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국씨(가명·83)는 노인 일자리로 한 달 27만원을 번다. 기초연금이 유일한 소득인 김씨에게 노인 일자리를 통한 27만원의 추가 수입은 없어서는 안 될 돈이다. 아내와 함께 아끼고 아껴서 빠듯하게 한 달을 산다. 물가가 오른 이후에는 돼지고기 한 근 사먹기도 힘들다. 김씨는 노인 일자리로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방지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인근 지역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해 상황을 살피고 대화도 하면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다가 지난가을 초등학교로 일자리를 옮겼는데,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생겼다. 아침 9시까지 학교에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 했다. 사람이 많기도 하거니와 경로우대석에 앉아 있다 보면 젊은 직장인들에게 눈치가 보였다. 김씨는 “나도 일하기 위해 출근하는 건데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나. ‘저 노인은 왜 이렇게 바쁜 시간에 굳이 지하철을 타고 있을까’라며 욕할 것 같다. 가능하다면 다시 동네에서 하던 일로 바꾸고 싶다”라고 말했다.
노인 무임승차제도가 지하철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일각에서는 출퇴근 시간에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노인은 소득이 있는 노인이라 요금 지불 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김씨처럼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야만 하는 노인들도 있다. 서울시 지하철 기본요금(교통카드)은 1250원이다. 만약 매일 왕복 1회씩 무료로 이용한다면 30일 기준 7만5000원의 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1인 가구 기준 기초연금(최대 32만원)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김씨처럼 기초연금과 저임금 노인 일자리가 유일한 소득인 상황에서 추가 교통비 지출은 막대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노인 무임승차제도’가 적자 원인?
서울시가 지하철·시내버스 요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65세 이상 ‘무임승차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1월 30일 오세훈 시장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하철·시내버스 요금 인상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를 주요 적자 원인으로 꼽았다. 오 시장은 “서울 지하철 요금은 8년째 묶여 있다. 300~400원 올린다고 해도 운송 원가에 턱없이 못 미친다”라며 “지하철 무임 수송에 대한 기재부 지원이 이뤄지면 요금 인상 폭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당기순손실이 2017년 5254억원에서 2019년 5865억원으로 늘었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승객 감소가 겹친 2020년에는 1조1137억원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역시 적자가 1조원을 넘었다.
오 시장의 요구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중앙정부도 빚을 내서 나라살림을 운영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어렵다고 지원해 달라고 하는 것은 논리 구조가 맞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지자체와 기재부의 재원 공방은 ‘노인 무임승차제도’ 논란으로 번졌다. 오 시장은 지난 2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발등의 불이지만, 급격하게 고령사회가 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복지 구조를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바탕에 있다”며 “머지않아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되고, ‘백세시대’가 될 터인데 이대로 미래세대에게 버거운 부담을 지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0일 서울시가 개최한 ‘대중교통 요금 인상 및 재정난 해소방안 논의를 위한 시민공청회’에서는 이창석 서울시 교통정책과장이 2018~2022년 최근 5년간 무임손실이 3165억원에 달하며 지하철 적자의 3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노인 무임승차가 지하철 요금 인상을 불러왔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노인연령 70세로 상향 조정’, ‘출퇴근 시간 무임승차 제한’, ‘무임승차 소득별 차등 적용’ 등 무임승차 개편에 대한 갑론을박이 쏟아져 나왔다.
당초 서울시는 3월 물가대책위원회 심의를 거쳐 4월 말 대중교통 기본요금을 올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기조 유지 방침을 밝히면서 지난 2월 15일 요금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서울시는 공공요금 인상 시기를 하반기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하철 요금 인상이 하반기로 미뤄지면서 당장의 논란은 사그라들고 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사실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가 고령층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면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젊은층을 중심으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가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는 입장이니 노인 무임승차제도도 폐지하는 게 맞다는 반발이었다. 세대 갈등 양상을 보이던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지하철 운영기관의 적자가 심화되면서 적자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한 해 서울교통공사 기준 노인 지하철 무임승객은 1억7077만명이고 연간 비용은 2311억원에 달한다.
노인 무임승차를 적자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노인의 지하철 무료이용이 배차 증가나 운행 비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지난 2월 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지하철에 빈자리가 많은 상태에서 다니는데 노인이 여러 사람 탔다고 왜 적자가 나느냐”고 말했다.
2014년 한국교통연구원이 발간한 논문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지하철 경로무임승차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노인 무임승차제도의 시행비용은 0에 가깝다. 논문은 노인 무임승차제도의 시행비용을 노인 무임승차 인원 운송에 소요되는 추가 비용으로 정의하고, 지하철 운영기관의 원가와 연간 이용객 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총원가는 수송인원에 비례하지 않았다. 논문은 “지하철 수송인원과 1㎞당 수송원가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으므로 경로무임승차자로 인해 추가 발생하는 운송비용은 0에 가깝다”고 결론내렸다. 또 출퇴근 시간대 경로무임승차자로 인한 혼잡 비용도 경로 무임승차자의 시간대별 이용패턴과 65세 미만 승차자의 이용패턴이 상이하기 때문에 혼잡비용 또한 매우 적다고 분석했다.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축소 또는 폐지한다고 수익이 유미하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 교통 이용 요금제도 개선방안 연구: 지하철 무임승차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도가 축소되면 지하철 이용을 줄이기 위해 외부활동을 줄이겠다는 응답이 43.8%에 달했다. 지하철 이용을 줄이고 버스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겠다는 사람도 12.7%를 차지했다.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폐지 혹은 축소해도 노인 지하철 이용자가 줄어들어 기대했던 만큼의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지하철 적자를 노인 무임승차제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대중교통 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지난 2월 10일 열린 공청회에서 노인 무임승차로 재정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는 서울시의 주장에 대해 “실제로 노령층의 증가가 핵심인가, 아니면 유상 승객의 감소가 핵심인가”라고 물었다. 코로나19로 급감한 대중교통 이용 수요를 회복하고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 대중교통의 이용 수요를 늘리려는 정책적 접근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인빈곤과 사회적 편익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거나 소득이 없는 노인들은 지하철 무임승차제도가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노인 일자리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임미령씨(66)는 노인연령 상향 조정 등 현행 무임승차제도 축소 논의에 대해 노인빈곤 현실을 전혀 모르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노인 대부분이 청소나 경비, 가사, 요양, 보육 등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그것도 70세 이전에나 가능하다.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도 차례가 오지 않아 낙담하는 분이 많다”라며 “국민연금이 준비가 안 된 노인이 많고, 또 연금이 나오더라도 30만~40만원으로 적은 액수인 경우가 많다. 기초연금에 국민연금까지 더해도 한 달에 60만~70만원의 소득이 전부인 분들이 태반이다. 일을 안 하면 생활이 어려운데 일자리도 없다. 여기에 지하철 요금까지 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라고 말했다. 8개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임씨도 오는 3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임씨는 “3월 중순에 계약이 만료된다. 나 또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기초연금 32만원 받고 있고, 4대 보험이 안 되는 직장에 주로 다니다 보니 국민연금 30만원이 전부다. 다음 일자리를 못 찾으면 6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데 지하철 요금까지 더 내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인숙씨(75)는 10년 전 은퇴한 이후 무보수로 이주여성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은퇴 이후 예기치 못한 사고로 경제적 손실을 본 정씨는 기초연금과 생계급여가 유일한 소득이어서 생활이 빠듯하다. 그나마 지하철 무료이용 덕분에 사회참여 활동을 할 수 있다. 정씨는 “이주여성을 지원하려면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지하철이 무료이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여기저기 다닐 수 있다”라며 “은퇴 이후 문화생활은 거의 못 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은퇴 전에 주로 하던 일이어서 내가 가진 전문성을 나눌 수 있기도 하고 교통비에 큰 부담이 없어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노인 무임승차제도 논란과 관련해 “돈 있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할 것이고 대부분의 저소득층 노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혼자 사는 노인도 많고 노인빈곤으로 인한 자살률도 높은데 교통수단마저 끊어버리게 되면 노인들에게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를 적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비용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2020년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이슈보고서 ‘지하철 무임승차제도, 지속가능성 확보하려면 운영손실 정부지원 운영기준 변경 검토 필요(신성일·이진학)’는 무임승차제도로 3650억원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무임승차제도의 비용편익을 분석한 한국교통연구원의 2012년의 연구를 2020년 물가상승률을 적용해 이같이 환산했다. 다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인 경로 무임승차제도가 노인의 외부활동을 촉진해 여가활동 증가, 경제활동 증가, 노인복지, 관광 활성화 등의 사회적 효과를 낳고 자살자 감소,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의료비 절감 등 노인복지예산 절감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돈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3년 동안 집 밖을 나오지 않고 갇혀 있으면서 고립,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가 됐다. 정부 또한 여기에 많은 돈을 썼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노인들은 소득에 따라 이동거리가 굉장히 차이가 난다. 그나마 지하철이 무료이기 때문에 일단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책 <노인을 위한 동네>에 따르면 소득은 노인의 이동권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가난한 노인일수록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고, 소득이 높을수록 더 멀리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노인일수록 소득과 이동권의 상관관계가 높은 만큼 노인에 대한 적극적인 교통복지 제도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장기적인 과제
지하철 경로우대제도는 1980년 5월 8일부터 시행됐다. 처음에는 70세 이상 노인에게 요금의 50%를 할인해주다가 1982년 2월부터 대상을 65세 이상 노인으로 확대했다. 1984년 6월에는 할인율을 50%에서 100%로 확대했고, 1997년부터 수도권 전철로 확대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할인율 100%를 처음 도입한 1984년에는 전체 서울시 인구 중 노인인구는 2.8%에 불과했다. 2020년 기준 현재 서울시 노인인구는 15.4%이고, 2035년에는 28.3%로 증가해 3명 중 1명이 노인인구가 될 전망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지하철 운영기관의 적자 개선 중심으로 논의하기보다 정년 연장, 연금개혁, 복지제도 보완 등 복지의 큰 틀에서 함께 논의해야 하는 배경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전반적으로 수명이 늘어나니 법정 혹은 복지기준에서의 연령도 올라갈 필요가 있는 것은 맞다. 문제는 이를 위한 사회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복지 혜택이 없어져도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지 다른 복지정책이나 일자리 정책 등을 보완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아직까지는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라며 “사회경제적 여건이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연령 상향 조정 등의 논의는 현재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측은 “지금 퇴직연령이 55세부터 이뤄지고 있고 보통 60세면 정년을 맞는다. 정년 이후 5년이 지나야 노인이 된다. 정년도 늘리지 않고 혜택을 중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국가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공익서비스이기 때문에 국가가 무임승차 손실액을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서울·부산·대구·인천·대전·광주 등 6개 지방자치단체는 정부가 국고보조로 무임승차 손실분을 지원해줄 것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반면 기재부는 도시철도 운영주체가 지자체이고 정부가 막대한 재정부담을 안을 수 없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지자체는 정부가 코레일에 지원하는 만큼 다른 철도 운영기관에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공익서비스 의무(PSO)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연 3800억원의 재원을 지원받고 있다. 정부는 대도시에 국한돼 있는 도시철도와 달리 코레일은 전국적으로 혜택을 제공한다고 본다.
신성일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지하철은 2500만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서울지역교통공사의 지역 간 통행이 월등하다”라며 “수도권 대중교통 체계에서라도 분석을 해보면 코레일보다 서울교통공사가 노인 무임승차나 요금 등에서 더 많이 공공에 기여하고 있다. 기존의 법적 근거에 따라 최소한 코레일만큼의 보전은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 이외의 지역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 정책연구실장은 “만약 기재부가 지원한다면 무임승차 때문에 생기는 적자를 보전하려는 명목보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교통과 관련한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노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생기는 사회적 편익 등을 고려해 전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