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한·미 UFS 연합훈련에 웬 러시아 용병그룹 ‘바그너’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2024.09.29

/솔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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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을지프리덤실드(UFS·을지자유의방패) 연습이 지난 8월 19일 시작해 29일에 끝났다. UFS 연습은 매년 8월 중순에서 말에 실시하는 한·미연합군의 한반도 전구작전수행능력 배양 훈련이다. 한·미 공동의 모의 워게임으로 진행하는 군사지휘소연습(프리덤실드)과 한국정부연습(을지)을 함께 실시한다. ‘을지’란 명칭은 삼국시대 때 수나라 30만 대군을 살수(청천강)에서 몰살시킨 고구려 영웅 을지문덕 장군에서 따온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번 UFS 연습에 대해 “점증하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 GPS 교란 및 사이버 공격,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위협과 최근 전쟁 양상 등 현실적인 위협을 상정해 내실 있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합참은 하이브리드전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허위정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연습을 각 부대 및 유관기관과 함께 실시해 절차와 방법을 숙달했다”고 덧붙였다.

■중·러의 군사개입

합참이 설명하지 않은 이번 UFS 연습의 핵심은 따로 있었다. 한반도 전장에 중국 인민해방군과 러시아 군사 용병이 출현하는 상황을 가정한 ‘폴밀 게임’(Polmil Game·정치군사 모의게임)의 실시였다. 통상 폴밀은 국가안보 문제에 관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토의를 통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폴밀의 기본 프로그램은 ‘DIME’(외교·정보·군사·경제) 변수를 주로 고려했다. 한·미연합 모의훈련에서 중국 정규군과 러시아 군사 세력이 한꺼번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의훈련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전쟁 개전 초기부터 한국 책임론을 들고나와 외교·경제·산업 부문에서 한국을 압박했다. 이후 한·미연합군이 북한의 기습도발 방어에 성공하고 전열을 재정비해 북쪽을 향해 반격에 나서자 전면적인 군사개입에 나섰다. 중국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전쟁 초기부터 한국 영해를 침범했고, 나중에는 북한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정규군을 대거 북한지역으로 내려보냈다.

한반도 전쟁 발발 시 중국은 1961년 체결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의 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의 제2조(자동개입 조항)에 따라 북한에 군사력 지원을 할 수 있다. 과거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대북 군사력 지원 규모는 중국군 18개 사단 약 40만명과 항공기 약 800대, 함정 약 150척이 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 이중 핵심전력인 선양(瀋陽)군구 전력 60%와 지난(濟南)군구 전력 50%, 북해함대 전력 30%가량이 북한에 주로 투입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폴밀에서도 중국군 선양군구 핵심부대인 제39집단군의 주요 전력이 북한에 투입되는 것을 가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폴밀에서 러시아는 자국의 민간군사기업(PMC)으로 유명한 바그너 그룹의 군사 용병을 대거 투입했다. 바그너 그룹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러시아군 특수부대 지휘관 출신인 드미트리 웃킨이 공동 설립한 군사기업이다. 주로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들로 이뤄진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이익이 걸린 전장에 용병으로 투입되고 있다.

이번 훈련에서 바그너 그룹 투입을 가정한 것은 북한이 지난 6월 19일 러시아와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국의 법에 의해 개입여부를 결정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지만, 러시아가 중국처럼 군사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조약이다.

모의훈련은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으로 한·미연합군이 청천강 지역에서 북·중·러연합군과 마주친 후 평양을 놓고 공방전을 벌이다 종료됐다.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갈 수 있는 상황에서 폴밀이 끝난 것이다. 이번 폴밀을 자세히 뜯어보면 한반도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군이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하면서 상황을 종료했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은 과거 연합훈련에서도 청천강 이북까지 진격하려는 의사는 없었다.

■충돌 꺼리는 미국

한반도 유사시 군사적 측면에서 당사국인 남북은 물론 미국,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들 모두가 다른 속내를 드러낼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각각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이번 폴밀에서만 봐도 미국은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우려해 북진을 포기하고 중국, 러시아와의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함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빠져들 위험을 감수하면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북 전면전 상황을 가정한 이번 모의훈련은 원전반대그룹이 2015년 정부기관을 해킹해 공개했던 문서 내용을 연상시킨다. 이 문서는 2010년 안팎 시기의 한·미연합훈련과 관련된 사항을 기록한 자료로,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제안받은 ‘북한지역 4개국 분할 통제안’에 대한 논의를 합참에 요청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북한 붕괴 시 한국은 평양 외곽인 평안남도와 황해남·북도를, 미국은 강원도, 중국은 함경남도와 평안북도·자강도·양강도를, 러시아는 함경북도를 각각 통제하자는 것이다. 평양은 한·미·중·러 4개국의 공동 담당구역으로 지정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중국은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차지하면서 함경남도를 통해 만주를 동해로 연결하고, 러시아에도 동해에 진출할 수 있는 지역을 떼준다는 의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인 미·중·러가 합의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사안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별도의 국가라는 점을 들어 한국 헌법 제3조에 의한 행정력의 북한지역 확대를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아는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군은 북한의 핵시설과 생물무기 시설 제거를 위해 중국과 협의하는 데 많은 관심을 쏟았다. 이후 미·중이 패권을 놓고 다투면서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미군은 한·미연합훈련에서 한국 측이 원하는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는 북한 급변사태를 포함한 한반도 유사시 중국이 자국의 남방한계선처럼 여기는 남포~원산선을 굳이 넘지 않겠다는 미국 측의 의지가 작용한 탓이다.

9·11 군사합의 중단 등으로 브레이크 장치가 풀린 한국군과 북한군 사이에서 우발적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경우 국지전은 물론 전면전으로까지 확전될 위험성이 커졌다. 이는 자칫 북한의 ‘핵무력정책법’에 따라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은 설사 핵 사용을 배제하더라도 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 참전하는 국제전으로 비화할 것임을 이번 USF 한·미연합훈련은 보여줬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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