드 플로르’와 ‘정의에 대하여’는 카뮈에 대한 세상의 흠모와 질시를 응축하고 있다. 그의 삶은 농담처럼 가장 부조리한 죽음이라고 강조했던 교통사고로 마침표를 찍고 만다. <퍼스트 맨>이 카뮈의 삶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보다 가장 부조리한 죽음에 주목한 이유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카뮈의 영혼을 마주한 어머니 카트린이 토해내는 슬픔과 염원의 ‘어찌 내게만’이다. “내 눈을 가져가 더 살다 가거라. 내 손을 가져가 내 다릴 가져가 더 멀리 도망쳐 더 쓰다 오거라”는 카뮈의 죽음에 대한 후세의 적극적인 애도다. <퍼스트 맨>에서 해석한 ‘최초의 인간’은 결국 ‘어머니’임을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카뮈의 후기작 <전락>(轉落)을 원작으로 한 1인 연극 <전락>(손상규 각색·연출, 박지혜 드라마투르기, 김형연 조명, 양손프로젝트 제작)은 앞의 두 작품과 약간 결이 다르다. 잘나가는 엘리트 변호사 클레망스로 분한 손상규 배우는 중극장 규모 명동예술극장 넓은 무대를 의자 2개만 놓고 종횡무진으로 움직인다. 그의 손짓과 발짓에 무대에는 암스테르담과 파리 정경이 펼쳐진다. 아름답고 고독한 카페와 숙소로 변모하는 것도 순식간이다. 클레망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대상은 관객이다. 그의 자연스러운 마임과 대화법은 관객 내면에 들어와 양심의 근육을 쥐락펴락 주무르게 이끈다.
스스로 ‘고해판사’라 명명하고 양심에 저해되는 행동에 대해 매번 돌아보고 속죄하지만, 그는 자기애가 강하고 방어적인 사람이다. <전락>은 부조리가 생성되는 지점들을 인식하고 이에 반응하는 관객의 사유를 통해 ‘삶은 부조리’라는 카뮈의 문제 제기를 도돌이표처럼 재확인하는 작품이다. 세 작품은 ‘부조리한 세상’에 침몰당하지 않도록 ‘나’를 돌아보고 제련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일단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반항에 대한 명분이 드러나고 직면한 현실을 살아갈 에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뮤지컬 <시지프스>는 “드럽게 힘든데 드럽게 행복하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 데도 후회없어!”라는 탄성으로 마무리 짓는다. 연극 <전락>은 상연이 끝났다. <시지프스>는 3월 2일, <퍼스트 맨>은 3월 30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