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되게 답답했는데…알고 보니 제가 무지”

2024.09.30

고립은둔청년 부모교육…강의 듣고 자신들의 감정 점검도

“아이를 많이 착각” “교육 다양했으면” 반성과 변화 계기로

지난 9월 23일 서울 광진구 군자동 서울청년센터광진 강의실에서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부모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입간판 뒤편으로 강의장이 보인다. 김향미 기자

지난 9월 23일 서울 광진구 군자동 서울청년센터광진 강의실에서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부모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입간판 뒤편으로 강의장이 보인다. 김향미 기자

“되게 답답했거든요. 평범한 아이처럼 친구도 만나고 그러면 좋은데, 왜 방안에만 있을까 했어요. 그런데 제가 무지했더라고요.”

지난 9월 23일 늦은 오후, 서울 광진구 군자동 서울청년센터광진 강의실에서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부모교육’이 열렸다. 이날 교육에 참여한 A씨는 고등학생인 자녀가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강의 첫날 (아이에 대해) 많이 착각하고 잘못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아이도 그 순간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이는 아이대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가 도와주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파이심리상담센터의 윤유정 상담사는 이날 ‘감정’과 ‘욕구’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총 10회 중 5·6회차 강의를 진행했다. 윤 상담사는 “사회의 작은 모델이 가정이고 그 안에서 내 존재를 인정받음으로써 ‘내가 부족해도 나의 존재는 괜찮은 사람이야’, ‘내가 보호받고 있어’ 이런 생각이 들면 ‘사회에서도 괜찮구나’ 하고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아이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나를 알아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자녀와 부모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

윤 상담사는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에 나오는 ‘기쁨’, ‘슬픔’, ‘불안’ 등의 다양한 감정에 관해 설명하고, 특히 자녀들이 느끼는 ‘불안’의 강도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고립은둔 상태일 때 인지적 왜곡을 경험하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나빠진 사례도 소개하면서 그때 어떤 감정인지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부모 자신들의 감정을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다. 윤 상담사는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마찬가지로 아이도 부모님이 행복해야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며 부모가 자기 감정을 잘 읽고 스스로 돌볼 때 자녀를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20여명의 부모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틈틈이 메모했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기자와 만난 A씨는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어떤 성격인지 알아야 아이한테 어떻게 대할지도 알겠구나 싶었다”며 “그래서 여기 오면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A씨는 자녀가 고립은둔의 ‘초기’라는 점에서 “더 늦게 이런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모교육 참여자인 B씨는 “아이를 당장 변화시켜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여기 온 건 아니”라며 “저희(고립은둔청년 부모)는 너무 (자녀의 고립은둔이) 오래됐기 때문에 당장의 변화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다시 봐야 할 것인가 그런 걸 노력하고 싶어서 부모교육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저희 세대가 헌신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온 것처럼 저 또한 그렇게 하려는 마음이 커서, 아까 강사님이 ‘행복합니까’, ‘기쁩니까’란 항목에 점수를 매겨보라 했을 때 저의 점수는 모두 ‘제로(0)’였다”고 했다.

“오늘 강의에서는 내가 행복하고 튼튼해지고 내가 내 삶의 중심이 돼야 아이를 돌볼 수 있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 변화를 좀 해보고 싶어서 여기 온 것이긴 해요. 저는 정말 그동안 자존감이 너무 낮아졌어요.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에요. 가정이나 부모 탓이다, 그런 비난과 손가락질도 많이 받는단 말이에요. 제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을까요. 지금 ‘제로’인 제 마음이 교육을 모두 마칠 때쯤엔 한 50%는 채워갔으면 좋겠어요.”(부모교육 참여자 B씨)

자녀가 고립은둔에 빠졌을 때 그 곁을 지키면서 도우려는 부모들은 책임감, 죄책감 등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들도 사회적 관계가 끊기기도 한다. 부모교육은 부모를 통해 자녀의 사회 복귀를 도우면서 부모들의 고립감도 해소하는 자리다.

“부모교육 더 늘었으면”

서울시는 2021년 12월 ‘서울시 사회적 고립청년 지원 조례’를 제정한 후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 및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지난 6월 발간한 ‘서울시 예산 재정분석 제47호’를 보면,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의 예산은 2020~2021년 4억5000만원에서 조례 제정 이후인 2022년 16억5000만원, 2023년 15억3000만원 등으로 늘었다. 올해는 28억6800만원이 편성됐다. 단순 프로그램이나 단기 지원으로는 정책 효과를 보기 어려워 일부 사업은 민간위탁으로 돌리고,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면서 예산이 증액됐다. 지난 9월 12일 지자체 최초로 전담기관인 기지개센터(종로구 이화장길 70-15)도 공식 개소했다.

부모교육도 올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 (2022년) 당시 ‘고립은둔청년 가족에 필요한 지원’으로 고립·은둔에 대한 이해 프로그램(22.4%)에 이어 부모와 자식 간 가족상담(22.1%) 등 가족구성원의 상담과 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부터 부모교육까지 (서울시 청년기구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제안해 청년자율예산으로 시작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청년 당사자들이 고립은둔 문제 해결을 많이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체 고립은둔청년 규모에 비하면, 지원사업은 이제 길 위에 막 올라섰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 고립은둔청년은 청년인구(약 290만명)의 4.5%가량인 12만9852명으로 추산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추정한 전국 고립은둔청년(약 54만명)의 24%가량이 서울에 살고 있다.

부모들은 고립은둔청년 부모를 위한 상담과 교육이 더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B씨는 “강의 이후에 심리상담을 기대하고 있다.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서 나를 좀더 단단하게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며 “부모가 지쳐 있고 그러면 위태롭다는 건데, 부모가 위태로우면 아이들이 돌아올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이런 부모 회복 프로그램들이 더 업그레이드돼서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A씨도 “똑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보다 새로운 내용도 더 추가해서 더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A씨는 “지금 자녀가 30대인 분들도 있는데, 아이가 고립 초기일 때 이런 교육이 있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이 교육이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부모교육은 서울 거주 만 19~39세 고립은둔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한다. 총 3기에 걸쳐 파이나다운청년들, 씨즈, 지엘청소년연구재단 등의 단체와 함께 운영한다. 1기는 지난 7월에 마쳤고, 현재 2기가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 7일까지 3기 참가자를 모집한다. 3기 교육은 오는 10월 1일부터 12월 14일까지 서부권, 동부권, 중부권 등 총 3개 권역(한겨레교육센터·스페이스쉐어 삼성코엑스센터·삼성교육센터)에서 진행된다. 10회가량의 강의 수강, 일대일 상담, 자조모임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참가비는 무료다. 온라인 접수(https://bit.ly/2024서울시고립은둔청년부모교육3기신청)로 신청할 수 있고, 관련 문의는 운영사무국(02-6953-5643)에 전화하면 된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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