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만든 대이변…유승민이 바꿀 ‘체육계의 미래’

2025.02.09

‘이기흥 1강이고 잘해야 2위’ 예상 뒤엎은 역전극으로 대한체육회장에

체육인들 변화의 열망 담겨 …“일 잘하는 대한체육회장으로 남고 싶다”

유승민 후보가 지난 1월 14일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뒤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후보가 지난 1월 14일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뒤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14일 대한체육회장 투표가 끝날 때까지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43)이 당선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승민 캠프 사람들, 캠프의 선거 유세를 바로 곁에서 계속 지켜본 사람 정도만 빼고 거의 모두 이기흥 현 회장의 우세를 점쳤다.

선거는 조직으로, 자금력에서 앞서야 이길 수 있다는 일반론. 이번 선거도 그럴 줄 알았다.

이기흥 회장은 지난 8년 동안 회장직에 있으면서 다진 체육계·정치계·종교계 조직력에 자금력까지 앞섰다. 이기흥 후보 측도 최소 40% 득표로 압승을 예상했다.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 블랙야크 회장,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도 인적 네트워크, 자금력, 조직력 우위를 근거로 승리를 기대했다. 다른 후보들도 저마다 승리를 기대했지만, 이기흥 1강 체제는 부인하지 못했다.

취재진의 예상도 그랬다. 이기흥 당선이 유력하며 강태선과 유승민 중 누가 2위에 오를까 정도만 달랐다. 젊은 유승민이 가능하다면 이번에 ‘압도적인 2위’를 해야 다음 선거에서 재도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비슷했다. 투표일은 평일, 투표 시간은 한낮에 겨우 150분. 조직력과 자금력의 우위가 더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막상 개표해보니 선거 예상은 모두 뒤집혔다. 이기흥 후보는 유효표 1209표 중 379표(31.3%)를 얻어 2위에 그쳤다. 1위는 417표(34.5%)를 받은 유승민 후보 몫이었다. 대이변이었다. 유 당선인은 “진정성을 믿고 끝까지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한 체육계 인사는 “선거 관전평 대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나에 대해 반성문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마음을 낮췄다.

‘고공 유세’ 대신 바닥과 현장 샅샅이 누벼

유승민 캠프에서는 적게는 30명, 많게는 70명 정도가 뛰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30~40대였다. 당선 후 논공행상에서 소위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유승민 캠프의 한 인사는 “인품, 리더십, 부지런함, 강인함 등을 겸비한 유승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며 “모두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직 한국 체육의 미래를 바꿔야 한다는 신념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유 당선인도 선거 전후 “당선 후 ‘자리’를 주기로 약속하고 함께 뛴 사람은 없다”며 “모두 내 진정성을 보고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4일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한 유승민 후보가 소감을 밝히기 전에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14일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한 유승민 후보가 소감을 밝히기 전에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 당선인은 고위층을 만나 표를 모아 달라는, 이른바 ‘고공’ 유세를 하지 않았다. 대신 바닥, 현장을 샅샅이, 겸손히 누볐다. 국내 체육계는 대한체육회, 17개 시도체육회, 228개 시군구 체육회로 구성된다. 유승민 캠프 관계자는 “180여개 시군구 체육회를 직접 방문해 지지를 호소했다”며 “저조한 투표율 속에서도 승리한 비결은 시군구 체육회 지지가 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승민 당선인 지지층은 선수, 지도자 등 젊은 체육인들이다. 선거가 열린 1월은 다수 선수, 지도자가 해외로, 지방으로 전지훈련을 하러 가는 시기다. 유승민 캠프는 “투표율이 70%는 넘어야 승산이 높다고 봤다”고 말했다. 실제 투표율은 53.9%밖에 안 됐다.

종목 단체 소속 임원과 선수, 지도자들도 투표권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유승민 캠프는 68개 종목 직접 체험 카드를 내밀었다. 수상스키 등 물리적으로 어려운 소수 종목을 제외하고 유 당선인은 거의 모든 종목을 직접 체험했다. 쫄쫄이바지를 입고 루지를 탔고, 역기도 들었다. 체육회장 후보가 군소종목까지 직접 해보면서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은 선거인단에게 감동을 줬다.

선거인단은 2244명이다. 제한된 유세 기간 이들을 1 대 1로 모두 만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들다. 유승민 캠프는 온라인 1 대 1 전략으로 선거인 마음을 공략했다. 유 당선인이 선거인단 한 명 한 명에 세배한 뒤 선거 참여와 지지를 호소하는 개별 영상을 찍어 2244명에게 보냈다. 체육회장 후보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영상을 받아본 선거인들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유 당선인은 “세배를 아마 3000번은 한 것 같다”고 회고했다. 단순히 ‘무늬만’ 인사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 후보는 이들에게서 들은 의견을 반영해 공약을 만들어 차례로 발표했다. 머리로 알고 있는 공약을 미리 공개한 뒤 지지를 호소하는 기존 방식과 달랐다. 외진 곳에서 조용하게 일하는 ‘작지만 소중한’ 체육인들은 자신의 말이 공약에 반영되는 꿈같은 경험을 했다. 캠프 인사는 “하루 1000㎞씩 이동하면서 매일 8곳 이상을 방문했다”며 “진정성이 통했다”고 말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이 지난 1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이 지난 1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네거티브 자제로 폭넓은 지지 이끌어내

캠프 조직력도 견고했다. 유승민 캠프 ‘위드 유’는 원팀(한팀)이었다. 캠프 관계자는 “단 한 번도 불화가 없을 정도로 팀워크가 좋았다”며 “즐겁게 행복하게, 젊은 패기, 강한 체력으로, 같은 마음으로 밤낮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네거티브 유세를 자제한 것도 긍정적 효과를 냈다. 다른 후보들은 대체로 이기흥 후보를 향해 날 선 비판을 날렸고, 유 후보도 이기흥 후보에 대해 토론회에서는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유 후보는 토론회 이외 시간에는 모든 후보를 대상으로 네거티브 공략을 펼치지 않았다. 선거 막판 몇몇 후보가 자신에 대해 펼친 네거티브 공세에는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적절하게 대응했다. 반격하거나 역공을 벌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체육계 관계자는 “상대의 잘못을 냉철하게 지적하고 비판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요즘 체육계 선거가 정치판처럼 너무 혼탁해졌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정정당당, 노력, 진정성, 현장 중심, 공정함 등을 몸소 실천한 유승민 전략이 폭넓은 지지를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유 당선인은 이번을 포함해 인생에서 세 차례 역전극을 썼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세계 최강 왕하오(중국)를 꺾고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따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선거에 출마해 부지런하고 진정성 있게 움직이면서 전체 2위로 당선됐다. 유 당선인은 “상대로 보면 왕하오가 가장 강했고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따지면 이번 선거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유 당선인은 ‘기적의 사나이’로 불린다. 유 당선인은 “IOC 위원으로 일하면서 ‘하드 워커’라는 평가를 받았고, 일 잘하는 대한체육회장으로 남고 싶다”며 “‘정말 부지런했다. 체육인들을 위해 한 몸 불태웠다’는 평가를 받는 회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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