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 예산 80억원을 쓰고 5000여명의 병력과 83종 340여대의 장비가 참여한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행사가 성대하게 마무리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 국군 장병 여러분을 무한히 신뢰하며, 국민과 힘껏 응원하겠다”는 힘찬 연설로 시가행진의 끝을 장식했다.
이번 행사를 전후로 시대가 변한 만큼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고 장기간의 힘든 연습이 필요한 시가행진보다는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정말 격려와 위로가 되는 행사를 기획해야 한다는 여론과 시가행진이 우리 군의 위용과 국민의 대군 신뢰를 높이며 장병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는 여론이 갈렸다. 1993년 이래 5년 주기로 열리던 시가행진은 국군의 날 행사 중 하나로, 2018년 건군 70주년에는 생략됐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3년 건군 75주년에 부활했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는 그간의 관례를 깨고 5년 주기에 해당하는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시가행진을 진행했다.
오와 열을 칼같이 맞춰 걷는 군인들과 최첨단 무기가 도심 한복판을 지나가며, 전투기가 상공을 가르고 에어쇼를 선보이는 시가행진이 멋지지 않을 리 없다. 모두가 감탄하고 박수 칠 광경이다. 그러나 그걸 보는 군인과 그 가족의 마음도 그러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오와 열을 칼같이 맞춰 걷는 군인들과 최첨단 무기가 도심 한복판을 지나가며, 전투기가 상공을 가르고 에어쇼를 선보이는 시가행진이 멋지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그걸 보는 군인과 그 가족의 마음도 그러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2023년 기준 우리 군의 부사관 충원율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전역 인원 대비 선발 인원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2018년 이래로 해마다 부사관 모집 인원이 미달되고 있는데, 2023년에는 채용할 부사관 정원의 82.9%밖에 충원하지 못했다. 인구 감소로 병사 수를 줄이고, 부사관 중심의 인력 운용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방부의 계획이 무색할 뿐이다. 장교 인력 충원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2023년 3368명이던 학군사관(ROTC) 임관 장교는 2024년 2776명으로 급감했다. 군인들이 전투 임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비전투 임무는 민간 전문인력에 맡기자는 취지로 문재인 정부 시절 대폭 인력을 늘린 군무원들도 입직 3년 내에 그만두는 사람이 30%에 육박한다.
군이 떠나거나 기피하고 싶은 직장이 돼가고 있다. 직업군인의 처우 개선 문제는 오래된 과제다. 일거에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일선 군인들의 진짜 불만은 정부가 매번 곁가지 문제를 땜질식 처방으로 해결할 뿐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굵직한 이슈들은 피해간다는 점에 있다. 실망한 군인들이 자꾸 군문을 나서고, 일손이 부족해지니 업무는 과중해지며, 지친 군인들은 살길을 찾아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2일,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와의 만찬에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의 경우 국방 예산의 쓰임새를 제대로 보여줬다”라며 K방산의 위용을 세계에 선보였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군인들의 몸과 마음이 군을 떠나는 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국군통수권자가 할 일은 신뢰와 응원을 넘어 장병의 생명과 일상을 내 일처럼 돌보는 일이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최첨단 무기가 아니라 무기를 운용하는 자부심 있는 군인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군인은 국가가 원하면 군말 없이 죽어줘야 한다’며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은 사단장을 비호한 대통령이 사람을 갈아 넣어 잘 준비된 시가행진을 보고 흡족해하던 모습을 보니 우리 군의 내일이 걱정될 뿐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