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밀매업자 천상계 자처…취급하는 ‘한 개’ 무게따라 급 나눠
007가방·풀린 눈? 트레이닝복에 캡 ‘신도시 아저씨’ 같은 마약왕
귀를 기울인 문 안쪽으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물소리. 쿵쿵하며 무게감 있는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 순간 ‘설거지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1년 2월 18일 오후 3시쯤이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오피스텔 301호 앞. 성인 남성 2명이 나란히 서기도 좁은 복도에 K 경감을 포함한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수사관들이 숨죽인 채 문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30분. 기다림이 길어졌다. 문을 두드리거나 강제로 열려 한다면 증거가 훼손될 수도 있다. 문이 열릴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 자리까지 오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수사관 모두 작정하고 나왔다. 오늘 반드시 잡아야 한다.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형님, (내가) 나가면 문 바로 잠그세요.” 수사팀이 긴장하고 눈빛을 주고받았다.
문이 살짝 열리는 순간, K를 비롯한 팀원들이 안쪽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던 키 180㎝가 넘는 건장한 남자를 제압하며 문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이 남자는 M. 방 안에 그가 ‘형님’이라 부른 다른 남성도 있었다.
M은 국내 히로뽕 유통 세계에서 손꼽히는 ‘상선’(총책을 가리키는 은어)이다. “대한민국에 마약 하는 사람들은 다 알죠.” 훗날 열린 M의 재판에서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M은 1990년대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당대 거물 히로뽕 유통업자들과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아왔다. 서울 강서구 일대를 주무대로 활동했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히로뽕 유통업계에서 새롭게 떠오른 거물로 꼽혔다.
K는 M을 잡기 위해 수개월 동안 수사를 벌였다. 베테랑 강력계 형사인 그는 마약수사대로 발령받으면서 M을 포착했다. M에게 히로뽕을 공급받는 ‘하선’을 추적하다 코앞에서 놓친 적도 있었다.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을 보러 갈 시간도 없이 잠복 수사에 매달렸다. 그러다 M에게 히로뽕을 구입했다는 L의 진술을 확보했고, M이 지인과 히로뽕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는 현장 영상까지 수집했다.
확실하게 체포하기 위해선 ‘물건’을 갖고 있을 때 붙잡아야 했다. 마약을 사고팔았다는 진술이나, 거래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상만으로는 재판 결과가 불확실하다. 우여곡절 끝에 확인한 이 오피스텔을 덮친 것이 승부수였다.
비좁은 복층 원룸 구조의 방안은 온풍기를 틀어놔 후덥지근했다. 방 안에선 묘한 냄새가 났다. 교자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누런 빛을 띤 하얀 결정체가 원인이었다. 히로뽕 약 700g이었다. K를 비롯한 마약수사대엔 예상치 못한 커다란 실적이었다. M이 형님이라 부른 중년남성도 함께 체포했다. M의 지시로 화학 실험 기구를 사 온 ‘동생’ J도 오피스텔 밖에서 수갑을 채웠다.
실험 기구는 방 안에도 있었다. 싱크대에는 젖은 비커와 온도계가 있었고, 방 한쪽엔 아세톤, 디텔에테르, 수산화나트륨 용액이 담겼던 통들이 나왔다. 질이 낮은 히로뽕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쓰이는 약품이다.
화학 공정을 통해 순도를 높이는 행위만도 마약 제조에 해당할 수 있다. M은 범행을 부인했지만 마약 제조와 판매 등 혐의로 기소됐다. 2년 넘게 재판이 이어졌다. M은 징역 7년이, J는 5년이 확정됐다. M이 형님이라 부른 남성은 무죄선고를 받았다.
천상계와 지상계
기자는 2021년 법원 담당으로 일하면서 M의 사건을 접했다. 그의 재판을 보면서 마약 사건의 다수를 차지하는 히로뽕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마약 청정국’으로 여겨지던 한국은 언제 어떻게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었을까. 2019년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의 대사가 떠올랐다.
“선생님도 학생도 직장인도 공무원도 목사님도 스님도, 편의점에서 담배 사듯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의 대중화, 보급형 뽕의 시대.” 영화가 현실이 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 역사와 그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단순히 마약의 중독성, 단약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 ‘보급형 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지 궁금했다.
일본과 한국, 중국 등 3국의 논문과 언론보도, 판결문 등 다양한 자료를 살펴봤다. 국내 히로뽕 유통망의 최상층에 있는 이들부터 그들을 수사한 전·현직 경찰, 검찰 관계자 등 30여 명을 직접 만나거나 옥중 서신으로 인터뷰했다.
M과도 직접 만났다.
2023년 8월 10일 오후 3시였다. 태풍 ‘카난’이 북상하던 그날, 안양교도소 접견실에서다.
1~2평 남짓한 접견실의 두꺼운 유리 벽 너머로 M과 마주 앉았다.
빳빳한 파란색 수의를 입은 M은 흰머리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체격이 건장하고 쌍꺼풀이 진한 눈 때문인지 나이에 비해 더 젊고 강해 보였다. 그는 재판 중에도 여러 번 손을 들고 ‘한마디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거침없는 성격이다.
“안녕하십니까.” 기자를 만난 M은 일어나 시원하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다시 앉았다.
접견 시간은 20분 남짓. 접견에 앞서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했다. 이날은 일종의 상견례 자리였다. 재판에서 그를 여러 번 봤지만, 마주 앉아 대화한 것은 처음이었다.
M은 웃으며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접견실 구석에 앉아 대화를 받아적는 교도관은 보이지 않았다. 두툼한 유리 벽 앞에 설치된 ‘인터폰’으로 대화했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히로뽕 유통의 역사를 취재한다고 다시 설명하자 M은 말했다.
“제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애(마약사범)들 이야기를 들어서는 이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쉽게 말해서 그런 애들은 인간계에 있고, 우리는 천상계에 있으니까요.”
한 개의 무게
메스암페타민, 필로폰, 뽕, 메스, 아이스, 빙두, 술 한 잔, 작대기.
모두 히로뽕의 다른 이름이다. 이 ‘뽕의 세계’ 안에서도 피라미드로 표시할 수 있는 계급의 차이가 있고, M은 2010년대 후반 이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오른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누군가의 혈액을 타고 몸에 퍼지기 전, 히로뽕은 머나먼 타국에서부터 단계를 거쳐 사고 팔린다. 그 단계마다 한 칸 위에 존재한 이들이 상선(上線)이 되고, 그 밑은 하선(下線)이다. 상선은 히로뽕을 건네고, 하선은 그 물건을 받는다. 하선은 다른 하선의 상선이 되고, 상선은 다시 다른 상선의 하선이 된다. 수많은 상선과 하선의 관계 속 어느 지점에 천상계와 인간계를 가르는 선이 있다는 게 M의 말이다.
해외에 체류하며 현지의 마약 생산업자에게서 물건을 공급받는 밀수업자(원선)와 한국에 있으면서 밀수업자에게 처음으로 물건을 직접 건네받는 밀매업자가 천상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M도 해외에서 직접 대량의 히로뽕을 받는 천상계에 있다.
히로뽕은 상선의 바로 앞에서 물건을 받는 ‘앞방’에서 도매와 소매를 지나 한두 차례 투약할 양을 사고파는 ‘고사바리’까지 거친 뒤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천상계에서 인간계로 이어지는 히로뽕 유통의 구조다.
천상계는 단일 품목인 히로뽕의 공급을 조절하고 가격을 결정하기도 한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것은 아니다. 천상계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수요와 공급 등 시장의 원리가 히로뽕 비즈니스의 세계에도 작동한다.
누가 천상계의 유통업자인가, 누가 그중에서도 거물인가 하는 것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대차대조표가 있거나 매출액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일반 기업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언제 누가 많은 물건을 다루고 유통하고 있는지는 이 세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한다.
판매자의 급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은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 개’의 무게다. 10g이나 100g, 혹은 1㎏. ‘한 개만 줘’라고 할 때 그 한 개의 무게가 그 사람이 마약 비즈니스에서 차지하는 급을 나타낸다.
히로뽕 세계의 최소 단위는 0.07g이다. 투약할 때 쓰는 1㎖들이 일회용 인슐린 주사기의 ‘한 칸’에 들어가는 양이다. 1회 투약량은 보통 0.03g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투약자들은 최소 한 칸을 주사한다. 주사기 한 개를 다 채우면 약 0.7g, ‘한 작대기’가 된다. 14작대기 10g은 ‘한 통’이다. 약 1400회 투약량인 히로뽕 100g을 구해 판매할 능력이 되는 유통업자도 많지 않다. 하지만 100g을 한 개로 다뤄도 뽕의 계보에선 하선이다.
M에게 한 개는 1㎏이다. 이렇게 ‘한 개=1㎏’으로 정기적으로 다룰 능력이 되는 이들은 손에 꼽힌다. 이중에서도 오랜 시간 거물급으로 분류된 이들은 지역별로 나눠 ‘서울시장급’, ‘부산시장급’이라고도 농담으로 불린다. M도 한때 서울시장급이라고 불릴 만한 활동을 했다.
대한민국 뽕의 계보
히로뽕은 2024년 최고의 화두 중 하나가 됐다. 지난해 서울 강남의 학생들에게 마약이 든 음료를 마시게 한 뒤 돈을 뜯어내려 했던 사건에도 히로뽕이 쓰였다. 히로뽕은 마약류 중에서도 주류다. 지난해 대검찰청이 공개한 <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2022년 전체 ‘마약류’사범은 1만8395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중 아편, 모르핀, 헤로인 등 마약사범은 2551명, 대마사범은 3809명이다. 히로뽕은 마약이나 대마와 다른 ‘향정신성의약품(향정)’으로 분류되는데 히로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향정사범은 1만2035명으로 전체 마약류사범의 65.4%를 차지했다. 복잡한 마약업계에서 히로뽕계 거물을 ‘마약왕’이라고 부르는 데 큰 무리가 없는 이유다.
M처럼 히로뽕계 큰 손으로 꼽히는 인물은 10명 내외로 파악된다. 많은 이들이 한국을 마약 청정국이라고 여겨왔지만, 토종 마약왕들은 일반인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 사실 오래전부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히로뽕의 원산지는 일본이다. 일본 약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가이 나가요시가 천식 치료제를 연구하다 만들었다. 나가이 나가요시는 1894년 메스암페타민의 합성법을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이후 ‘깨어 정신을 차리게 한다’는 뜻의 각성제로 불렸다. 배고프지도 지치지도 않게 해주는 ‘초인의 약’이다.
메스암페타민 성분의 각성제는 미국과 독일 등에서도 상품화됐다. 일본에서도 ‘노동을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필로폰’이라는 상품명이 붙어 팔렸다. 필로폰의 일본식 발음인 ‘히로뽕’은 각성제의 대명사가 됐고, 한국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도 실렸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시기 국가가 나서 히로뽕을 생산해 군인과 노동자에게 배포했다. 패망 후 많은 일본인은 히로뽕에 의지해 현실을 잊으려 했다. 투약자가 늘어나면서 ‘뽕을 맞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심각한 의존 증상과 부작용은 뒤늦게 발견됐다. 히로뽕이 초인의 약이 아니라 망국의 약으로 확인되자 일본 정부는 1951년 이를 금지했다.
히로뽕은 사라지지 않고 암시장으로 흘러갔다. 이때 일본에 남아 있던 재일조선인들이 생계를 위해 히로뽕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기초 화학 지식도 없이 어깨너머로 배운 제조법으로 히로뽕을 밀조해냈다. 히로뽕이 전국으로 퍼져가자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은 히로뽕 대유행을 ‘일본의 아편전쟁’이라고 불렀다.
히로뽕이 한국에 처음 상륙한 것은 1964년, 재일조선인 히로뽕 기술자에 의해서다. 이들은 일본 폭력단인 야쿠자의 후원을 받아 한국에서 히로뽕을 생산한 뒤 일본으로 수출했다. 이후 수많은 제자가 양성되면서 한국은 세계 최고 품질의 히로뽕 생산국이 됐다.
그러니까 M은 60년 전 시작된 한국 ‘뽕의 계보’를 잇는 후계자 중 한 사람인 셈이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 속 마약왕과 달랐다. 정장을 차려입고 ‘007가방’을 주고받으며 거래하지 않았다. 초점 없는 동공을 가진 ‘약쟁이’도 아니었다. 평소에는 편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야구모자를 썼다고 했다. 늘 젊게 살아가려는 ‘신도시 아저씨’를 연상케 했다.
상상과 현실이 너무 달랐던 마약왕의 세계. 그 내부를 들여다본 약 3년에 걸친 취재 일부를 5회에 걸쳐 공개한다. 한국에 히로뽕이 소개돼 전파되는 과정과 변화를 히로뽕 세계의 거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주로 쓰는 ‘히로뽕’이라는 용어를 기사에도 썼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실제 한국의 마약왕들에게서 듣는 대한민국 히로뽕 유통의 역사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