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상처 극복하기

강원국 작가
2024.10.21

우리는 관계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직접적인 만남을 넘어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관계가 복잡다단해졌다. 관계가 다면화하면서 이로 인한 갈등도 커졌다. 많은 직장인이 직장생활에서 겪는 첫 번째 어려움으로 인간관계를 꼽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인간관계 고민 중 으뜸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일 것이다. 상처받았을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Unsplash, Christopher Sardegna

ⓒUnsplash, Christopher Sardegna

인정한다

우리 삶은 상처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내가 받는 상처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억울해하거나 자책할 일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상처는 굳은살이 된다. 부러진 뼈가 더 튼튼해지는 법이다. 상처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대처한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이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거나 억누르지 않는다. 상처받았다는 걸 인지하고 대응한다. 나의 대처 방식은 감정을 글로 써보는 것이다. 그것이 원망이건 배신감이건 모욕감이건 느낀 그대로 낱낱이 써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는데, 청소하는 아저씨가 벌컥 문을 열고 “빨리 나오지 못해!” 하며 소리를 지르셨다. 그때 당한 모욕은 아무리 어린 나이였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과목 글쓰기 숙제에 그때 일을 썼고,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내 글을 읽어주셨다. 나는 비로소 그때 그 일에서 느낀 수치와 모멸감에서 벗어났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내가 받은 상처를 기술하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상처받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본다. 둘째, 느낀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서술한다. 셋째,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이유와 원인을 찾아본다. 넷째, 상처를 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다섯째, 객관적인 제3자 관점으로 평가한다. 여섯째, 그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본다. 그렇게 쓰고 나면 늘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이처럼 머릿속 화를 글로 바꾸면 내 감정이 객관화되고 순화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한쪽에는 지금 나를 괴롭히고 힘든 일, 후회하고 걱정되는 일. 다른 한쪽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일을 적었다. 그렇게 쓰고 나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감사할 일뿐이었다.

받아친다

상대가 상처를 줄 때 같은 방법으로 갚아 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닥칠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나같이 심약한 사람은 쓰기 어려운 방법이다. 하지만 아내에게 많이 배웠다. 아내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정면 승부를 건다. 누가 자신을 건들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문제를 만들진 않지만, 누군가 도발해오면 반드시 응징한다. 상호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편이다. 나는 그런 아내가 부럽다. 아니 무섭다.

무시한다

상대가 자극하려 할 때 무반응으로 대응하거나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하면 상대는 내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미국 영화배우 모건 프리먼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프리먼은 어느 독일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내가 당신에게 ‘검둥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죠?”라고 묻자 “아무런 일도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면 잘못된 단어를 사용한 당신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니까”라고 답했다. ‘검둥이’라는 말로 자극한 기자에게 어떤 식의 분노도 표출하지 않았고, 상처도 받지 않았다. 그저 막말한 기자만 우스워졌을 뿐.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줬을 때 그 상처를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으면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상처받지 않는다면, 상대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상처는 고스란히 상대에게 돌아간다. ‘모든 칼은 양날이 있다. 한쪽 칼날로 남을 상하게 하는 자는, 다른 쪽 칼날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도 있잖은가.

용서한다

상대가 아니라 나를 위해 너그럽게 감싸안는다. ‘너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을 수도, 내가 너를 오해했을 수도 있을 거야…’. 감정이란 파도는 막을 수 없지만, 어느 파도에 몸을 맡길지는 내가 고르는 것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을 만나 하소연할 수도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의 조언을 받거나, 전문의와 상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상처 준 사람이 이해되거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도 된다.

상대방과 대화를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서 상처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게 아니라 이미 나는 너를 용서했다는 걸 선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용서는 나를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다.

견뎌낸다

되받아치거나 무시하기도, 용서하기도 어렵다면 그저 견뎌내야 한다. 시간은 상처를 낫게 하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상처는 아문다. 결코 예외가 없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일은 내게 없었다.

현재에 충실해보자. 미국의 작가 마리안 윌리엄슨은 “과거에 머물러서는 과거에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야 비로소 과거를 치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내 영혼이 상처에 잠식당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어떤 일을 하다가 그 일로 인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잘못됐다고, 하지 말라는 그 사람에게 보란 듯이 그 일에 집중했고,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면 됐다.

거리를 두는 것도 견디는 방법이다. 상대가 변화할 가망이 없고 내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준다면 그와 감정적인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철저히 무덤덤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손절’해야 한다. 내게 해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야 할 이유나 의무가 내겐 없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한 상처받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나를 망치도록 내버려 두진 말자. 상처 주는 사람과 상처 난 마음을 안고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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