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디셉션(Deception/ Tromperie)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프랑스
상영시간 102분
장르 로맨스, 멜로, 드라마
감독 아르노 데플레솅
출연 드니 포달리데스, 레아 세두, 엠마뉴엘 드보스, 레베카 마흐데
개봉 2022년 10월 2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영국 런던. 중년의 유대계 미국인 작가이자 유부남인 필립(드니 포달리데스 분)은 갑갑한 결혼생활에 힘겨워하는 젊은 영국 여인(레아 세두 분)과 불륜관계에 있다. 필립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과의 대화와 관찰을 토대로 얻은 영감으로 작품을 쓰는 독특한 방식을 선호하는 인물이다. 일주일에 몇 번씩 필립의 작업실에서 밀회를 나누는 두 사람은 정치·문화·역사를 아우르는 거시적 이슈는 물론 매우 은밀한 성적 판타지와 개인사까지 공유하며 유대감을 키워간다. 필립은 과거의 습관대로 여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경험과 대화를 상세하게 노트에 기록하고, 이를 새로운 작품 집필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삼는다. 하지만 보편적 관습을 벗어난 두 사람의 관계는 한계를 맞이한다.
1980년대 말이란 시대적 배경이나 입체적 캐릭터, 꽤 현실적이고 신랄한 대사 등 범상치 않은 섬세함이 두드러지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군가의 실제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역시나 원작은 미국의 유명작가 필립 로스가 1990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이다. 필립 로스는 작품에 자전적 요소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이 직접 각색했다.
개인적 작가주의 중견 감독의 신작
아르노 데플레솅은 1991년 54분짜리 중편 <죽은 자들의 삶>으로 데뷔했다. 첫 작품부터 누벨바그를 계승하는 비범한 개인적 작가주의 감독이란 평가를 받으며 비평계로부터 두 팔 벌린 환영을 받은 그는 이후 <파수병>(1992), <나의 성생활: 나는 어떻게 싸웠는가>(1996)를 발표했는데 위의 3편은 모두 허구라기보다 자신의 개인적 고백이라고 밝혔다.
명성에 비해서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많지 않다. TV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포함한 17편의 연출작 중 2007년 개봉한 <킹스 앤 퀸>과 <나의 성생활: 나는 어떻게 싸웠는가>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마이 골든 데이즈> 2편만이 국내에 정식 소개됐다.
엘리트이자 지식인 출신 감독으로도 평가받는 데플레솅은 자신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진실’과 ‘고백’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작품 속에 자전적 요소를 강하게 투영시킨다는 점에서 비슷한 경향을 보인 대문호 필립 로스와 그의 소설에 큰 연대감을 느끼며 작업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1987년 가을부터 2000년 초까지 구체적인 연도와 장소를 언급하며 흘러간다. 하지만 소제목이 달린 12개의 장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매우 부정합하고 파편적인데, 보편적 영화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꽤 불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다.
가을에 어울리는 어른들의 수다
영화 <디셉션>은 불가피한 ‘기만’을 통해서라도 본능적 공허와 욕망을 채우고자 발버둥치지만, 관습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며 안도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위선과 치부를 드러낸다. 주인공 필립과 영국 여인을 주축으로 주변 인물들이 쏟아내는 주제를 망라한 대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공감과 의문을 동시에 일으킨다. 그중에서도 ‘자유연애’에 대한 죄책감이나 ‘성적 판타지’만큼 도드라지는 ‘죽음’과 ‘이별’에 관한 현실적 사색은 원작 작가나 연출을 맡은 감독처럼 동년배 관객들이라면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치 중년을 위한 <비포 선라이즈>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지금처럼 깊어지는 가을의 계절에 더 매력적으로 비칠 만하다.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의 능수능란한 연출과 더불어 극을 이끄는 두 배우 드니 포달리데스와 레아 세두의 섬세한 연기가 영화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데뷔한 드니 포달리데스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개성파 연기자로 거장 감독들이 가장 신뢰하는 배우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레아 세두는 빼어난 외모와 연기력에 더해 대대로 부유한 대기업 가문의 금수저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당연히 프랑스 영화에 많이 출연하고 있지만 국내 관객들에게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나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007 스펙터> 같은 할리우드 대작 상업영화를 통해 더 친근하다.
1933년 미국 뉴저지에서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태어난 필립 로스는 미국 현대소설의 아이콘, 현대 영미문학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다.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전미비평가협회상, 펜 포크너상, 맨부커상 등을 수상했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수차례 거론됐다.
1959년 <안녕 콜럼버스>를 발표해 문단에 들어선 그는 마지막 작품이 된 <네메시스>(2010)까지 30여편의 소설과 논픽션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가활동을 펼쳤다. 85세가 되던 2018년 울혈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필립 로스는 자신이 대중에게 많이 오해 받고 있는 2가지가 있는데 반유대주의자라는 점과 여성혐오자라는 점이라고 했다. 이는 영화 <디셉션>에서도 충분히 거론된다.
2012년 절필을 선언하며 은퇴했는데, 이 시점부터 전문 전기 작가인 블레이크 베일리를 고용해 자신의 공식 전기를 집필하도록 했다. 한국어 번역본의 표지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꼼꼼한 성격의 그는 이 작업 역시 자신은 물론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주선하고, 소장하고 있던 다양한 자료까지 제공하며 최대한 객관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고 전해진다.
유명세만큼 영화화된 작품도 10여편에 이른다. 이중 <휴먼 스테인>(2003)과 <엘레지>(2008)는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하다. 둘 다 저명한 중년의 교수가 젊은 여성과 특별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설정은 이번 작품 <디셉션>과도 중첩된다.
배우 이완 맥그리거는 유일한 장편 연출작으로 로스의 소설 <아메리칸 패스토럴>(2016)을 선택해 주연까지 겸하기도 했다. 필립 로스는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사후 공개된 미니시리즈 <미국을 노린 음모>(2020)에는 제작책임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