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철 기후정의 운동가 인터뷰
김선철 ‘기후정의 운동가’는 기자의 오랜 지인이다(그는 ‘위원장’ 내지는 ‘국장’, 심지어 ‘활동가’와 같은 직책 표기도 운동의 진정성을 알리는 데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인터뷰 자리에서 굳이 직함을 표기하려면 ‘운동가’로 써달라고 부탁해왔다). 지난달 사적 모임 뒤 우연히 귀갓길이 겹쳐 버스를 같이 타고 이동 중 그와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기후정의운동’ 이야기를 나눴다. 생소한 주제였고, 그동안 여러 차례 내년 총선 구도와 전망을 다루는 기사를 쓰면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지난 8월 14일 경향신문사에서 그를 만나 좀더 깊숙한 대화를 했다.
-기후정치를 풀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쯤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언제부터 쓰이고 있는 겁니까.
“아직 제대로 쓰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시민사회 안에서도 어떤 시민권을 얻은 말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고.”
-서구, 특히 유럽에는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내건 정당이나 의원들이 있지 않습니까.
“서구권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어요. 아프리카나 남미, 남반구라고 불리는 나라들에도 그런 정치가 없지 않고요. 사실 정치를 단지 국회의원 숫자로 보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 담론의 확산 결과로 의원들을 배출하는 사례는 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니까요. 녹색당과 같은 기후 이슈를 전면에 건 유럽연합의 정당들이 또 기후만 이슈로 삼는 것도 아니고요. 미국의 경우 민주당 안에 들어가 있는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민주적 사회주의자들) 그룹은 사회불평등 문제로 기후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지난해 청소년기후행동이 조사한 자료를 보니까 OECD 국가들 사이에서 인식 수준이나 정부 책임을 묻는 정도는 상당히 높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걸 정치적으로 어떻게 풀어야 한다, 이런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낮은 편인데요.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그건 맞아요. 한국 국내 여론조사뿐 아니라 퓨리서치센터나 해외에서 나온 국가 간 비교연구를 보더라도 한국은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의식, 그리고 기후위기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원인에 대한 의식은 상당히 높은데 그것이 정치적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어떤 큰 장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대 양당이 제도정치를 독식하게 만드는 선거법도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고요. 이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어떤 사회적 힘을 만들어내느냐가 큰 과제일 것 같긴 합니다.”
-기후정의행동에서 지난해 9월 24일 행진한 것과 함께 생각나는 일이 국회 정문에 쇠사슬을 묶고 진행한 ‘투쟁’이었어요. 그게 언제였죠.
“2020년입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있었던 비폭력 직접행동이었죠.”
-그때 연행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곧바로 풀려났나요.
“조사받고 나와서 결국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더 조사는 안 받았습니다.”
-한국 정부도 기후위기 대응 시급성이라는 대의를 인정한 걸까요.
“인정했다기보다는 여러 번 시민불복종 행동 참여를 했는데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나오는 행사들, 예를 들어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마지막 전체회의를 서울 노들섬에서 열었습니다. 길에 드러누운 시민불복종 행동 참여자들을 경찰이 사지를 들어 옮기기는 했지만, 검찰이 기소하진 않았어요. 기록에 남기기 싫어하는 듯했습니다. 국회에서 했던 행동들도 검찰에 송치는 했지만 그런 고려가 있지 않았나 싶고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됐을 때 민주당사 앞에서 입구를 봉쇄하고 시위를 벌였는데 그것도 송치까지 되고 기소돼 재판을 8번인가 받았는데 나중에 민주당 측에서….”
-정상참작 해달라는 탄원서라도 썼나요.
“정상참작은 아니고 처벌불원서를 냈습니다. 지난해는 재판이 많았는데 한국의 경우는 재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 한국 사법부에 기후문제에 대해 어떻게 보면 교육하는 장으로 자리잡힌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판결이 검찰 구형보다 감형된 결과가 나오고 두산중공업 페인트 행동은 무죄로 결론지어졌습니다. 대부분 판결마다 유죄는 인정하지만 또 이제 기후위기 대응의 필요성, 그리고 한국에서 법적 효력을 가지는 국제 조약에 한국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항상 인정됐던 측면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인 변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변화의 밑바탕은 깔아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오송 지하도 참사나 새만금 잼버리대회가 엉망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기저에 깔려 있는 것도 기후위기 문제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요.
“지금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재난이 있을 때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끔 이제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점점 더 이상기후 현상은 많아질 텐데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과학자들, 국제 시민사회가 말해오던 부분 아닙니까.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정부는 물이 넘치면 어떻게 퍼낼까, 불이 나면 어떻게 끌까만 말하고 있고 어떻게 물이 넘치지 않게 할까, 불이 나지 않게 할까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어요. 재난이 있었을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만 이야기하지 실제로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끔, 온실가스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 대비가 없다는 측면에서 어떻게 보면 그 재난의 원인을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기후위기 자체가 글로벌화된 현상이기 때문에 일국 수준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더라도 기후악당들, 예컨대 중국이나 트럼프 시대의 미국 같은 주요배출국이 안 움직인다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기저에서 진행되는 너무 거대한 변화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기후악당에 항의하는 직접행동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할 텐데 과학?기술자들이 IPCC(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를 내는 식으로 경고하는 것 외에 마땅히 제어할 해법은 없다는 점, 그게 문제 아닐까요.
“아니요. 해법은 있는데 그 해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인 거죠. 저는 오히려 시민들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텀블러 들고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시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재활용·분리배출 열심히 하는 분들은 점점 더 늘어나는데 문제는 그걸 가지고 이게 해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죠. 만약 탈플라스틱을 한다고 하면 시민들에게 ‘플라스틱 쓰지 마세요’, ‘최대한 적게 쓰세요’를 이야기하는 것은 맞는데 문제는 시민들에겐 선택지가 없잖아요. 마트뿐 아니라 재래시장을 가더라도 채소나 과일이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 통에 들어가 있는 걸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강연할 때 많이 하는 이야기이지만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애 방에다 초콜릿이랑 사탕을 깔아놓고 ‘먹지마, 먹지마!’를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플라스틱 생산을 어떻게 줄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을 어떻게 없앨 것인지 이건 사실 정책의 문제인데 그 정책은 수립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하지 마세요!’를 말하는 건 시민들에게 죄책감을 불어넣으면서 문제 해결과는 아무 상관 없는….”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거죠.
“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시민이 많이 사용하는 가정용 전력·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이 측정에 따라 다르지만, 한 10%에서 15% 사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포스코라는 기업 하나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13%입니다. 온 국민이 집안의 전기를 다 끊고 도시가스 다 끊고 어둡게 살고 에어컨 안 쓰고, 난방 안 하고 살아도 포스코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를 다 못 쓴다는 말이거든요. 문제의 해법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가 드러나는 건데 정부는 계속 그 산업계의 온실가스 의무는 계속 낮추면서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도 없고, 어떻게 보면 이런 것 자체가 시민들이 무력감과 혐오와 냉소를 갖게 합니다. 특히 ‘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못 하고 있어요. 이건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전임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그래도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두 가지 정도 있어요. 윤석열 정부는 올해 3월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 40%를 달성하겠다고 했는데 그 40%도 가짜였어요. 한 31% 정도 됐는데 이제 그것도 너무 높다, 기업들에 부담이 된다며 줄이려 했는데 한국도 가입한 국제협약에서 통과된 것이기 때문에 줄일 수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핵(원전)발전을 늘리는 방향으로 간 거죠. 그런데 사실 문재인 정부 때 탈핵을 내걸었지만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었거든요. 모든 걸 전 정부 탓하는 윤석열 정부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기 지지층을 끌어내기 위해 마치 문재인 정권이 탈핵을 했던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핵발전을 더 늘리는 게 이게 차이 나는 하나고,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이게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부분인데,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똑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마치 기후행동을 하는 것처럼 말은 했는데, 윤석열은 그런 말조차 안 한다는 겁니다.”
-기후정의동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단체의 목표로 ‘기후위기를 환경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성장체제의 문제로 보고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연대를 건설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후위기를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하지 않는 환경이슈로 보는 것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네요.
“그렇죠.”
-그렇다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같은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건 양면의 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CSR이 먼저 나오고 ESG가 다음으로 나왔는데 ESG가 나오면서 기후문제가 중요하다는 사회의식은 퍼지고 있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 ESG가 문제의 해결, 즉 그 자체가 어떤 해법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ESG는 사실 기업들이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것이지 국가 정책은 아니잖아요.”
-탈정치적 경향으로 귀결되는 녹색소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밝혔는데 에너지 기본권이나 보편적 이동권·주거권과 같은 권리와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은 양립 불가능하다고 보는지요.
“기자님은 양립 가능하다고 보세요?”
-글쎄요.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적 생활양식 자체가 어쨌든 상품 경제이고 대량 소비를 유도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건 이윤이에요. 이윤을 위해 성장이 필요하고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하고…. 이윤이 최우선이지 주거 기본권·에너지 기본권이 우선순위가 아니란 말이에요. 기후위기도 근원을 따져봅시다. 석탄이 있어 캐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석탄은 가치가 있어요. 팔면 돈이 되니까. 그런데 그 위의 또 다른 돌, 생명, 나무, 숲, 마을은 아무런 가치가 없고 오히려 비용입니다. 사실 이 관점이 지금의 기후위기 생태위기를 불러일으킨 거거든요. 정규직·비정규직이나 여성·남성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왜? 내가 이윤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돌봄노동은 가치가 없잖아요. GDP에 안 들어갑니다. 왜? 자본주의이니까. 어떤 동물, 예컨대 돌고래는 가치가 큽니다. 수족관에 넣어 사람들에게 구경하게 하면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은 건 쓸모가 없는, 이런 식으로 차별의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됐을 때 항상 희생지대가 생깁니다. 기후정의에서는 지금 정책들은 희생지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겁니다.”
-8월 10일에 내년 총선 전략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던데 기후정의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지금 논의 중입니다. 9월 1일 또 한 차례 논의할 예정이고, 기후정의에 관심을 갖는 진보정당마다 논의를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녹색당원이지만 녹색당도 당장은 당무위가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대응에 집중하고 있는데 뭔가 모색해봐야겠죠. 저는 기후정의 의원을 만들겠다가 목표는 아닐 것 같고, 일단 지역구에서 후보는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에서 그런 시각이 조금씩 커지고 있어요.”
-출마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나요.
“아직까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정의운동은 기후 문제만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 불평등과 차별, 노동, 돌봄 등 전반적인 삶의 문제를 자신의 의제로 삼고 있는데, 지금의 여야가 기후위기 시대에 서민의 삶을 보호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일에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거대 양당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와야 하는데, 총선을 앞둔 지금 만족할 만한 대안은 보이지 않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정치공학적으로 후보를 내기보다는 기후정의의 의제들이 담론과 정책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세력화가 절실하다는 문제의식이 많이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는 공동의 강령, 혹은 공동의 요구안이라도 먼저 만들어 함께할 수 있는 후보나 정당을 모아보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각 정당에 정책질의서를 보내고 요구 행동 같은 걸 한다는 말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사실 2020년 총선 때 그걸 했습니다. 당시 모든 후보자에게 네 가지 질문을 던지는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당시 ‘다 하겠다’고 답했는데 하기는 개뿔. 그중 70명이 당선됐고, 다 OK 했던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2019년 기후위기비상행동을 만들어 국회 앞에서 비폭력 직접행동을 하며 3대 요구를 냈습니다. 그 3대 요구가 기후위기 비상선언해라, 국가가 제도로 뭐를 만들어라, 온실가스 감축을 하라고 했는데 요구한 건 대충 다 받아들여졌어요. 탄소중립위원회 만들고 비상선언하고 온실가스감축계획 나오고 했는데 돌아보니 기후운동이 스스로 힘을 키우기보다 정치권에 의탁했더라고요. 그게 패착이었던 것 같아요. 정치인들에게 이걸 해달라고 요구하면 ‘응, 할게’라고 답은 하지만 안 하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는 9월 23일 준비 중인 대규모 기후정의행진 때 내걸 구호도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으로 정했습니다. 아직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기후정의 후보가 필요하다면 아래로부터 힘을 키워 실질적인 압력이 될 수 있는 기후정의운동의 맥락에서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이건 잊지 말고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게 있을까요.
“9월 23일 토요일에 기후위기 해결을 요구하고 불평등 해결을 촉구하는 기후정의행진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어렵지만,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에 맞서 기후정의에 입각한 시민들의 힘을 보여주는 기회이므로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합니다.”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