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첨단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 과거의 영광

최원균 무비가이더
2025.02.24

희미하게 잊히던 <퇴마록>이 난데없이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한다. 반가움과 의아함,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태적 선택은 원작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까지 극장으로 흡수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는 포석이라 읽힌다.

/로커스

/로커스

제목: 퇴마록(Exorcism Chronicles: The Beginning)

제작연도: 2025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85분

장르: 애니메이션

감독: 김동철

출연: 최한, 남도형, 정유정, 김연우

개봉: 2025년 2월 21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1993년 PC통신 하이텔을 통해 인터넷 소설로 첫선을 보인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은 1990년대 대중문화를 거론하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문학과 영화를 위시한 창작 분야에서 아직 판타지 장르가 소외당하던 당시의 문화 토양에서 <퇴마록>이 불러일으킨 인기와 호응이란 대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약 8년에 걸쳐 구판 단행본 기준으로 20권이나 이어지며 누적 판매량 1000만부를 돌파할 정도였으니, 당시엔 한국 어디를 가든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당연히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믹스(Media Mix·하나의 상품 또는 미디어 소스를 여러 형태로 확장, 변형해 판매 및 판촉하는 것)가 시도됐지만, 대부분이 완성되지 못한 채 불발되거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1998년 여름 공개된 동명의 장편극영화가 유일하게 기억되고 있다. 박광춘 감독이 연출하고 안성기, 신현준, 추상미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서울 기준으로 41만9000명의 관객이 들어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관객 평가와 비평 면에서 혹평이 이어져 <퇴마록>의 유일한 파생 작인 동시에 최악의 흑역사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이후 많은 사람의 기억에서 과거의 영광 정도로 희미하게 잊히던 <퇴마록>이 난데없이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돼 개봉한단다. 반가움과 의아함,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이 당연하다.

장대한 여정의 서막을 여는 이야기

영화의 내용은 원작 소설의 전개를 따르고 있는데, 4명의 주인공인 박윤규 신부, 이현암, 장준후, 현승희가 만나게 되는 처음 에피소드인 ‘하늘이 불타던 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과거에 의사였지만 어린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윤규는 오랜 방황 끝에 신부가 된다. 하지만 구마 의식을 행하며 교리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파문을 당하고 홀로 외롭게 악마들과 싸워나간다. 어느 날 해동밀교의 장 호법이 그를 찾아와 세상에 혼돈을 몰고 올 서백옥 교주의 계략을 전하며 도움을 구한다.

한편 동생의 복수를 위해 무공을 연마하다가 되레 몸 안의 기를 다스리지 못해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이현암은 이를 치료하기 위해 해동밀교로 향한다.

그렇게 우연히 만나게 된 박 신부와 현암은 극악무도한 서 교주의 야욕을 무너뜨리고 볼모가 된 예언의 아이 장준후를 구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태적 선택은 원작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까지 극장으로 흡수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는 포석이라 읽힌다. 이외도 제작진은 여러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일단 시대상의 적극적 반영과 캐릭터들의 변화가 그렇다. 배경을 현재로 옮겨 배경이나 소품들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1990년대에는 없었던 스마트폰의 등장이 대표적인 예다.

인물들 역시 요즘 관객들의 선호를 배려해 시대적 조류를 고려한 외모와 개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고 한다.

요즘 관객들을 겨냥한 다양한 시도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보통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화에 삽입되는 대사와 더불어 소리 정보가 추가된 SDH 자막이 아닌 대사만을 표기한 일반 자막이다. 이전에 부분적으로 자막이 쓰인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 영화에서 전편에 걸쳐 대사 자막을 제공하는 작품은 <퇴마록>이 최초다.

언론 시사뿐 아니라 정식 개봉 때도 적용되는지, 또 어떤 이유인지 궁금해 홍보사에 질의했고, 제작사 측의 공식 답변을 전달받았다.

일단 개봉 시에도 같은 자막 버전으로 상영이 된다고 한다. 대사 자막을 삽입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액션 장르의 특성상 효과음과 음악에 대사가 묻히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는 내부 시사 및 모니터링 시사를 통해 도출된 의견을 수렴한 것이란다. 두 번째는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한 만큼 해동밀교나 퇴마 의식에 관련해 빈번하게 등장하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용어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이해를 돕기 위함이라고 한다.

여러 면에서 새로운 노력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한국 영화도 자막 시대?

/dprime.kr

/dprime.kr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년들에게도 새삼스럽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극장의 영화 자막은 화면 오른쪽에 세로로 배치됐다. 사실 극장 자막뿐만 아니라 서적, 신문, 문서 등 활자매체 전반에 가로쓰기가 대세가 된 것도 그보다 10여 년 앞선 1990년대라고 기록돼 있으니, 격세지감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극장 자막이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늦게까지 목격할 수 있었던 세로쓰기 형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극장 자막이 오른쪽 세로쓰기에서 아래쪽 가로쓰기로 변화하는 데 극장 시설의 변화가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좌석 단 차가 높아지며 화면이 앞사람에게 가리는 경우가 적어졌고, 이후 아래쪽 가로쓰기 자막은 보편화했다.

외국 영화는 자막이 당연하지만, 한국 영화에서 자막을 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10년 초부터 시작된 ‘배리어프리’ 영화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AD·Audio Description)과 더불어 청각장애인을 위한 대사와 소리 정보가 추가된 SDH(Subtitles for the Deaf or Hard-of-Hearing) 자막을 삽입한다. 하지만 별도의 공정을 거치는 작업이 필요해 개봉과 시차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2023년 작품 <밀수>와 <더 문>은 개봉부터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공한 첫 사례라 보도됐다.

최근 들어 일반 상영 영화에서도 한글 자막이 활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22년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은 일부 전투 장면에서 일본어뿐 아니라 한국어 부분에도 한글 자막을 제공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최근 유튜브, OTT 플랫폼 같은 매체나 예능 프로그램 편집을 통한 자막의 다채로운 활용과 편의성을 체감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관객들의 변화도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기지 않을까 싶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