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에 대한 불안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올해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100억원대가 넘는 전세사기가 잇따라 발생해 해당 임대인들이 모두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동대문구를 시작으로 6월에는 신촌에서, 최근에는 관악구에서 2030대를 노린 전세사기가 확인됐다. 2022년 하반기 전세사기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 계약을 체결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차례대로 피해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보증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출을 받은 이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빚의 굴레를 짊어져야 한다. 올해 10월 기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2만2503명인데 이중 74%가 2030세대다.
전세사기의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만으로 볼 수 없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중개제도를 믿고 거래했다. 하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은 일부 임대사업자와 공인중개사의 불법 행위를 막지 못했고, 전세대출 위험도 관리하지 않았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전세사기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해 12월부터 안심 전세 포털을 통해 상습적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악성 임대인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127명인데 이중 67명이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며 취득세·재산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을 누린 것으로 드러났다. HUG가 악성 임대인의 보증금을 대신 갚아주고, 정부는 세금을 깎아준 것이다. 국토부와 지자체 간 임대사업자 자격 여부를 확인해 말소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생긴 일이다. 명단 공개는 ‘보여주기식 행정’인 셈이다.
LH는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맺고 신청인에게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주거복지사업을 하는데, LH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 중 20명이 악성 임대인 명단에 등록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로 인해 LH가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규모는 2022년 381억원에서 2023년 1000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도 서울보증보험이 대신 지급하다 보니, 집주인 검증을 소홀히 한 것이다. 또 사기를 친 임대인들이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단기월세로 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피해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례도 공개됐다. 가압류된 집이어도 경매 낙찰 전까지 집주인이 임대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제2, 제3의 ‘빌라왕’이 나올 수 있다. 사기에 노출되기 쉬운 전세제도의 허점을 보완할 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