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입사 동기 A의 집에 놀러 갔다. A와 다른 동기 B, 나 이렇게 셋이 모였다. A가 지난 8월 출산을 한 이후 여자 동기 셋이 한데 모인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기는 인스타그램 속 사진을 보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동기가 아이를 낳은 것도 신기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아기는 그 자체로 더 신기했다. 내 생에 갓난아기를 마주한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다.
회사 생활을 하며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쓰는 선배들을 숱하게 봤다. 휴직을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돌아오고. 공백기에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은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했다. 대학 동기 중엔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다수이고, 결혼했어도 아이가 있는 집은 아직 없다. A의 사례는 내가 경험한 가장 ‘가까운’ 출산이었다.
A의 집에 약 5시간 머물며 ‘아기가 있는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미디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 연출된 장면이 아닌 ‘진짜 육아’를 보는 일은 귀했다. 아기의 말간 얼굴을 보고 있자니 바깥의 온갖 어지러운 일이 먼지처럼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반대로 A는 아이를 출산하고 기후위기·전쟁과 관련한 뉴스에 더 촉각을 세우게 된다고 했다.
A를 만난 다음 날엔 절친한 C와의 저녁 약속이 있었다. C는 3년차 변호사로, 자주 보지는 못해도 2~3개월에 한 번씩 만나 근황을 공유한다. 이날의 주요 대화 소재는 C가 최근에 했다는 소개팅이었다. 적극적이던 상대와 달리 C가 만남을 주저한 결정적 계기는 “자녀 교육관이 어떻게 되느냐”는 말 한마디였다고 한다. 어렵게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 이제 막 일에 적응한 C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주제였던 듯싶다.
C와의 이날 대화는 돌고 돌아 “할머니가 되어도 우리가 ‘싱글’이라면 같이 살면서 노년을 보내자”라는 우스갯소리로 끝이 났다. “우리가 나이가 들었을 때는 이미 비혼 여성에 대한 서비스 산업이 눈에 띄게 발전했을 것이다”란 가설도 자신 있게 덧붙였다.
30대에 들어서 마주한 또래 여성의 삶은 이처럼 다채롭다. 바라보는 방향, 나아가는 길은 조금씩 달라도 그 중심에 ‘일’이 빠지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을 보며 나의 간접경험의 폭도 넓어진다. 20대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난데없이 지인들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총선이 다가오면서 쏟아지는 정치 뉴스 때문이다. ‘청년정치’란 용어가 눈에 들어오고, 으레 따라붙는 익숙한 얼굴도 보인다. “거악과의 경쟁”을 운운하는 그의 말과 행동에선 내 주변에서 공유하는 고민과 사유가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다. 현실이 전쟁터인 청년들이 전쟁터 장수 놀음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문득 지난 대선도 떠오른다. ‘이대남 열풍’을 좇다 역대 최소 0.7%포인트 표차라는 결과지를 받아 들고서야 뒤늦게 부랴부랴 여성 청년 유권자를 찾던 이들. 그랬던 이들이 또다시 여성 청년에겐 투표권이 없는 양 떠들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이 상상하는 여성 유권자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개딸’ 따위의 허상 말고, 무언가를 상상할 만한 구체적 상이라는 게 과연 존재는 하는 건지 궁금하다.
<이유진 사회부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