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깎이 공장 부장이 경쟁관계에 있는 중개무역회사를 설립한 사건’은 대법원이 경업금지약정을 무효로 봤습니다. 하지만 경업금지약정에 영업비밀 유출 시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경우 퇴사자가 손해배상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전무 네. 우리 경쟁사에 납품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장 김 부장은 전직하지 않는다는 약정을 하고 나가지 않았나요?
전무 네. 맞습니다. ‘퇴직 후 2년 이내에는 원고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회사를 운영하여 직·간접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사장 그에 대한 대가를 줬던가요?
전무 대가는 없었습니다.
사장 그럴 경우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아보시오.
전무 변호사 의견으로는 법원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고, 시급한 건이니 전직금지가처분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장 당장 진행시켜요.
모든 국민은 이직의 자유를 가진다
대이직의 시대입니다. 공채가 사라지고, 수시채용·직무별 상시채용이 늘었습니다. MZ세대 이직률은 45.5%를 달성했습니다. 2023년 각 기업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자발적 이직률(해고·희망퇴직·정년 제외)은 삼성중공업 6.12%, 네이버 6.1%, 현대중공업 2.4%로 각각 2020년 1.23%, 3.9%, 1.4%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직장에서 자신이 맡은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의미인 “조용한 사직”은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올랐습니다. 젊은 세대라고 조직에서 성장하고 싶은 것은 다르지 않지만, 예측이 안 되는 시대에서 ‘삼성맨’, ‘현대맨’ 같이 기업과 개인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떠나는 노동자가 두렵습니다. 영업비밀을 잘 알고 있는 직원이 경쟁회사로 이직한다면 영업비밀이 유출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안서약서를 쓰게 하고, 경업금지약정(또는 전직금지약정)을 합니다. 특히 경업금지약정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퇴직 후 오랜 기간 일한 자신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동종업체에서는 당분간 일할 수 없고 다른 업종의 회사에 들어가거나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약정입니다.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15조 규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경업금지의무(Prohibition of compe-titive transaction)에 관해 재직 중과 퇴직 후를 나눠 보겠습니다. (1)재직 중에는 경업금지(겸직금지) 의무가 있고, 특별한 약정이 없더라도 동종 회사에의 이중취업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행위로서 징계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서울고법 2010누36499: 대법원 확정, 대법원 2010다99279 판결도 참고). (2-1)그런데 퇴직 후의 전직금지약정이 없는 한 전직금지의무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근로자의 직업선택 자유를 직접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2-2)다만 퇴직 후 전직금지약정이 없더라도 매우 특별한 경우 영업비밀보호를 위해 부정경쟁방지법을 근거로 영업비밀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사용자의 전직금지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2마4380) (2-3)더 나아가 앞에서 말한 전직금지약정이 있는 경우 그 효력은 어떻게 될까요.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결국 전직금지약정이 유효한지 여부입니다. 대법원이 그 판단 기준으로 “경업금지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이다”라고 전제하고,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은 ①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②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③경업 제한의 기간 ④지역 및 대상 직종 ⑤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⑥근로자의 퇴직 경위 ⑦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라고 합니다(대법원 2009다82244 판결).
특히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뿐만 아니라 당해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 고객관계나 영업상의 신용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시합니다. 대법원 판결이 여러 기준을 제시하면서 친절히 설명하려고 했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사건에서는 사용자와 퇴사자 간 서로 자신의 해석이 옳다며 분쟁을 벌이는 사례가 매우 많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각자 법원의 최종 판결·결정이 나올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대립합니다. 따라서 전직금지에 대한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법 규정, 대법원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이 글 앞부분의 대화는 바로 위 대법원 판결의 기초가 된 ‘손톱깎이 공장 부장이 경쟁관계에 있는 중개무역회사를 설립한 사건’인데, 경업금지약정을 무효로 봤습니다. 다시 말해 전직금지와 관련해 다른 업체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는 ‘리딩 케이스(Leading Case)’ 판결에서 회사가 패한 셈입니다.
경쟁사로 2년간 이직을 금한다
그렇다고 법원이 전직금지약정을 대체로 무효로 보는 것도 아닙니다. 전직금지약정은 원칙적으로 유효한 계약입니다. 다만 약정한 전직금지기간이 과도하게 장기라고 인정될 때는 적당한 범위로 전직금지기간을 제한(대법원 2006마1303-대체로 1년으로 감축하는 판결이 많습니다)하거나 무효로 보고 있습니다.
A씨는 1998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4년간 D램 설계 관련 업무를 담당했고, PL(Project Leader)까지 했습니다. ‘퇴사 후 2년간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를 창업하거나 경쟁업체에 취업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영업비밀 등 보호서약서(전직금지약정)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A씨는 경쟁사인 마이크론으로 이직했습니다.
법원은 삼성전자가 신청한 전직금지가처분을 인용(금지기간 2년, 위반 시 1일당 500만원 배상)하면서, “D램 기술은 국가 핵심 기술이기에 직업선택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결정했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22카합21499). 회사가 ①이미 3년간 특별인센티브 5500만원을 지급했고(약정 내용에 회사가 기재한 취업제한 문구가 주효했습니다) ②해외연수 기회도 제공했으며 ③1억원의 추가적인 대가 제안을 근로자가 거부한 점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경업금지약정에 영업비밀 유출 시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경우 실제로 퇴사한 노동자가 손해배상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예를 들면 서울중앙지법 2014가합589454: 근로자는 이직한 회사와 연대해 1억1700만원, 단독으로 1억7300만원 배상). 최근 경쟁사에 이적한 수능 언어영역 ‘1타 강사’가 메가스터디에 전속계약 위반으로 40억원을 배상하게 한 판결도 참고할 만합니다. 별도로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을 유출하면 민사(전직금지) 차원을 넘어 형사처벌될 수도 있습니다. 이직하더라도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합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lawyer_h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