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가 진짜 경상북도라고?”
때로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가 생각지도 못한 일의 시작이 된다. 오랜 친구들에게 ‘경북’ 여행지 추천을 부탁한 것이 발단이었다. 안동, 포항, 경주 등 유명한 지명들이 줄줄이 나왔다. “여행 많이 다녔다면서 좀 특별한 곳 없냐?”라는 도발에 친구가 발끈한다. “야 그럼 미리 준비해서 울릉도를 가지 그랬냐”는 핀잔이 머릿속에 ‘훅’ 들어왔다. “잉? 울릉도? 울릉도가 경북이었나?”. 그렇다. 가끔 지명이 너무 유명하면 행정구역보다 지명 그 자체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울릉도는 대한민국 행정 구역 상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한 섬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울릉도 이야기에 흥분해 있을 때 다시 김 빼는 소리가 날아온다. “야, 울릉도는 최소한 한 달 전에 배를 예약하지 않으면 못 가. 숙소, 렌터카 준비도 해야하고 그냥 가면 엄청 비싸. 감당이 되겠냐?”고 한다. “왜 못가냐. 거기도 한국인데….” 곧바로 휴대전화로 ‘울릉도 배편 예약’을 검색했다. 잘 정리된 예약 사이트가 나올 줄 알았다. 검색되는 것은 여행 후기를 담은 블로그나 관광업체 홈페이지뿐이다. 그나마도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음’이라는 안내문이 뜨는 경우도 있다. “햐, 이거 진짜 만만치 않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울릉도 여행은 배편 예약부터 전쟁이라는 말이 비로소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난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위해 울릉도에 가느냐’다. 여행의 콘셉트, 목적이 문제였다. 지인들에게 물었다. 실제 울릉도를 가본 사람이 없다. 울릉도를 못 갈 것이라고 말한 친구도 사실, 울릉도를 가본 적이 없다. 방송을 통해 보거나 인터넷 후기만 보고 지레 울릉도는 ‘가기 힘든 곳’으로 판단했다. 의외로 정보를 제공해 준 것은 지인들의 부모님이다. 대부분 울릉도를 가보셨다. ‘단체관광’으로.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 가보셨다. 5060세대 단체관광으로 ‘뜨거운 장소’가 울릉도였다.
결과적으로 지난 6월 12일~15일 울릉도를 다녀왔다. 방문을 결심한지 딱 이틀 만에 일정, 배편, 숙박, 관광 코스 등을 모두 결정했다. 배는 어떻게 예약하는지, 어떤 코스로 관광을 하는지, 비용은 어느 정도 드는지 등은 모두 발로 뛰어서 확인했다.
정보전달 대상은 ‘배낭여행객’에게 맞췄다. 활성화된 단체관광이 아닌, 울릉도 자유여행, 배낭여행이 궁금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조건을 만들었다. 첫째로 비용은 최대한 절약했다. 울릉도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는 여행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둘째는 울릉도 내에서 이동은 오직 ‘버스’로만 했다. 비용문제도 있었지만 의외로 섬 여행을 교통 때문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중교통이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마지막으로 울릉도 주요 관광지는 최대한 많이 방문하기로 했다. 종합하면, 대중교통으로 싸게 울릉도 관광지를 최대한 돌아본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실제 여행은 시행착오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울릉도 안에 있는 필수 여행코스는 결국 다 갔다. 끝까지 여행 조건은 어기지 않았다. 실제 방문한 관광지, 버스 탑승 시간 및 장소, 관광에 소요된 시간 등을 일일이 확인해 기록했다. 다음 여행자가 이를 기준으로 소요되는 시간, 비용 등을 계산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만약 “이런 초보도 울릉도 여행을 가네. 나도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하겠다.
■1장. 대체 배 예약을 어떻게 하나요?
울릉도 여행을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 배편을 예약해야 한다. 현재로선 울릉도로 가는 방법이 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2025년 말, 신공항 건설이 예정돼 있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다. 배는 두 종류가 있다. 상대적으로 빠른 ‘쾌속선’, 편안하게 여행하는 ‘크루즈 선’이다. 두 배는 소요 시간, 운임 등에서 차이가 난다. 성인을 기준으로 쾌속선은 편도 6~7만원 수준이다. 크루즈의 경우 요금은 성인 기준 가장 비싼 ‘로얄스위트룸’이 80만3000원이고, 가장 싼 다인실이 6만6500원이다.
울릉도를 향하는 배들이 모두 같은 항구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부터 헷갈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첫째, 강원도 ‘강릉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 있다. 강릉항은 옛날 안목항으로 불렸던 그 미항이다. 이곳 강릉항에서 출발한 쾌속선은 울릉도 ‘저동항’으로 들어간다. 소요 시간은 3시간이다. 둘째, 역시 강원도 동해 ‘묵호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다. 울릉도 ‘도동항’으로 들어간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40분 정도다.
세 번째로 경상북도 ‘포항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다. 울릉도 ‘도동항’으로 들어가는 경로다. 소요시간은 3시간 20분 정도다. 포항에서는 또 다른 배 ‘크루즈 선’도 운항한다. 포항 ‘영일만항’에서 울릉도 ‘사동항’으로 향한다. 소요시간은 약 6시간 30분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대신 배 안에 노래방, 식당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침실에서 누워서 갈 수도 있다. 울릉도에 차를 직접 갖고 들어가고 싶어도 이 크루즈 선을 이용해야 한다. 가격은 차종별로 다르다.
마지막 네 번째, 경상북도 ‘후포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다. 울릉도 ‘사동항’으로 들어간다. 소요시간은 2시간 20분 정도다. 각 항구에서 출발하는 배는 소유한 회사가 다르다. 이들 회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배편을 예약하는 것이 한가지 방법이다. 또 하나는 한국해운조합에서 운영하는 ‘가보고 싶은 섬’ 사이트에서 배편을 비교 및 예약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가보고 싶은 섬’을 검색하면 된다.
이번 울릉도 여행에서 이용한 것은 ‘후포항’에서 ‘사동항’으로 들어가는 네 번째 경로였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출발일 기준 이틀 전에 예매할 수 있는 배는 후포항이 유일했다. 후포항은 다른 출발 항구에 비해 서울이나 기타 대도시에서 접근하기 조금 애매한 위치에 있다. 상대적으로 배편 예약에 여유가 있다. 두 번째는 배 멀미 때문이다. 최대한 배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자 했다. 그렇게 6월 12일 새벽 00시 40분에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후포항이 있는 경북 울진군에 도착할 즈음 주변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새벽 4시 50분이었다.
■2장. 입도가 여행의 절반? 멀미와의 사투
후포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의 출항 예정시간은 오전 7시였다. 인터넷 예약고객은 탑승권을 출항 1시간 전까지 매표소에서 발권해야 한다. 신분증을 보여주니 종이 탑승권으로 교환해줬다. 어느새 대합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행객들은 주로 대합실 내에 있는 매점 앞에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들은 멀미약을 하나씩 사고 있었다. 액상용과 알약 2가지가 있었다. 각각 1000원, 1500원이었다. “뭐가 더 강력한 멀미약이냐”고 물은 뒤 알약을 샀다. “배 타기 1시간 전에 먹어라. 모두 두알이 들어있는데 들어갈 때 한알, 나올 때 한알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럴 여유가 있을리 없었다. 실제로 배 타기 1시간 전 한알, 배 안에서 위급한 순간 또 한알 복용했다.
사실 나름 뱃멀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다. 이른바 ‘기절(?)’ 전략이다.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일정을 잡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대한 몸을 피곤하게 해서 배를 타자마자 잠들겠다고 생각했다. 날씨도 좋았고, 항구 쪽 파도도 그리 심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착각이었다. 항구를 떠나자 마자 배가 아래로 ‘쑥’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승객들은 배 1, 2층에 나눠서 탑승했는데 두 곳 모두에서 동시에 ‘어우~’ 하는 비명소리가 났다. 약한 강도의 바이킹을 3시간 정도 탄 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럼에도 깜빡깜빡 잠은 들었다. 얼마나 갔을까. 잠을 깨운 것은 사방에서 들리는 “억~억” 하는 정체모를 소리였다. 오른편에 앉은 승객과 뒷 쪽에 앉은 또 다른 승객이 구토를 하고 있었다. 배가 워낙 흔들리다 보니 “구토를 하는 승객은 화장실로 가지 말고, 앉은 자리에서 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배 곳곳에는 구토용 비닐 주머니가 비치돼 있었다. 멀쩡했던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다시 얼마나 갔을까. 어딘가에서 “저기 섬이 보인다”라는 말이 들렸다. 배가 흔들린 정도로 볼 때 울릉도 날씨도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줄 알았다. 울릉도는 화창한 날씨 속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전 9시 45분쯤 비로소 배에서 내렸다. 승무원에게 “오늘이 특별히 배가 많이 흔들린 날이냐”고 물었다. “평소랑 비슷했다”라는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3장. 그 버스는 왜 그냥 지나쳤나
약 3시간 만에 육지를 밟자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사동항 앞에는 이미 각 종 렌터카 업체, 단체관광을 위한 버스가 대기중이었다. 이동에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전에 준비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그냥 지나쳤다. 경북도에서 운영하는 ‘울릉아일랜드 투어패스’였다. 24시간, 48시간 동안 버스 무제한 탑승 가능권과 주요 관광지 입장권 등을 묶어서 팔고 있었다. 48시간 투어패스를 2만3900원에 구입했다. 굳이 투어패스를 구입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울릉도 버스는 배차간격이 1시간 정도다. 과연 투어패스를 이용해 48시간 안에 버스를 몇 번이나 탈 수 있으며, 뚝뚝 떨어져 있는 관광지를 모두 보는 게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여행의 첫 관문은 사동항을 나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이미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울릉도 대중교통은 무릉교통이 운영하는 총 7개 노선의 버스가 있다. 이중 1노선, 2노선, 11노선, 22노선은 대형버스로 섬을 한바퀴 돈다. 노선이라는 말이 헷갈릴 수 있는데 쉽게 말해 1번 버스, 2번 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머지 3노선은 도동-저동-봉래폭포를 왕복하는 미니버스, 4노선은 천부-나리분지만 왕복하는 미니버스, 5노선은 천부-석포를 왕복하는 미니버스다.
계획은 이랬다. 후포 출발 쾌속선이 예정대로 2시간 20분 만에 사동항에 도착하면 9시 55분에 사동항을 지나는 1노선 버스를 타고 섬을 일주한다. 이를 위해 재빠르게 배에서 내렸다. 문제는 버스 승강장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이정표가 없었다. 렌터카 관계자에게 물어 겨우 버스승강장 위치를 확인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9시 55분 버스를 놓치면 다음은 11시 55분이었다. 달렸다. 9시 50분 무렵 승강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느낌이 ‘쎄~’하다. 버스시간표에는 ‘사동항’이라고 돼 있는데 승강장 이름이 ‘간령’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주억거리며 짐짓 대범한 척 승강장 내부로 들어섰다. 다행히 버스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모니터가 있었다. 확인해보니 “3분 뒤 1노선 버스 도착”이라고 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라고 생각하며 여유 있게 앉아 있었다.
이윽고 저 멀리서 버스가 보였다. 버스가 도착할 즈음 여유 있게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버스가 눈앞에서 ‘슝’ 하고 지나갔다. ‘치밀한’ 전략이 여행 시작 10분 만에 깨졌다. 알고 보니 치명적 실수가 있었다. 버스 운행 방향의 반대쪽에 서 있었다. 1노선 버스는 섬의 왼쪽으로 한바퀴를 도는데 오른편으로 가는 도롯가에 서 있었던 것이다. 주요 마을 위치를 숙지하지 못해 어느 쪽이 왼쪽이고, 오른쪽인지를 구분하지 못한 초보 여행자의 한계였다. 그러나 착각하게 만드는 요소도 분명 있었다. 사동항 버스승강장은 1노선 버스가 진행하는 방향에는 없었다. 이정표조차 없었다. 즉, 버스 승강장이 한쪽 방향에만 있었던 것이다. 처음 울릉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버스가 당연히 승강장 방향으로만 오나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날 함께 버스를 타지 못한 관광객이 있었던 만큼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셈이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앞으로 2시간을 더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탈지, 일단 아무 버스나 타고 항구를 벗어날지 결정해야 했다. 버스시간표를 확인하니 2노선 버스가 10시 15분에 도착한다고 돼 있었다. 경로를 비교해보니 앞서 지나간 1노선 버스와는 반대 방향이다.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정해진 시간에 버스는 도착하지 않았다. 혼자 ‘취재 망했다. 버스를 못 타겠다고 회사에 어떻게 말하지?’를 고민했다. 그때 멀리서 2노선 버스가 멀리서 보였다. 10시 18분 무렵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제일 먼저 올라탔다. 이렇게 울릉도 첫 번째 행선지가 원래 계획과는 상관없이 2노선 버스가 향하는 ‘도동항’으로 결정됐다.
■4장. 1일차 : 여행 시작을 도동에서?
사실, 울릉도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깎아놓은 듯 멋진 절벽 아래 마치 그림처럼 자리잡은 항구다. 방송이나 사진기사에서 울릉도를 소개할 때면 제일 먼저 나오는 ‘도동항’의 모습이다. 이 멋진 풍경 아래 서 있었지만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막막했다. 투어패스를 꺼내봐도 도동항에서 가까운 관광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이른 점심을 먹자’ 결심하고 상점, 식당가가 밀집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동항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울릉도에 방금 도착한 사람, 떠나려는 사람들이 섞여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행객들을 태운 관광버스들까지 있다 보니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사람들을 헤치고 간신히 투어패스와 제휴를 맺은 식당을 찾았다. 울릉도의 명물이라는 ‘홍합밥’, ‘따개비밥’ 등을 먹어 볼 생각이었다. 식당은 한 테이블을 제외하고 비어 있었다.
“몇명이에요?”라고 식당 주인이 물었다. “한명이요. 홍합밥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지금 자리가 없어서 손님을 못 받아요. 이따가 단체 손님들이 와서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울릉도 도착 후 두 번째 계획이 틀어졌다. ‘유명 식당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항구와 조금 떨어진 식당을 찾았다. 역시나 “점심시간이면 좀 바빠서요. 한분 앉을 곳은 없어요”라고 했다. 투어패스와 제휴를 맺은 식당마저 개인을 외면하는 걸 보니 아쉬웠다. 이때부터 울릉도에서 나올 때까지 도동항에서는 한 끼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 만약 도동항에서 식사를 한다면 한끼에 약 1만8000원 정도가 기본이다. 싱싱한 해산물을 쓴다고 해도 싼 가격은 아니다. 도동항을 벗어나면 한끼 식사는 약 1만5000원 정도다. 울릉도의 물가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차라리 첫날 숙소인 ‘저동항’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시간표 상 22노선 버스가 11시 55분에 저동으로 향했다. 버스 출발 시간까지 1시간 가까이 남은 만큼 가볍게 산책을 하려는 생각에 도동항으로 갔다. 항구를 끼고 왼쪽편으로 행남 해안산책로가 조성돼 있었다. ‘딱 30분만 걷자’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이날 산책로에서만 2시간 가까이를 걸었다.
이렇게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일단 반짝이는 바다와 멋진 절벽이 서울에서 내려온 관광객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인파에 휩쓸려 걷다 보니 너무 멀리 갔다. 이미 11시 55분 버스는 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방파제를 경계로 길이 끝나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돌아 나오는데 어느 가족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아빠, 우리 등대에서 가족사진 찍자”,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나와”라는 내용이었다. ‘어라? 나는 등대를 못 봤는데…?’ 뭔가 잘못됐다.
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산책로 끝이라 생각했던 곳 왼편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 하나가 더 있었다. 그 길을 걸어 올라가니 저동과 등대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왔다. 현재 저동으로 가는 길은 끊겨 등대로만 갈 수 있다. 약 20분 정도를 더 걸어 간신히 등대에 도착했다. 도중에 짐 가방을 바닥에 버려두고 걸었다. ‘저동항’의 촛대바위, 항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길이 좁고 가파르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단체관광객들이 등대까지는 가지 않았다.
■5장. 1일차 : 천부 해중전망대에서 저동항 밤 산책까지
시작부터 계속 꼬이는 일정을 바로 잡아야 했다. 버스시간표 연구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결과, 섬을 동-서로 나누고 첫날은 섬의 동쪽 부분 여행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저동항에 있는 숙소로 이동해 짐을 놓아두고, 섬의 동북쪽 끝인 천부로 갈 계획을 세웠다. 천부-관음도-저동으로 돌아온다면 버스시간표상으로도 이동이 가능했다.
도동항 버스승강장에서 1시 55분에 출발하는 22노선 버스를 타고 저동으로 갔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다음 버스 탑승까지 시간이 좀 남는다. 투어패스와 제휴를 맺은 명가식당을 찾았다. 다행히 저동에서는 혼자 온 관광객도 내보내지 않았다. 사실 멀미를 한 탓에 특별히 입맛이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엉겅퀴, 부지깽이, 울릉도에서 재배한 도라지무침 등의 반찬을 설명해주는 ‘이모님’의 정성에 남기지 않고 먹었다. 투어패스를 활용해 밥값의 10%도 할인받았다. 할인권 사용을 쑥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싫어하는 기색 없이 할인권을 사용하게 해주는 만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2시 40분에 저동에서 출발하는 2노선 버스를 타고, 섬의 동북쪽 경계인 천부로 갔다. 천부를 방문코스에 넣은 것은 이곳에 해중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수심 6m 아래까지 닿는 원통형 건물을 짓고 빙 둘러 창을 냈다. 수면 아래 바다 풍경을 엿볼 수 있는 환경이다. 물 한방울 안 튀고 프리 다이빙을 하는 것과 유사한 기분을 낼 수 있다. 오후 3시 무렵 방문했는데 단체 관광보다는 연인들,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 노약자들도 내려가고 올라오는데 부담은 없었다. 지하층에 도착한 관광객마다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3시 40분 천부에서 관음도로 향하는 11노선 버스를 탔다. 관음도는 원래 울릉도와 떨어져 있는 섬이다. 이를 푸른색 ‘연도교’로 연결했다. 동백나무, 억새 군락지이자 슴새(울릉도 방언으로 ‘깍새’)라는 조류가 많다. 이 때문에 관음도를 ‘깍새섬’이라고도 부른다. 관음도 북쪽 하부 해안절벽에는 ‘관음쌍굴’이라는 두 동굴이 유명하다. 문제는 배를 타고 섬을 돌아야만 관음쌍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관음도에 들어간 관광객들이 “관음쌍굴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거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다. 미리 상세한 안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웠다.
관음도 관광은 A코스, B코스로 나뉘어 있다. 휴대전화 스톱워치를 켜고 돌아보니 2곳 모두를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에서는 울릉도 부속 섬인 죽도나 삼선암 등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관음도로 가는 길 역시 등산길처럼 험하다. 지상에서 연도교까지 엘리베이터를 운행하지만, 연도교를 지나 관음도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노약자는 접근이 어렵다.
관음도를 끝으로 계획한 첫날 일정은 마무리됐다. 그런데 해가 안 진다. 그러자 갑자기 뒷날 흐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신경이 쓰인다. ‘한곳만 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치상 독도를 볼 수 있다는 전망대가 가까웠다. 투어패스를 이용하면 전망대까지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어 힘들 것 같지도 않았다. 돌아보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여행객이라면 이곳은 몸 상태가 좋은 날 가야 한다.
4시 50분 관음도를 출발하는 1노선 버스를 탔다. 버스는 독도 케이블카라고 적힌 입구 바로 앞에 서기는 했다. 문제는 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 500~600m의 급경사 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숨을 헐떡이자 이를 보던 상인이 “거, 택시를 타고 올라오시지”라고 한다. 한참을 걸어 오후 5시 30분 무렵 드디어 케이블카를 탔다. 5분 정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이날 날씨가 좋았음에도 독도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도동 시내의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도동은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오후 7시 35분 도동항을 출발해 숙소가 있는 저동으로 가는 22노선 버스를 탔다. 사실, 숙소를 저동항에 잡은 것은 야경 때문이었다. 밤이 되면 저동항 촛대바위를 비추는 불빛이 켜진다. 반사된 불빛은 일렁이는 바다에 촛대바위 하나를 더 만든다. 연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산책코스다. 실제로 이날 저녁 산책을 나선 연인들이 많았다. 저동항 밤 산책을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뱃멀미와 빡빡한 일정으로 숙소에서 그야말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6장. 2일차 : 울릉도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법
6월 13일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섬의 서쪽과 중앙의 나리분지 방문을 계획했다. 첫 방문지로는 울릉도 특산식물과 수목이 어우러진 ‘예림원’을 선택했다. 사실 예림원은 버스노선표에 정류장으로 표시돼 있지 않았다. 지도를 검색해보면 그나마 가까운 항구가 현포항이다. 고민 끝에 일단, 2노선 버스를 9시에 탔다.
버스에는 승객이 없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기사분과 대화를 시작했다. “예림원에 가고 싶은데 현포에서 내려야 할까요?”(기자), “버스를 탈 때 목적지를 말하면 알아서 세워줄 겁니다.”(버스기사), “노선표에 정류장이 없어도 그런가요?”(기자), “버스가 가는 방향과 맞다면 최대한 가까운 곳에 세워준다는 거죠.”(버스기사), “그럼 승강장이 없는 곳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나요?”(기자), “시골인심이 손을 흔들고 있는데 그냥 지나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손을 흔드세요.”(버스기사)
그렇다. 울릉도에서는 버스노선표만 봐서는 절대로 갈 수 없어 보이는 관광지도 다 가는 방법이 있다. 말을 해야 한다. 일단 울릉도 버스를 타면 기사님들이 먼저 “어디까지 가세요?” 하고 묻는다. 이때 버스노선표에 있는 곳만 말하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정확히 말하면 된다. 요금도 그 후 지불한다. 만약 버스를 잘못 탔다면 어디서 타야 하는지 알려주고, 방향이 맞다면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세워준다. 무뚝뚝해 보이는 기사님도 있지만 말을 걸면 버스에서 내린 뒤 어떻게 가는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방법으로 승강장이 없는 예림원 입구에서 내렸다. 물론 예림원 매표소까지 가파른 길을 한참 더 올라가긴 한다. 예림원 입구는 동굴처럼 조성돼 있다. 좁고 어두운 동굴을 지나면 갑자기 눈앞에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나는 식이다. 극적인 대비 효과를 만끽할 수 있다. 정원 안쪽으로 온갖 꽃들이 피어 있고, 작은 폭포도 있다. 예림원 전망대에 오르면 오른편으로 울릉도 명물인 코끼리 바위를 볼 수 있고, 왼편으로는 현포항 전경을 볼 수 있다. 다만, 이곳 전망대 역시 노약자가 오르기에는 지나치게 가파르다.
■7장. 2일차 : 울릉도 최고의 풍경
예림원을 나와 태하항으로 향했다. 투어패스에 주요관광지 중 하나로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이 적혀 있었다.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다. 이후 ‘태하에 있는 향목전망대로 갈 수 있는 관광모노레일’이라는 의미임을 알게 됐다. 향목전망대로 가면 ‘산’을 다루는 전문 매체에서 대한민국 10대 비경으로 꼽았다는 ‘대풍감’을 볼 수 있다. 울릉도에서 꼭 한곳 풍경만 봐야 한다면 주저 없이 이곳이다.
감상은 배제하고 정보만 공유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모노레일을 타고 5~6분 정도 올라간다. 하차 후 약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향목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은 가파른 길이 아닌 만큼 노약자도 많이 방문한다. 다만 향목전망대에 갈 때는 바지를 입을 것을 추천한다. 아래쪽도 볼 수 있는 철제 구조물로 전망대를 만들다 보니 사방에서 바람이 몰아친다.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을 만큼 빼어난 풍경이다.
태하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곳에 들어온 버스는 회차한다. 나가는 방향이 한 방향뿐이다. 그러니 시간만 잘 맞추면 된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앞쪽 식당 ‘우진이네’에서 점심을 먹었다. 울릉도산 오징어물회인데 물을 넣으면 물회, 밥을 넣으면 회덮밥이다.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먹으면 된다. 사실 울릉도 자연산 오징어와 기타 오징어를 구분할 미각적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굉장히 좋은 식감임을 알 수 있었다. 가격도 도동에 비해 3000원가량 저렴했다. 이곳에서 피데기(반건조오징어)도 하나 샀는데 가격은 7000원이었다.
■8장. 2일차 : 성인봉을 갔지만…
태하를 나온 뒤 예정된 일정은 현포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나리분지를 산책하는 일이었다. 이날은 예보와 달리 오전 내내 날씨가 좋았다. ‘한군데 더?’라는 욕심이 또 생기기 시작했다. 하필 기사님한테서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으로 가는 코스가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평소 등산은 하지 않는다고 하니 “도동에 있는 KBS중계소 코스로 올라가 나리분지로 내려오라”는 조언을 했다.
그런데 정확히 반대로 했다. 이 역시 정말로 후회하고 있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그야말로 ‘계단지옥’이다. 성인봉 정상 부근 일부를 제외하곤 끝도 없는 계단이 이어진다. 2시간 가량을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갔는데 정작 안개 낀 성인봉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한치 앞도 구분이 안 됐다.
더욱 큰 문제는 내려올 때 KBS중계소 코스를 선택한 것이다. 이 쪽은 전형적인 산길이다. 성인봉 부근은 안개가 자욱해 물기가 많다. 이날 오후 들어 갑자기 날씨가 흐려졌다. 어두운데다 물기까지 많은 산길을 내려오는 상황이 됐다.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데 딱히 안전망도 없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미끄러운 길을 거의 기다시피 내려왔다. 특별한 준비 없이 성인봉을 등반할 계획이라면 KBS중계소 코스로 올라가 나리분지 코스로 내려오기를 권한다. 주말이면 8시간씩 등산한다는 버스 기사님의 추천경로이기도 하다.
성인봉 등산 후 피로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동에 있는 울릉어민식당에 들려 저녁으로 물회를 먹었다. 울릉도에서 계속 물회를 먹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만큼 날씨가 더웠다. 따뜻한 음식을 먹기 힘든 날씨 속에 여행을 했다는 것은 식사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날 방문한 식당은 두 차례나 재방문했을 만큼 맛이 좋았다. 특히, 물을 넣어서 먹는 익숙한 물회가 물 없이 비벼먹는 이른바 ‘전통식 물회’였다. 물회 가격은 1만5000원인데 물가가 올라 2000원 정도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울릉도도 오르는 물가가 서서히 반영되고 있었다.
투어패스가 제공하는 관광지 입장권 중 마지막으로 남은 봉래폭포는 3일째 날 새벽에 출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투어패스는 48시간 한정이다. 다음날 오전 10시 15분이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9장. 3일차 : 여행의 정리
성인봉 등산의 후폭풍은 컸다. 알람을 10개나 설정했지만 늦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벌써 8시 20분이었다. 마지막 봉래폭포에 가려면 3노선 버스를 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숙소인 현포에서 도동이나 저동으로 이동해야 했다. 8시 45분 현포에서 저동으로 가는 1노선 버스가 있었다. 숙소 앞에 승강장은 없었지만 여유 있게 손을 흔들고 탑승했다. 해당 버스는 저동에 9시 20분, 도동에는 9시 30분 도착 예정이었다. 어떻게 해도 도동에서 9시 20분에 출발하는 3노선 버스는 못 타는 셈이었다. 48시간 내에 투어패스 관광지를 모두 방문한다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졌다. 걸어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3노선 버스시간표만 유독 독특한 점이 있었다. 화살표 방향을 잘 보면 봉래폭포에서 저동으로 가는 방향만 시간이 나오고 도동에서 저동으로 가는 시간은 표시가 없다. 처음에는 도동에서 봉래폭포로 바로 가는 줄 알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10분만 저동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9시 30분 무렵 저동에 3번 버스가 도착했다.
시간표가 명확하지 않은 설명을 들어보니 이랬다. 봉래폭포에서 저동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 반면, 도동에서 저동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교통환경에 따라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아 아예 표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저동에서 3번 버스를 타고 봉래폭포에 방문하고자 하는 관광객이라면 버스가 도동에서 출발한 시간에서 최대 5분 정도 뒤에는 저동 버스 정류장에 서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48시간 투어패스 종료 39분을 남겨두고 봉래폭포 입장까지 완료했다. 모두 15번 버스를 탔다. 버스비를 1400원으로 계산해 관광지 입장료와 함께 계산해보면, 4만7500원어치를 이용한 셈이었다. 봉래폭포 방문을 끝으로 2박3일 울릉도 여행에서 사용한 총경비는 34만5036원이 나왔다. 그런데 해당 비용은 방을 혼자 썼다는 점이 반영돼 있다. 즉, 배낭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다면 최종 비용에서 최소 8만원 정도 더 아낄 수도 있었다. 반면, 이 비용에는 서울에서 후포항까지 자차로 이동한 비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10장. 그냥 끝나면 울릉도가 아니지
원래 봉래폭포를 끝으로 예정된 울릉도 2박 3일 취재는 끝이 나야 했다. 그런데 울릉도를 나갈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려 성인봉 등산을 할 무렵이었다. 054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선박업체다. 6월 14일은 동해 풍랑주의보로 예정된 배가 뜰 수 없다고 했다. 울릉도 여행에서 이런 변수까지 넣지 않으면 제대로 취재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울릉도에 하루 더 머물게 됐다.
체류 시간이 늘어난 만큼 추가 정보를 얻어야 했다. 배낭여행에서 벗어나 가장 많은 여행객들이 선호한다는 렌터카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일부러 준중형 승용차 한대를 빌렸다. 울릉도는 높은 지역이 많아 힘이 좋은 SUV 차량을 빌려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정말 그런지 알아보고자 했다. 실제로 하루 동안 상대적으로 저지대의 해안도로부터 나리분지 등의 고지대까지를 두루 다녔다. 심지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이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울릉도 운전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있다. 과속하지 말아야 한다. 울릉도 일주도로의 제한속도는 40㎞/h다. 더 이상 속도를 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관광객들이다. 사진을 찍다 보면 자신이 도로로 나가 있다는 걸 모르는 관광객들이 많다. 일부 관광업체가 사진 찍기 좋은 명소라며 위험한 도로에 관광객들을 하차시키는 경우도 있다. 도로 사정을 잘 모르는 단체관광객들이다. 운전자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는 길이 좁다. 한 차로를 서로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들이 같이 이용하는 곳도 있다.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지점이 명확히 보인다. 버스가 이런 곳을 지날 때면 클랙슨을 울린다. ‘내가 지나갈 테니 반대쪽 차량은 진입하지 말라’는 신호다. 종종 노래를 크게 틀고 다니는 차들이 있다. 이런 길에서는 잠시 볼륨을 낮추고 반대쪽 소리를 들어야 한다. 셋째는 도로 위에 떨어진 돌(낙석) 때문이다. 과속하면 절대 못 피한다. 역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운전의 기본이지만 울릉도에서는 특히나 강조되는 부분이다. 이상의 내용들만 잘 숙지한다면 울릉도에서 운전은 크게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이상의 안전운전 수칙들을 지키며 ‘울릉천국’과 ‘카페 울라’를 방문했다. 두 곳 모두 버스로는 접근이 어렵다. 두 곳을 방문하려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울릉천국은 가수 이장희씨가 실제 거주하며 공연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1996년 무렵 울릉도를 처음 방문한 이씨가 이 곳 풍경에 반해 은퇴 후 머물게 됐다. 울릉천국 아트센터 건물 2층에는 이씨와 관련된 사진, 상장 등이 전시 중이다. 3층은 카페로 운영 중인데 실제 이씨가 관광객들과 만나고 공연하던 곳이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이씨의 공연은 잠시 멈춘 상태다. 울릉천국에는 꽃과 연못 등이 조성돼 있고, 석봉을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카페 울라 역시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카페 울라 앞쪽에 있는 1박에 수 천만원하는 고급 호텔 때문이다. 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으로 신혼여행지로도 알려져 있다. 카페울라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운영시간에 방문해도 카페 내부에서 커피를 즐기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다행히 이날은 비가 왔고, 마감 시간을 앞두고 방문해 매장 내 손님이 없었다. 울라는 ‘울릉도 고릴라’를 의미하는데 카페에 앉아서 바라본 절벽의 모습이 마치 고릴라를 닮았다고 하여 붙였다. 카페 앞 쪽 작은 정원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고릴라 캐릭터 상’이 서 있어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카페를 방문하지 않아도 고릴라 상과 사진을 찍는게 가능한 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11장. 울릉도를 나오며…그래도 뱃멀미가 걱정이라면
당초 2박 3일 일정이었던 울릉도 취재는 풍랑주의보로 3박 4일이 됐다. 출장이 하루 더 길어진 것도 문제였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뱃멀미였다. 날씨가 좋은날 탑승한 배에서도 멀미를 했는데 풍랑주의보 직후 탑승할 배는 얼마나 흔들리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6월 15일 울릉도에서 나오는 날 전혀 멀미를 하지 않았다. 배가 흔들리지 않았느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들어갈 때와 크게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다른 것은 멀미약이었다.
저동항에 가면 약국이 하나 있다. 28년째 운영 중인 약국이다. 여기서 제조하는 멀미약이 있다. 만들어진 사연이 재미있다. 이곳을 운영 중인 박형태 약사는 “28년째 멀미에 시달리는 손님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멀미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최적의 약을 찾았다”며 “식사와 관계없이 출발 1시간 반 전에 복용하면 100명 중 7~8명 정도만 멀미하는 수준의 효과를 보인다”고 말했다. 반신반의하며 2000원을 지불하고 샀다. 꽤 효과가 있었던 듯 싶다. 100%는 없다. 그러나 멀미로 고통을 받고, 멀미약을 사야 한다면 한번 고려해볼 만하다. 울릉도에는 도동항에 한 곳, 저동항에 한 곳 약국이 총 두 곳 있다.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해당 약국들을 찾으면 된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