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일본의 유명한 의류업체 유니클로의 모회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대 40% 인상하기로 해 일본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산토리와 일본생명 등 다른 대기업들도 속속 임금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장기불황을 배경으로 30여년 동안 임금인상이 정체돼온 일본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일본에서 임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임금의 정체가 일본의 불평등과 불황의 지속과 관계가 크기 때문이다. 2013년 아베 정부는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으로 고통받아온 일본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아베노믹스를 도입했다. 대담한 완화적 통화정책, 기동적인 재정확장, 투자촉진을 위한 구조개혁 등 소위 세 개의 화살 정책을 실행했다. 그중에서도 일본은행이 통화를 발행해 국채를 매입하고 부동산과 주식시장에도 간접투자하는 양적·질적 완화 정책이 핵심이었다. 나아가 2016년에는 마이너스 기준금리와 장기금리를 직접 통제하는 수익률 곡선 통제정책을 도입했다.
아베노믹스 도입에도 실질임금 낮아져 아베노믹스를 배경으로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고 경제는 약간 회복됐지만, 목표했던 2% 인플레이션은 실현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임금인상 부진이 심각한 문제였다. 아베 총리도 기업들에 임금인상을 독려했지만 립서비스에 그쳤다. 2013년에서 2021년까지 9년 동안 물가상승률보다 명목임금 상승률이 높았다. 실질임금이 상승한 해는 3년에 불과해 현재는 아베노믹스 이전에 비해 실질임금이 더 낮아졌다. 이는 여성과 고령층 등 상대적으로 저임금 일자리가 많이 생겨난 현실과도 관련이 있지만, 기존 일자리의 임금도 별로 높아지지 못했다는 의미다.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가구소득이 정체되고 소비도 부진해 경제회복에 한계가 컸고 물가상승 압력도 나타나지 않았다. 인플레가 자극되고 경제가 활성화돼야 명목국내총생산이 높아지고 정부 부채비율도 낮아질 수 있는데 물가부터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미 몇 년 전 국제통화기금은 임금인상을 아베노믹스의 네 번째 화살로 제시한 바 있다. 공공부문 임금인상, 최저임금의 인상 그리고 임금인상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이 구체적인 주문이었다. 효과는 별로 없었다.
시민들의 불만이 커졌다. 아베노믹스로 약간 경기가 회복됐지만, 그 이득은 기업에만 돌아갔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베노믹스 초기 엔저와 수출 증가로 기업의 이윤과 주가만 높아졌다. 2016년 정부는 2단계 아베노믹스에서 일억총활약 계획을 내세우며 포용적인 성장을 강조했다. 노동시장의 1차 분배는 개선되지 못했다. 2010년대 이후 가처분소득 기준 가구소득 불평등이 악화되진 않았지만, 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17년까지 약간 하락했다. 특히 자본금 10억엔 이상인 대기업만 보면 1997년과 비교했을 때 경상이익은 3.3배 증가했지만, 임금은 0.97배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일본의 임금 정체는 국제적으로도 무척 심각하다. 1991년에서 2019년까지 1인당 실질임금이 미국은 41%, 독일과 프랑스는 34% 높아졌지만, 일본은 겨우 5% 증가했다.
사정이 이러니 2021년 10월 일본 총선에서는 임금 상승과 소득분배 개선이 중요한 의제가 됐다. 집권 자민당은 임금을 인상하는 기업에 세제 지원을 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야당들도 일시적 감세와 저소득층에 대한 급부금 지원 등을 공약했다. 총선에서 승리한 기시다 정부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모토로 내걸고 취약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통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진 중이다. 임금과 가구소득을 증가시켜 총수요를 확대하고 인플레를 자극해 불황을 극복하겠다는 방향은 한국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방향과 유사하다. 오랫동안 정체됐던 임금과 내수 중심의 경제구조를 고려하면 임금주도성장이 필요한 곳은 정작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인상은 수요확대뿐 아니라 기업들의 신기술 투자를 확대해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물론 아무리 정부가 노력해도 현실에서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물가 급등을 배경으로 이제 임금인상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확산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2022년 팬데믹과 전쟁을 배경으로 에너지와 곡물가격이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일본은행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확장적 통화정책을 지속해 미국과 금리 격차가 확대됐다. 10월 엔화가 1달러당 150엔을 찍을 정도로 평가절하됐다. 따라서 국내의 에너지가격과 인플레이션이 급등해 지난해 12월에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4%를 기록했다.
해외발 충격 인한 인플레로 상황 급변 대외적 충격으로 인한 높은 인플레이션이 상황을 크게 변화시켰다. 물가가 급등해 지난해 11월 일본의 실질임금이 전년 대비 2.5% 하락하자 임금인상 요구가 더욱 커졌다. 총리는 재계에 임금인상을 강력히 촉구했다. 전국적 노동조합 조직인 렌고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3% 인상을 포함한 5%의 임금인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기업단체인 게이단렌도 최근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다며 임금인상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따라서 몇몇 논자는 지금이 30년 동안 실패한 인플레이션을 실현할 기회라고 강조한다. 먼저 고물가를 배경으로 임금이 상승하면 기업들이 제품가격을 인상하고 다시 임금이 높아지는 물가-임금 상승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행은 임금인상이 확산되고 인플레가 정착될 때까지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지속할 전망이다.
최근 일본 기업들이 임금인상을 발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임금인상 여력이 불충분한 중소기업들을 고려하면 과연 올해 임금인상폭이 얼마나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무엇보다 임금 상승을 위해 필요한 노동자의 협상력과 시민사회나 정당의 정치적 요구는 여전히 약한 현실이다. 경제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임금인상을 통한 거시경제의 균형 회복이 필수적이다. 일본경제의 미래가 올해 임금이 얼마나 오르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