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대통령 윤석열의 가벼움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2024.12.09

지난 11월 7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기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11월 7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기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정치인의 기질은 흔한 미디어 상품이다. 정당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언론은 그의 말투, 성격, 첫인상 따위를 분석하기에 바쁘다. 물론 이런 분석은 한계가 명확하다. 정치인의 행동에 개입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고, 그의 사람됨보다 해당 시기의 정치적 상황, 주변의 권력 구조, 시민의 의지와 요구 등이 더 결정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일종의 예외로 보인다. 지난 11월 7일에 열린 기자회견을 본 후, 적지 않은 시민이 비슷한 질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실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가 막힌 상황은 무엇보다 윤석열이라는 사람 개인의 성격과 기질에서 비롯하는 것 아닌가?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자기 발밑만 바라보며 신소리를 해대는 예외적인 인물이 이런 난장판의 첫 번째 원인 아닐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국식 위계 구조의 특징을 살펴보자.

위계적 공간 배치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미장센이 있는데, 바로 ‘ㄷ(디귿)’ 모양의 소파 배치다. 이른바 ‘상석’이 정면을 바라보고, 나머지 소파들이 좌우에 배열되는 식이다. 한국의 일반화된 위계 구조를 이만큼 분명하게 재현하는 것이 또 없다. 상석은 보스의 자리이고, 그 좌우에 조직의 넘버 2와 3가 앉는다. 조직 내 서열이 낮을수록 상석에서 먼 곳에 자리한다. 이런 공간 구성은 조폭 영화뿐 아니라 조직 내 관계를 묘사하는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앉는 사람이 검사, 판사, 정치인, 관료, 기업인, 종교인, 교사 등으로 달라질 뿐이다. 이를 과장된 묘사라고 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한국사회 어디를 가나 비슷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귿 모양의 소파 배치는 인간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규율한다. 상석의 보스는 몸을 움직일 필요 없이 고개만 조금씩 까딱거리면 모두를 볼 수 있다. 양쪽에 앉은 부하들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가, 보스와 대화할 때는 애써 몸을 비틀어야 한다. 이때는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공손한 자세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는 태도’가 만들어진다. 이런 공간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성격과 의도를 표현할 수 있다. 예컨대 보스의 권위에 반항하고 싶은 사람은 몸을 그대로 둔 채 고개만 삐딱하게 돌려서 상석을 흘겨보면 된다.

이런 공간 배치가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일본의 사무라이, 야쿠자 영화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사례가 없다. 서구와는 분명히 다른 것 같다. 미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마피아 보스나 미국 대통령의 공간을 보자. 이들의 권위는 무엇보다 커다란 책상으로 드러나는데, 책상의 세로 폭이 보스와 나머지 인물의 거리를 만들고, 이 거리가 힘의 차이를 시각화한다. 여기에도 분명한 위계 관계가 존재하지만, 형태와 작동 방식은 한국과 전혀 다르다. 현실의 공간 배치에서도 차이는 쉽게 발견된다. 인터넷에서 한국과 영어권 나라의 교장실 이미지를 검색해 보라. 디귿 모양으로 배열된 소파들은 한국 교장실의 상징 같은 것이다. 다른 나라의 교사 사무실 공간은 상담실의 형태와 유사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껄렁한 권위주의

한국식 위계 구조의 핵심은 시선의 비대칭에 있다. 보스는 위계 구조의 정점에서 모두를 내려다보지만, 부하들은 보스를 마주 대하지 못한다. 그 정점은 모두의 시선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위계 구조의 내부이면서 동시에 외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근엄하고 진지한 보스뿐 아니라 껄렁하고 가벼운 보스도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인물의 가벼움은 솔직함이나 반권위주의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이 위계 구조를 무시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수단이다. 엄숙한 곳에서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공식적 자리에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의 권위를 증명한다. 조폭이나 검사를 다룬 영화에는 이런 유형의 인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윤석열은 가벼운 보스의 전형 같은 사람이다. 그가 보여주는 표정, 동작, 듣고 말하는 방식에는 특유의 껄렁함이 묻어난다. 2022년 9월 미국 순방 도중에 발생한 비속어 논란을 보자. 대통령의 정확한 발언이 무엇인지를 두고 황당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그가 특정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언어의 품격이 낮은 문제가 아니다. 당시 영상에서 그의 표정과 말투, 주변 환경을 다시 보자. 누가 봐도 그 공간을 지배하는 보스는 윤석열이다. 오로지 그만이 특유의 껄렁함으로 막말을 내뱉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거워야 하는 공간에서 가벼울 수 있는 인물, 그런 가벼움으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 습관화된 인물이다. 그가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과 이런 습관이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말한 위계적 공간 배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조직이 검찰 아니던가.

지난 기자회견을 보고 윤석열의 ‘솔직한’ 화법을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공적 언어의 규칙을 무시하는 그의 말하기 습관 때문이다. 공식적 자리에서 일상어를 적절히 사용하면, 듣는 사람이 편안해지고 언어 공간의 위계 구조가 완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말하기는 이런 친절한 일상어가 아니라 상석에 앉은 보스가 내뱉는 흰소리에 가깝다. 정제된 공식 언어를 써야 하는 공간에서 품위 없는 표현과 말투를 쓰고, 이를 통해 자신이 위계 구조의 외부에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보스와 부하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는 이런 식의 ‘껄렁한 권위주의’가 통하겠지만, 기자회견장에서는 무례한 대통령으로 보일 뿐이다.

이런 식의 권위주의가 드러나는 또 다른 태도가 귀찮음이다. 권위주의적 인물 대부분이 소통을 싫어하지만, 윤석열의 태도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 박근혜가 질문 자체를 회피하거나 틀어막는 식이었다면, 그의 답변에는 항상 ‘뭐 대강 이런 거니까, 대충 알아들어라’라는 분위기가 묻어 있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흰소리나 비아냥으로 들릴 만한 말이 자주 튀어나온다. 이는 의도적 전략이 아니라 신체적 습관에 가깝다.

윤석열은 한국식 위계 구조에서 등장할 수 있는 전형적 인물이지만, 자신의 본래 영역을 벗어나면 기괴한 예외적 인물이 돼버린다. 그가 권위를 행사하는 방식은 보스와 부하로 구성된 폐쇄적 위계 조직 내에서만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인물이 정당 정치로 진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지난 수년의 과정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지금 그를 끌어내린다고 해도 그 코미디가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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