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남북 긴장 고조시켜 국가 위기 초래했다’ 판단
“국방부에 공문도 보내고, 구두로도 얘기하고, 찾아도 가고 했죠. 그때(계엄 전)는 자기들(국방부)도 어쩔 수 없다고, 위에서 시킨다는 식으로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 위도 지금 없잖아요. 없는데도 계속하고 있어요. 이제 와서는 누구 핑계를 댈지 모르겠어요.”
한 접경지역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계속되는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그에 대응하는 북한의 괴소음 공격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의 말은 몇 가지 사실을 함축한다. 첫째, 접경지역 주민들만이 아니라 복수의 지자체도 정부에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청해왔다는 것이다. 둘째, 일부 지자체에서도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권력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인식했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권한이 중지된 이 시점까지도 접경지역의 남북 소음 전쟁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전후해 접경지역을 둘러싼 상황은 사뭇 달라졌다.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끊겼고, 북한도 오물풍선 부양을 멈췄다. 그런데도 오물풍선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대북 확성기 방송은 멈추지 않고 있고, 북한의 괴소음 방송도 벌써 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수면장애는 일상이 됐다. 그간 달라진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소음 전쟁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비상계엄을 위해 남북 긴장을 고조시켰다는 ‘북풍 공작 의혹’을 국방부가 일축했어도 접경지역 주민들이 윤 대통령을 외환죄로 고발한 까닭도 짚어봤다. 접경지역 주민들을 희생양 삼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만이 아니라 접경지역의 피해를 전제하는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도 원인이 됐다.
역효과에도 확성기 방송 지속
접경지역에서는 여전히 북한의 괴소음이 온종일 울린다. 지난해 7월 시작됐으니 6개월째다. 한쪽에선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5월 초)→북한의 오물풍선 부양(5월 말)→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6월)→북한의 괴소음 방송(7월). 괴소음 방송에 시달린 접경지역 주민들은 국방부에 ‘우리가 먼저 방송을 끄고 북한의 대응을 살펴보자’고 요청했다. 지난해 접경지역 지자체들도 국방부에 공문 등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나 대북 확성기 방송은 계속됐다.
지난 6개월간 상황 변화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단적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의 원인이 됐던 북한의 오물풍선 부양은 지난해 11월 28일을 끝으로 중단됐다. 그에 앞서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도 멈췄다. 북서풍이 불어오는 겨울철에는 북쪽으로 전단을 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서해 최접경지인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의 주민 안미희씨는 “대북전단을 안 보내니 오물풍선도 안 오지 않나. 우리가 먼저 방송을 끄면 그쪽도 안 할 수 있다. 북한이 여기 사람들 못살게 굴려고 하는 걸 알면서도 군이나 정부는 강행하고 있다”고 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도 부인할 수 없는 주요 변곡점이었다. 계엄 이후 통일부의 태도 변화가 대표적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계엄 이후인 지난해 12월 16일 국회 현안보고에서 “대북전단 문제에 있어서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상황 관리 노력을 경주해 나가고자 하고 있으며, 지난 (12월) 12일 전단단체들에게 신중한 판단을 요청한 바 있다”고 했다. 이는 계엄 이전 통일부의 태도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김영호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통일부가 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고 “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에 접근하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도움이 된다”며 대북전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도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속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1월 14일 확성기 방송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의에 “우리 군 대북심리전 방송은 전략적·작전적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작전을 시행 중”이라고 답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소음 피해가 장기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6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내놨던 답변을 7개월째 반복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분단국가에서 심리전을 할 수는 있다. 일단 그 심리전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따져본 바가 없다. 더구나 북측의 맞대응으로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역효과가 있다면 그만둬야 맞다”고 했다.
왜 이 피해는 당연한가
접경지역 주민 등 1400여명은 지난해 12월 26일 북한을 통해 국가 위기를 초래한 혐의가 있다며 윤 대통령 등을 외환죄로 고발했다. 지난해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 남북의 긴장 고조가 비상계엄을 위한 ‘빌드업’(쌓아올리는 과정)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은 수사기관의 수사 등을 통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이른바 ‘북풍 공작 의혹’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 1월 13일 입장문을 내고 “정상적인 군사활동과 조치”라며 일축했다.
그런데도 의혹을 바라보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상적인 소음 피해 이외에도 남북 긴장 고조에 심리적·경제적 피해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 이후 북한이 우리 쪽 접경지역과 연결된 도로·철도를 폭파하면서,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쪽 주거지와 농지 출입이 통제되고 관광객의 발길도 끊겼다. 파주 접경지역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윤설현씨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정권을 위해서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전쟁도 불사했다는 것 아니냐. 법적으로 처벌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사는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민통선 안쪽에서 농사를 짓는 김상기 민북지역파주농민회 사무국장은 “접경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자기 땅에 갈 때도 통행이 제한되고 개발도 제한된다. 여기 사는 분들은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 일부를 국가에 반납하며 살아왔다. 지난해 왜 이렇게까지 악화되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처벌이 문제가 아니라 정확히 조사해 그간의 과정을 백일하에 드러내야 한다. 더 나아가 앞으로는, 미래에는 어떻게 할 건지 되짚어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정권에 따라 남북 평화를 지향할 수도, 남북 대결을 지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결을 지향한다면 당연히 강화도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적잖은 국민의 피해를 전제하게 된다. 국가안보 차원이니 양보하라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보상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논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