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가 이끄는 22대 ‘강성 국회’

당선인 중 절반 훨씬 넘어…대부분 중진, 당내 목소리 커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제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들이 5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총회에서 함께 앉아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제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들이 5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총회에서 함께 앉아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지난 5월 10일부터 국회 본관 앞에 ‘채 해병 특검 관철을 위한 더불어민주당 초선 당선인 비상행동’ 농성 텐트가 마련됐다. 이달 말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당선인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171석에 이르는 거대 야당이 농성에 나섰다는 점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 2004년 연말(17대 국회) 국회 본청 내 회의실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철폐 농성을 벌였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그해 4월 열린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업고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이해 총선에서는 86세대(1980년대 대학 입학·1960년대 출생)들이 대거 의회에 초선 의원으로 발을 내디뎠다. 과반 의석 다수당, 그것도 ‘여당’ 의원들이 국회 내에서 농성을 벌인 드문 사례였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실 보좌관은 최근 민주당 초선 당선인들의 비상행동을 지켜보며 “17대 국회 시절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을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개정이 아니라 전면 폐지를 주장한 17대 국회 초선들은 대부분 86세대 의원이었다. 이 보좌관은 “아마 22대 국회에서는 이런 농성이 더 많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치적 협상이 아니라 밀어붙이기식 농성에 대한 우려였다. 초선 당선인의 비상행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윤종군 당선인(경기 안성)은 1972년생이지만 초등학교에 일찍 입학해 경희대 89학번이다. 1992년 경희대 부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한 운동권 출신이다. ‘범86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농성장에는 86세대 당선인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86세대 중진들이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사실상 86세대가 이끌 22대 국회가 ‘강성 국회’가 될 것이라는 점은 이 농성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17대 국회에서 대부분 초선이었던 86세대는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에서 이제 ‘586’·‘686’이 됐다. 나이가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으로 접어든 것이다. 20년이 훌쩍 지난 뒤 맞이하는 22대 국회에서 이들은 어느새 입법부를 이끄는 중심축이 됐다. 민주당 국회의장선거에 나섰던 조정식·정성호 의원은 86세대의 중심에 속한다. 이들이 후보직을 사퇴한 후, 86세대 이전의 ‘긴급조치 세대’인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이런 ‘교통정리’의 배경에는 이재명 대표의 의중, 이른바 ‘명심’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실제 투표를 하는 의원들의 마음이 조정식·정성호 의원에게 가 있는 상황에서 추미애 당선인이 이 대표에게 교통정리를 부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추 당선인이 아닌 우 의원이 의장 최종 후보로 선출됐지만, 86세대인 이 대표가 두 후보를 주저앉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만 보아도 이 대표의 위력을 알 수 있다. 대학생 때는 학생운동과 거리가 있었던 이 대표는 사법연수원 시절 정 의원 등 86세대들과 학생운동 관련 서적을 함께 읽은 범86세대 정치인이다. 그가 지나온 정치 역정 역시 86세대의 이념과 정책에 기반하고 있다. 12석으로 4월 총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대표적인 86세대 정치인이다. 171석을 이끄는 거대 야당뿐만 아니라 야권 연대의 한 축 역시 86세대가 이끌고 있다. 범야권 189석의 중심을 86세대가 차지한 셈이다.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 현장 / 윤호우 기자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 현장 / 윤호우 기자

‘86세대 청산론’에 밀려 한때 고전

4월 총선 당선인을 연령별로 나눠 보면 60대가 100명으로 33%를 차지했고, 50대는 150명으로 50%를 차지했다. 50대·60대가 83%로 압도적이었다. 이중 86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을 당선인 인적 현황 자료를 통해 주간경향이 추산해보았다. 엄밀한 의미의 86세대(1960년대 출생·1980년대 학번)의 기준을 ‘1961∼1969년생’으로 삼았다. 1960년생은 79학번이 많고, 89학번의 대부분이 1970년생이기 때문이다. 생년으로 따진 결과 22대 당선인 300명 중 86세대는 178명이다. 과반을 훨씬 넘어선다. 이중 국민의힘 86세대 당선인 61명을 빼더라도 117명에 이르는 야권 86세대 당선인들이 활약하게 된다. 가히 86세대가 입법부 권력을 휩쓰는 양상이다.

당선인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 48명 중 29명, 경기 60명 중 32명, 인천 14명 중 9명, 대전·세종·충남북 28명 중 19명, 대구·경북 25명 중 15명, 부산·울산·경남 40명 중 27명, 광주·전남북 28명 중 21명, 강원·제주 11명 중 6명, 그리고 비례대표 46명 중 20명이다.

이들 중 조정식·정성호 의원처럼 각각 6선과 5선으로 가장 높은 선수에 올라 입법부 권력에 직접 도전한 경우가 있다. 김태년·윤호중·이인영·박홍근 의원 등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중진 의원이다. 정청래·서영교 의원은 현재 최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와 진성준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안규백·김영배·김성환·황희·한정애·윤건영·김민석·이해식·진선미·민형배·박범계·조승래·김현·권칠승·박수현·복기왕·이춘석·한병도 등 쟁쟁한 중진이 많다. 이들은 상임위원장을 지냈거나 앞으로 맡을 만큼 다선 의원이 됐고, 당내에서도 목소리가 커졌다. 이들 중 실제로 학생운동의 전면에 섰던 86세대 학생운동 지도부 인사도 많다. 노종면·김남근·임미애·박선원·김현정·조계원·권향엽 민주당 당선인뿐만 아니라 서왕진 조국혁신당 당선인까지 포함해 86세대 새로운 의원들이 22대 국회에 들어오게 된다.

21대 국회만 하더라도 86세대의 윗세대인 ‘긴급조치세대’가 의회 권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22대 국회에서는 급격하게 입법부 권력을 86세대에 물려줘 버린 양상이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대표가 2020년 7월 선거법 위반 대법원판결에서 무죄 취지의 원심 파기환송이라는 결과를 얻으면서 대권 차기주자로 부각됐고, 86세대 정치인들이 이 대표를 지지하게 됨으로써 민주당이 86세대 중심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번 4월 총선에서 86세대 야권 후보들은 국민의힘이 내건 ‘86세대 청산론’에 밀려 한때 고전을 면치 못했다. 86세대의 뒷세대인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생)에 해당하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86세대를 비판하며 이번 총선에서 이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86세대가 너무 많은 권력을 누렸다는 비판이었다. 김준혁(경기 수원시 정)·양문석(경기 안산시 갑) 당선인은 86세대에 속하는데, 역사 관련 왜곡 발언, 부도덕한 재산축적 등으로 선거 과정에서 청산의 상징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일부 86세대 정치인의 부도덕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추미애 전 의원을 비롯한 제22대 국회 초선 당선인들이 5월 10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 관철을 위한 비상행동 선포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추미애 전 의원을 비롯한 제22대 국회 초선 당선인들이 5월 10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 관철을 위한 비상행동 선포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전면적 검찰개혁에 나설 가능성

‘86세대 청산’에 맞서 민주당은 ‘검찰개혁’을 내세웠다.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인사를 중용하고, 검찰을 동원해 이재명 대표 등 야당 지도자에 대한 정치적 수사를 벌였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유권자들은 ‘86세대 청산’보다 ‘검찰개혁’에 더 많은 손을 들어줬고, 총선은 야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대표적 86세대 정치인인 서영교 의원은 지난 4월 10일 민주당 개표상황실 현장에서 야권이 200석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예상치 못했다”라면서 “유권자들이 야당에 많은 표를 던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검찰개혁을 화두로 꺼낸 조국혁신당의 개표상황실에서도 함성이 터져 나왔다. 86세대 중심의 야당이 군사독재 당시의 프레임을 그대로 검찰독재 프레임으로 전환한 것이 유권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검찰의 정치화를 막는 것이 이 시대 민주주의 과제일 뿐 아니라 지금 당장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총선에서 공감을 얻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22대 국회에서 거대 야권은 전면적인 검찰개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에 대통령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특검 여론이 고조됐고,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에 친윤 인사를 배치한 것이 되레 특검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민주당에서 강력하게 특검안을 추진하고 있는 채 상병 사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뿐 아니라 이태원 특조위까지 포함하면 검찰과 관련해 정치적이고 고의적인 부실·은폐 의혹이 논란이 된다. 게다가 조국혁신당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녀 특혜 관련 특검안 발의를 벼르고 있고, 검찰에게 기소 권한만 부여하는 한국형 FBI(가칭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카드도 고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2대 국회는 검찰개혁을 놓고 4년 동안 시끌벅적해지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특검안 거부권 행사와 ‘독불장군식’ 국정운영 행태는 22대 국회에서 강 대 강 대치를 더욱 공고화할 우려를 사고 있다. 86세대 중심의 야권이 검찰개혁에 나서고, 윤석열 정부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경우다.

86세대 중심의 정치는 그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군사독재 당시 군사정부를 주적으로 모는 강성 운동권의 전략이 국민의 호응을 얻었는데, 이들이 정치 영역으로 옮아오면서 상대 정당을 적대화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을 민주당 86세대는 군부독재의 잔재라 깎아내렸다. 민주당에서 상대 정당과의 타협은 야합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여의도에서 대화와 협치의 여지는 점차 줄어들었다. 물론 여기에는 이명박·박근혜·윤석열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보수 지도자들의 무리한 정책 추진, 안하무인식 통치가 한몫했다. 4대강 사업, 최순실 비리, 검찰독재 의혹 등이 86세대의 강력한 비판 대상이 되면서 86세대의 강력한 정치 투쟁이 오히려 국민의 호응을 얻는 계기가 됐다.

“존경받는 86세대 정치인 있는가”

86세대가 과연 정치권에서 제구실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라다닌다. 김상일 평론가는 “86세대가 민주주의라는 유산을 물려줬어야 하는데, 계속 자신의 정치적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이용하는 강경투쟁으로 일관했다”면서 “이런 방식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갉아 먹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김 평론가는 “22대 국회에서도 86세대가 강경투쟁만을 내세운다면 이런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검찰독재에 대해서는 물론 개혁이 필요하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과도한 의미가 부여된 측면이 있고, 국민의 관심사와는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86세대가 군사독재를 검찰독재로 치환하면서 과잉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평가했다.

강성 정치팬클럽 문화도 86세대의 강성 정치가 낳은 부작용으로 언급된다. 지난 5월 16일 22대 국회의장 후보 투표에서도 민주당 강성 당원들은 검찰개혁과 관련해 강성 발언을 해온 추미애 당선인을 원했다. 그리고 이것을 ‘당심’으로 포장했다. 이런 상황 속에 당선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투표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당선인 과반이 우원식 의원을 후보로 선택했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강성 팬덤은 지난 4월 총선의 공천 과정에서 비이재명계를 이른바 ‘수박’(겉과 속이 다른 민주당 정치인)으로 몰았다. 86세대가 늘 외치던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배척이라는 비민주주의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상일 평론가는 “86세대 일부가 조직 재생산 방법을 온라인으로 옮아간 결과 강성 정치 팬덤 문화가 만들어졌다”면서 “확증편향식 유튜브 정치 문화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22대 국회가 과연 86세대 정치인들에게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 최병천 소장은 “86세대는 2004년 정치 전면에 등장해 정치세력의 교체를 가져왔고, 그동안 압축적 민주화와 복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초저출산, 초고령화, 미·중 양극화 체제, 기후위기 국면에서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소장은 “지금 ‘존경받는 86세대 정치인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준한 교수는 “86세대가 대학 시절 조직 훈련이 잘돼 있었고, 민주화에 기여한 경험도 풍부하며 정치적 공감대도 넓다”면서 “지금까지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 왔다면 22대 국회에서는 이제 수확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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