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장·국립중앙도서관 관장 1년 이상 ‘공석’
사서 인력 확충·작은도서관 예산 확보 등 산적한 현안에도 “적격자 없음” 반복
국내 도서관 정책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두 자리가 장기간 공석이다. 대통령 소속으로 도서관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장은 2022년 5월부터 1년 9개월째, 도서관법에 따른 국가대표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의 관장은 2022년 9월부터 1년 5개월째 공석이다.
도서관위원회 위원장 선임이 늦어지면서 2022년 4월 7기 도서관위원회의 임기 만료 후 새 위원회 구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위원장이 선임돼야 위원장이 위원을 위촉해 위원회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도서관 정책 수립·심의·조정 업무가 1년 10개월째 멈춰 있다. 윤석열 정부는 위원회 축소 방침에 따라 도서관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에서 문체부 소속으로 격하하려 했지만, 법 개정에 막혀 일단 현행대로 대통령 소속으로 남아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은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지난 관장 임명 때부터 개방형 직위로 바뀌고 처음으로 2019년 문헌정보학계 출신인 전문가가 관장으로 임명됐다. 과거엔 문체부 고위 공무원이 맡던 자리다. 첫 전문가 관장이 임기를 마치고, 새로 관장을 뽑기 위해 3차례에 걸쳐 공모를 진행했으나 매번 ‘적격자 없음’으로 임명하지 못했다. 연거푸 임명 절차가 무산되면서 도서관계에는 ‘정치적 고려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마저 돌고 있다. 관장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시 고위 공무원이 가는 자리로 만들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리 아냐
국립중앙도서관은 국내 단행본과 온라인자료 등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모든 저작물을 납본을 통해 수집·제공·보존하며 국가 서지 정보를 작성하고 표준화하는 역할을 한다. 직무 대리 체제로는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인사와 대외관계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런 우려 속에 한국도서관협회는 지난 1월 10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도서관협회는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장·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을 도서관 분야 전문가로 조속히 채용하고, 국립중앙도서관 지식정보운영부 직제 축소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유 장관은 국립중앙도서관장 후보자가 4명이고, 대부분 문헌정보 전문가라면서 법무부에 인사검증 요청을 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문체부에 따르면 아직 후보자를 물색 중인 단계로 보인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립중앙도서관장도, 도서관위원회위원장도 인사검증이 진행 중이진 않고 후보자를 계속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적격자가 나오지 않았다. 도서관장은 공모를 다시 해야 하는데 공모를 한다면 후보자를 찾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도서관계 수장의 장기간 공석 속에 도서관 정책은 삐걱거리고 있다. 도서관과 독서 관련 예산도 줄었다. 병영 독서 활성화 지원 사업은 20억원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문체부에서 15억원, 국방부에서 5억원을 지원해 3년간 전개됐던 사업이다. 지역 도서관에서 작가 등을 초청해 여는 문화행사인 ‘길 위의 인문학’ 예산도 줄었다. 곽승진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충남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은 “군에 있는 병사와 장교들에게 독서 코칭을 하면서 사회에 나갔을 때 문화적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우리 사회가 병사들에게 줄 수 있는 작은 혜택이었는데 아예 예산이 사라졌다. ‘길 위의 인문학’ 사업 예산도 20% 이상 줄어 80억원 수준이다. 문화 혜택을 받기 어려운 인구 감소 지역의 상황이 더 열악해질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작은도서관 진흥법에 따라 500가구 이상의 아파트단지에 무조건 작은도서관을 설립하게 돼 있다. 하지만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만들기만 하고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는 곳이 많다. 사서직 관장 채용 등에 있어서 지자체의 도서관법 미준수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과 함께 사서직 처우개선, 감정노동에 대한 정부 지원책 마련도 시급하다.
도서관계에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했는데, 위원장·관장의 공백이 길어져도 별문제 없다는 인식은 우려스럽다. 도서관협회 지식격차해소위원을 지냈던 심민석 인제 기적의도서관 관장은 도서관 발전이 정체기를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서관 운영의 어려움은 그냥 나눠도 돌아간다는 인식에서 생깁니다. 대출 반납이라는 기본 업무만 하게 하면 결국 하향 평준화가 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장 자리가 오래 공석이어도 무슨 문제가 있겠냐라고 말한다면, 그건 미래세대를 위해 발전을 꾀하는 게 아니라 기본만 하면 된다는 생각의 발로인 거죠. 그렇게 기본만 말하면 어느 순간 그 기본 자체가 낮아집니다. 향후 10년, 20년의 관점에서 문화와 교육을 본다면,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도서관 지적 자유 침해 등 과제 산적
도서관 ‘지적 자유 침해’ 대응책 마련도 시급하다. 일부 보수·종교단체에서 성평등·성교육 책의 내용 일부를 문제 삼아 책을 빼라는 요구가 심심찮게 되풀이되고 있다. 그때마다 사서의 정상적인 도서 선정 업무가 위축되고, 민원 대응 부담이 커졌다. 곽승진 회장은 “도서관의 자료 선정에 보수·종교단체가 반발하는 사례는 미국에서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사서 개인이 판단해서 하는 게 아니고 여성가족부나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공공에서 추천한 책으로 우선 목록을 만들고, 도서관의 자료 선정 위원회에서 통과된 자료를 구매하게 된다. 이렇게 선정된 도서를 이용자 본인이 아닌 제3자가 읽어라, 읽지 말아라 할 권리는 없다. 이는 도서관의 지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곽 회장은 “과거 군부정권 때 금서도 지금은 아주 좋은 책이 된 사례가 많다. 정치와 종교에 구애되지 않고 이용자가 좋아하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각 도서관이 자료 수집 원칙을 만들어 제공하면 된다”고 말했다. 심민석 관장도 “‘도서관의 모든 책은 독자가 있다’라는 법칙이 있다. 모든 책은 그에 맞는 독자가 있는데 ‘이런 책은 보지 못하게 해’라는 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도서관은 이제 책만 읽고, 공부하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유형의 문화 활동을 경험하는 공간, 교육과 돌봄이 결합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도서관의 기능이 복합적으로 발전하지만, 아직 이를 뒷받침할 전문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사서들은 독서 프로그램을 비롯해 도서관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문화 활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단순반복 업무를 벗어나 전문성에 기반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 사서의 처우와 근무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사서 수당은 5급 이상은 월 3만원, 6급 이하는 월 2만원으로 42년간 그대로이고, 법정 사서 기준은 지키는 사례가 드물어 사실상 사문화됐다.
심민석 관장은 사서 인력 확충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지식을 전승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건데, 우리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하다 보니 도서관도 지식·정보를 넘어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세대를 초월해 가장 많이 오는 곳인 관계로 문화 시설의 효율성이 가장 높은 곳이 도서관이기 때문이죠. 다양한 인문학 강연이나 프로그램을 하는데, 어린이자료실이 조금 더 역할을 하면 돌봄 기능도 가능하죠. 도서관 사서가 청소년 고민 상담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양질의 돌봄, 양질의 문화 시설, 양질의 예술을 관람하는 곳이 될 수 있어요. 지금 열심히 일하는 사서들에게 충분한 예산과 지원이 주어진다면 그런 일을 더 좋게,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의 생각입니다. 아울러 전문 사서의 경험을 오래 쌓은 이들이 도서관장으로 더 많이 진출해야 합니다.”
도서관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만든 이후 잘 운영하는 게 더 중요하다. 심민석 관장은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하잖아요. 주민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대도시 못지않은 전시를 하고, 인문학 강연에서 좋은 작가를 만나게 해야 합니다. 그게 지역을 살리는 길이죠. 그러려면 그만큼 경험 있고, 인맥이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전문인력을 보강하고,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