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형사사건과 관련한 ‘공보’의 기준과 절차를 규정한 훈령을 찬찬히 살펴봤다. 법무부의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과 경찰청의 ‘경찰 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이다. 두 규정 모두 제1조(목적)에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국민 알권리의 조화’를 명시한다. 특히 법무부의 훈령에는 “사건 관계인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 무죄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국민의 알권리, 수사의 효율성 및 공정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적용돼야 한다”고 쓰여 있다. 또 “국민의 알권리 등을 이유로 사건 관계인의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문장도 눈에 띈다.
마음이 겸허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표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느껴져 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이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피의사실공표를 둘러싼 논란이 과연 발생했을까. 피의자가 수사를 받던 중 자살을 하는 등 사건이 터질 때는 수사기관과 언론 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비판과 함께 여러 대책이 제시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잠잠해졌다. 이런 현상은 여러 번 반복됐다.
마약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씨가 지난해 12월 27일 사망했다. 다시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권과 문화예술계, 시민사회 등에서 피의사실공표죄의 실효성을 높이는 등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인 논의가 촉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기 위해선 이씨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도 명확하게 해소돼야 한다. 이씨의 수사상황 유출 여부 등을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 중이다. 이씨의 마약 혐의 수사를 맡았던 인천경찰청이 수사를 하면 공정성 시비가 일 수도 있으니 다른 경찰청에 맡긴 듯하다. 다만 경찰이 내부 구성원을 철저하게 수사할 수 있을까. 이씨가 사망한 이튿날 윤희근 경찰청장은 “수사가 잘못돼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은 “수사사항 유출은 없다”고 했다. 자기 식구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요식 행위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수처는 피의사실공표죄를 수사할 수 있고 경무관 이상 경찰관은 기소도 할 수 있다. 지난 70년 동안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된 사례는 없다. 차기 공수처장 인선이 답보 상태이긴 하지만,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보여 줄 수 있는, 이정표가 될 만한 사건임은 틀림없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