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사냥-‘청불’답게···날것의 폭력 담은 액션SF호러

정용인 기자
2022.10.03
짐승적 본능만 가지고 움직이는 늑대와 같은 존재에게 인간의 윤리적 판단(선악)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작위적이지 않을까.

제목 늑대사냥(Project Wolf Hunting)

제작연도 2022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21분

장르 하드보일드 서바이벌 액션

감독/각본 김홍선

출연 서인국, 장동윤, 성동일, 박호산, 정소민, 고창석, 장영남, 손종학, 이성욱, 홍지윤 외

개봉 2022년 9월 21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콘텐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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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입장에서 명절 연휴는 장이 서는 시즌이다. 명절날 오전에 제사상을 물린 사람들이 딱히 갈 데 없으면 가족 단위로 방문하게 되는 곳이 영화관이다. ‘추석=가족영화’와 같은 등식이 만들어진 까닭이다.

<늑대사냥>. 등장하는 배우들이나 영화의 홍보 포인트를 보면 전형적인 추석 겨냥 영화인데, 웬일인지 개봉은 연휴 시즌이 지난 후였다. 왜였을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가족 손을 잡고 마음 편히 볼 영화가 아니다. 19금 청소년 관람 불가(청불) 영화다. 보통 청불 딱지가 붙는 경우,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청소년 관람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문제가 될 만한 몇몇 장면이나 설정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작 <기생충>(2019)도 ‘청불’ 기준을 넘어선 장면이 몇개 들어 있었지만 15세 이상 관람가로 상당히 관대한 판정을 받았다. 반면 이 영화, 작정하고 만든 영화다. 19금 조건을 최대한 활용한 장르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한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시사 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감독은 “날것 같은 액션영화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날것의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다.

청불 영화라고 하지만 노출이 있는 건 아니다(이것만 놓고 보면 청불 조건을 최대한 활용한 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영화를 한단어로 요약한다면 이거다. 피 분수. 왜 타란티노 영화들을 보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고장난 샤워꼭지처럼 터져나오는 피 있잖나. 이 대목에서 감독은 명백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 연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단어로 요약한다면 ‘피 분수’

영화 스토리를 간략히 요약해보자. 필리핀에 도피 중이던 강력범죄자들이 일망 소탕돼 한국으로 이송해 온다. 그냥 강력범죄자들이 아니다. 연쇄살인이나 존속살인, 마약범 등 흉악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비행기 이송 작전은 실패했다. 원한을 가진 피해자가 부탄가스통을 연결해 만든 사제폭탄을 터뜨리면서 범죄자들 일부와 호송경찰도 사망했다. 다시 세워진 이송계획은 화물 벌크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 이용객들에게는 출입이 봉쇄된 화물터미널을 통한 이송이다. 한국에서 특파된 베테랑 형사들이 이 작전에 투입된다. 별문제 없이 호송 작전이 이뤄질 듯싶더니 입속에 핀을 숨겨온 범죄자 종두를 필두로 선상 반란이 일어난다. 선상 반란이 성공하려면 한국으로 이송될 범죄자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선원으로 위장한 종두의 동료들이 각종 무기를 반입한 상태. 가만 이게 가능하다고? 개연성이나 논리적 정합성을 따질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목표로 하는 것은 장르적 카타르시스다. 작정하고 한국말을 쓰는 장르영화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감독의 야심이 읽힌다. 그리고 꽤 성공적이다. 영화 개봉 후 반응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열광할 ‘소수의’ 장르팬과 과한 고어신에 질겁해 ‘비추’할 관객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선상 반란을 주도하는 종두역을 맡은 서인국의 연기다.

순수악의 이중구조

영화는 이중구조로 돼 있다. 선상 반란이 칼과 총이 난무하는 액션활극이었다면 영화의 중후반에 가서는 이 벌크선 아래에 있던 또 다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SF액션 호러로 전환한다.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활용하는 공간적 구도는 천착해볼 만하다. 이 필리핀 범죄자 이송계획엔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된 ‘늑대사냥’이 작전명으로 붙어 있는데 중의적이다. 오랜만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유는 감독의 기획의도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등장하는 한 문구, “자연적인 상태에서 인간은 내적으로 늑대처럼 행동하려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폭력은 폭력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상투적인 교훈이 아닌 <리바이어던>에서 흔히 인용되는 경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황에서 인간성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영화가 장르적 클리셰(관습)-이 영화의 경우 ‘결국 살아남는 건 누구겠군’이라는 예측-를 깼다는 지적이 있는데, 짐승적 본능만 가지고 움직이는 늑대와 같은 존재에게 인간의 윤리적 판단(선악)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작위적이지 않을까. 잘 만든 장르영화의 관습은 진부하게 되풀이되는 기존 관습에 대한 전복 그 자체다.

“제대로 된 장르영화 만들겠다”는 감독의 다음 도전은

㈜콘텐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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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 의식을 행하던 중수는 사탄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들인 후 스스로 십자가를 가슴에 박는다. 지하실에서 무릎 꿇고 죽은 그의 머리 위엔 햇빛이 비치고 있다. 정말 이렇게 끝낼 셈인가. 감독의 전작 <변신>(2019)의 마지막 장면을 봤을 때 든 소감이다. 이건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1973) 결말의 한국적 변용 내지는 차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변신> 영화를 본 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난이 넘쳤다. 필리핀에서 구마의식을 위해 귀국한 백윤식이 저렇게 허무하게 죽으려면 왜 나오는 거냐, 지하실 화덕에서 불타 죽은 둘째 딸의 행방에 대해 이 가족들은 왜 그리 관심이 없나 등. 하긴 저렇게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굳이 필리핀 로케이션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도 든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실마리로 ‘필리핀’이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정한 설정은 이번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감독에게 필리핀이라는 나라는 어떤 정서적 원형(archetype)을 담은 장소로 소환되는 것처럼 보인다. 특이한 것은 <변신>의 주인공 부부 성동일과 장영남이 이번 영화에서도 등장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장영남이 연기한 <변신>의 캐릭터 이름인 ‘명주’는 이번 영화에서도 성씨만 달리해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 캐릭터가 연장선에 있는 건 아니다. 이번 영화의 명주는 존속살해로 지명수배를 받은 흉악살인범이니까. <변신>은 오컬트, 그것도 <엑소시스트>나 <오멘>으로 대표되는 정통오컬트물을 작정하고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감독의 결심이 읽히는 영화였다. 이번 <늑대사냥>에서도 동일한 소망이 읽힌다. 제대로 된 액션SF호러물, 그것도 한국말로 된 영화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냐는. 장르영화를 섭렵하며 진행되고 있는 감독의 다음 ‘도장깨기’ 대상의 서브장르는 무엇일까. 일단 영화의 엔딩에서도 암시하듯 감독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늑대사냥> 프리퀄, 시퀄로 3부작 영화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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