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라스트 세션>·<아이히만>·<히스토리 보이즈>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난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폭염 구간인 7월과 8월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작품이 유독 많이 상연돼 열띤 논쟁을 야기한 탓일지도 모른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런던 햄스테드 서재를 통째로 옮겨놓은 연극 <라스트 세션>은 요란한 대국민 담화 라디오 뉴스로 시작된다. 공습경보가 울리고 수송기가 런던 시내를 관통하는 1939년 9월 3일, 프로이트 저택을 방문한 영문학자이며 소설가 C. S. 루이스가 전시 상황이니 토론은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제안했다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가?”라며 불호령을 듣는다. 83세 구강암 말기의 프로이트는 무신론을 대변한다. 유신론으로 선회한 루이스의 속내가 궁금해 입천장에 철판을 달고 겨우 대화를 하면서도 토론을 자처했다.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지루한 논쟁이 이어질 거라 예상했으나 실제 연극은 인간의 욕망과 억압에 대한 만담에 가까웠다. “인간은 적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히틀러는 유대인이라는 적을 만들고 신의 뜻이라며 분란을 일으켰다”는 프로이트의 분석에 루이스는 “히틀러라는 악이 오히려 선을 활성화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성을 강화한다”고 응수한다. 실제 이 둘은 만난 적이 없다. 가상 대담으로 구성된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
연극 <아이히만, 암흑이 시작하는 곳에서>(이하 아이히만)는 본격적으로 ‘악’을 언급한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 학살) 전범 루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과 직접 만났다는 상상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아이히만이 수백만명을 집단 학살하는 서류에 서명한 것은 직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자 한나 아렌트는 “침묵하고 못 본 척하는 것이 바로 악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일갈한다.
실존 인물들이 언급하는 제2차 세계대전과 악에 대한 논의는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1980년대 영국 명문 사립고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입시반에서 다루는 홀로코스트는 보다 냉철하다. 문학교사 헥터는 “대량학살터인 아우슈비츠에 수학여행 가서 샌드위치를 먹고 사진을 찍는 게 가능한가”라며 애도 외의 모든 행위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입시 전문가 어윈은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를 다른 방식으로 보는 방법을 고민해 보라”고 제안한다. 입학 사정관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다.
이 세 작품은 주제에 맞는 특별한 무대 예술을 선보인다. 특히 <아이히만>은 샤워기를 연상시키는 조명과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벽체 구멍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죽음의 가스실을 체험케 한다. 악을 활성화하는 요인에 대한 석학들의 해석은 ‘무관심’과 ‘혐오’다. 프로이트는 서로의 다른 생각,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토론하라고 말한다. 두 작품은 8월에 막을 내렸고, 연극 <라스트 세션>은 9월 10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