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유소년 선수, 카카오톡에 남긴 메시지
“강한 훈련만 강조하는 구시대적 인식 여전”
“만약에 축구를 안 하고 일반 학생이었다면 이보다 행복했을까.”
K리그2 김포FC의 유소년축구단 소속 선수이던 A군(당시 16세)이 2022년 4월 27일 새벽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 전 카카오톡에 남긴 메시지다. A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축구선수라는 꿈을 향한 그의 도전은 7년 만에 사그라졌다. A군은 카카오톡 메시지에 코치들 이름을 나열한 뒤 “솔직히 오늘 걸려서 내일이 두렵다”, “OO의 차별과 OO의 폭력, 언어폭력” 등의 말을 썼다.
A군의 죽음 뒤 유소년 선수를 대상으로 한 지도자의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최근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운영하는 ‘SON축구아카데미’에서 아동학대가 있었다는 논란과 관련해선 유독 손씨 측을 두둔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손씨는 입장문을 통해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언행은 결코 없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상에선 ‘축구선수가 되려면 강한 멘탈(정신력)이 필요하다’, ‘좋은 말로만 해서 제대로 교육이 되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지난 7월 12일 기자와 만난 A군의 아버지 B씨(50)는 “미성년자에게 언어폭력을 하는 게 스포츠가 맞느냐, 이런 스포츠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스포츠가 아직도 구시대적 담론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유소년 선수 사망 2년 2개월, 수사는 진행 중
스포츠 폭력 문제는 2018년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고, 이듬해 심 선수가 성폭행 피해를 고발하면서 크게 불거졌다. 2020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 선수가 감독 등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스포츠윤리센터를 설립했다. 이 스포츠윤리센터가 김포FC 건을 조사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코치가 평소 유소년 선수들에게 “대가리에 총 맞았냐”, “XX 이건 아니지” 등의 욕설을 했다고 확인했다. 선수들이 규칙을 어길 경우 머리를 자르게 하고, 운동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물병을 던지는 등의 폭력이 있었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법적 책임을 따지는 절차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A군이 사망한 지 2년 2개월이 넘었지만 경찰은 아직 아동학대 혐의 수사를 끝내지 못했다. A군의 아버지가 코치들과 구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수사 결과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중지됐다. 수사·재판에선 폭력이 있었는지부터 폭력 때문에 A군이 사망했는지까지 원점에서 재공방이 이뤄진다.
코치들은 유소년 선수들과 논의해 규칙, 벌칙을 정했고 A군이 규칙을 어겨 주의를 시켰을 뿐 폭력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규칙과 벌칙은 휴대전화 공기계 사용이 적발되면 머리 자르기와 퇴출, 생활규칙을 어기면 경기와 훈련 불가, 식사시간을 어기면 휴대전화 압수 등이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유소년 선수들이 이런 규칙과 벌칙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인권침해적이라며 A군이 벌칙 수행과 축구선수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최종적으로 수사기관과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B씨는 “아이들의 경기 출전과 진로에 대한 권한을 가진 지도자가 욕을 하거나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이들 인생 목표를 볼모로 하는 아동학대”라며 “군대보다 못한 최악의 인권문제가 축구계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 폭력은 훈련에 참여할지 여부부터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 경기에 출전할지 등을 결정하는 지도자와 그 지도자 말을 수용해야 하는 미성년자 선수의 권력관계 속에서 나타난다는 취지다. 그런 의미에서 B씨는 SON축구아카데미를 옹호하는 여론에 대해 “본질에서 벗어난다”고 했다.
B씨의 말이다. “아이들에게 축구선수는 꿈이고 로망이거든요. 어린 나이에 꿈을 갖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아이가 훈련에 참여하고 경기를 뛰게 할 수 있는 권한은 지도자가 갖고 있어요. 팀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지도자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어요. ‘너 게임 나와’, ‘너 수비해’, ‘너 빨리 뛰어야지’, ‘왜 저기에 패스 안 해줘’ 코치가 이렇게 가라고 했는데 안 가고 실수하면 욕이 나오는 거예요. 다 모여 있는 곳에서 욕을 하면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겠어요? 누가 이 아이한테 가서 ‘괜찮아?’ 하겠어요? ‘나는 그렇게 안 돼야지’ 하는 것이고, 저는 그게 가스라이팅이라고 봅니다. 경쟁 때문에도 그렇죠. 부모들은 내 아이가 못 뛰는 것을 보면 화가 나니까 코치·감독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고요. 요즘 아이들이 나약하다, 축구는 욕을 들어가면서 강압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축구를 가르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12월 19일에서야 ‘윤리 규정’과 ‘축구인 인권보호 규정’을 만들었다. 윤리 규정 제15조 제1항은 “다른 사람의 인격과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제3항은 “모든 형태의 신체적·정신적 학대, 괴롭힘 또는 다른 자의 존엄을 고립시키거나 훼손하기 위한 적대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다만 SON축구아카데미와 같이 학교 바깥에서 이뤄진 교육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포츠계의 낡은 인식, 해병대 훈련도
전문가들은 ‘강한 훈련만이 메달을 만든다’는 낡은 인식이 근본적으로 문제라고 지적했다. 스포츠에 대한 과학적 접근보다는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선수의 강한 정신력이 성과를 만든다는 교육방식이 스포츠 폭력을 청산하지 못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말 대한체육회는 2024년 파리올림픽에 대비해 정신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해병대 훈련을 받게 해 논란이 일었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스포츠평론가)는 “강인한 체력, 굳센 마음을 중심으로 한 스포츠 담론은 1990년대 이후엔 버려진 담론”이라며 “(미국 등에선) 합리적·과학적·체계적으로 성장 과정과 심리를 분석하고, 스포츠 교육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이 이미 30년이 됐는데 한국은 30년 전 상황에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대한축구협회 등의 사후약방문식 대응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어느 고약한 지도자 한 명이 나빠서가 아니라 폭력이 구조화돼 있는 상황에서 스포츠 정책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있는 기관들이 끔찍한 사건이 났을 때야 사후적으로 대책을 만들었다”며 “과학적 시스템 적용, 폐쇄된 생태계의 확장, 사건사고와 연관된 지도자는 스포츠계에 발을 못 딛도록 엄벌에 처한다 등의 정책을 제대로 폈다면 이런 사건(SON축구아카데미의 아동학대 논란)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나왔더라도 (여론이) ‘아직도 아이를 때리냐’는 반응이었을 텐데 지금은 뒤섞여 있다”고 했다.
허정훈 중앙대 체육대학 교수(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목표를 설정하고, 경쟁 속에서 선수가 자신감을 높이고, 불안을 조절하는 과학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지도자가 가혹하게 욕을 하고 때려야 선수가 단련된다는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허 교수는 “일부 국가에서는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그 아이들을 지도하는 어른들의 의무를 규정한 스포츠 권리장전도 있다”며 “제2, 제3의 김포FC 사건이 나타나지 않으려면 일부 코치의 자격 박탈이나 처벌 문제로 축소되지 않고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했는지를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