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출근 앞둔 죄수의 마음 다잡기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2021.12.27

모두가 잠든 새벽, 느닷없이 잠에서 깹니다. 바깥은 한없이 고요한데 좁은 방안은 격한 코골이 소리로 진동합니다. 모두가 일어나면, 언제 어디서나 환경미화에 진심인 교도관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청소부에 속한 죄수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감이 커집니다. 여느 감독관과 달리 그는 직접 청소도구를 쥔 채 곳곳을 누비며 청소 작업을 감독합니다. 아침부터 벌어지는 요란한 광경을 두고 몇몇 직원은 유난스럽다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청소부 죄수 중 작업반장 노릇을 떠맡은 봉사원은 교도관이 쏟아내는 지시를 이행하느라 입동을 지난 기온에도 땀을 줄줄 흘립니다. 다른 작업장에서 봉사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데 예외도 있나봅니다. 하마터면 제가 완장을 이어받을 뻔했는데, 손이 다소 느리고 나이가 어린 덕분에 후보 지명을 피했습니다. 제가 병역거부자임을 밝힌 것도 한몫했겠죠. 어쨌든 저는 교도관의 인사에 만족해 욕먹지 않을 만큼 일합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청소 노동 전문가의 업무에 비하면 견습 내지 체험 수준에 불과한 작업도 평소 움직임이 제약되는 죄수에게는 고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일은 노동 강도에 따라 세분화해 서열순으로 배분됩니다. 제일 늦게 들어온 이는 화장실 청소, 그다음 순번은 작은 화장실 청소를 맡고, 중간 순번은 바닥을 쓸고 닦고, 고참은 세탁물을 관리하며 나머지 작업을 관망하는 식입니다. 서열 놀이에 흠뻑 취한 죄수가 다수일 때는 10명이 모인 청소부 중 아래쪽 순번 3명에게 업무를 몰아주기도 했답니다. 권위주의적 관습은 휴게실 좌석까지 서열에 따라 우선 점유권을 지정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그나마 저처럼 고지식한 척하는 몇몇이 질서를 흔드는 바람에 위계는 전보다 크게 옅어진 것 같습니다. 무거운 청소기를 이끌고 직원 침실을 누비는 중하위권의 작업은 소음 속에서 명상을 즐기는 제가 물려주지 않았고, 후미지고 고립된 휴게실 뒤편 지정석은 교류를 달가워하지 않는 제가 차지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유사 업무에 투입된 대체복무요원과 비교하면 미묘한 내적 갈등에 빠집니다. 대체복무요원의 영역으로 넘길 만한 일과 죄수의 몫으로 남겨둘 일을 나누는 과정을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엄연히 죄수의 신분을 벗어난 병역거부자들에게 과거와 똑같은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위배할 소지가 다분하므로 신중에 신중을 거쳐 결정됐겠죠. 그 결과 화장실 청소와 재떨이 비우기 같은 작업은 죄수들이 맡고, 수용자 구매품 배분과 직원급식 보조 같은 업무는 대체복무요원이 맡게 됐습니다. 쓰레기통을 비우는 건 죄수, 쓰레기봉투를 수거하는 건 대체복무요원인 식입니다. 신분에 따른 업무의 차이를 대체복무요원에 대한 인권 침해 방지로 이해하자니 죄수의 인권을 후순위로 둔다는 점이 걸립니다. 그 차이를 문제 삼자니 죄수의 현재 업무를 비천하게 여기는 꼴이 됩니다. 갈등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이내 마음을 다잡습니다. 제가 한가롭게 글이나 쓰는 동안 새벽부터 일터를 향해 땀 흘리고 있을 청소노동자에 대한 존경을 지키기 위해.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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