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07분
장르 코미디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베니시오 델 토로, 오웬 윌슨,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개봉 2021년 11월 18일
등급 15세 관람가
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지난해 출간돼 화제를 모은 책 중 하나가 <추월의 시대>다. 1980년대생 저자들이 말하는 세대 문제의 해법은 산업화를 넘어 민주화의 훈장을 단 86세대들을 ‘역사화해서 집에 잘 보내드리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이다. 당신들의 ‘라떼는 말이야’는 정말 훌륭했어. 인정해. 당신 세대들은 시대적 과제를 훌륭히 수행했으니 이제 좀 쉬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는 느낌은 과거 종이매체의 전성시대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사뭇 달랐다. 이를테면 이 코너에서도 다룬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2017)와 같은 영화에서 뉴스가 만들어지고 인쇄돼 배달되는 풍경은 이제 다시 못 올, 아련한 여운이 남는 영화들이다.
추억팔이 영화가 아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그런 추억팔이 영화가 아니다. 지난 세기 중반(필자가 청춘 시절을 보낸 20세기는 벌써 ‘지난 세기’가 돼버렸다!) 즈음을 차용해 가상의 프랑스 메트로폴리스를 배경으로 잡지 편집장이 심장마비로 죽은 뒤, 폐간호를 발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하나의 우화다. 가상의 벨 에포크다. 말하자면 기자 전성시대에 대한 찬가? ‘기레기’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에 보내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연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미쟝센의 대가다. 구도를 잡고 그린 정물화처럼 동화(動畵)를 만들어낸다. Odd satisfying Video, 이상한 만족감을 주는 비디오라고 했던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손 놓고 빠져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한 장면 한 장면의 구도와 디테일이 살아 있다. 잡지의 목차처럼 영화는 6개의 인덱스로 구성돼 있다. 오비추어리-자전거 타는 리포터-콘크리트의 거장-연설문 수정하기-경찰청장 전용식당, 그리고 다시 오비추어리. 수미쌍관으로 돼 있는 추도사를 포함해 이야기는 잡지 편집의 형식을 닮았다. 기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자, 고지식하게 고색창연한 스타일로 만들어지는 주간지 특종 영상기사가 된다.
매번 장이 시작될 때마다 영화는 아이콘화된 그림을 제시하는데 우리는 웨스 앤더슨이 이 영화의 모티브를 어디서 빌려왔는지 안다.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 뉴욕에서 1925년 창간해 지금도 발행되는 잡지 ‘뉴요커’다. 찾아보니 이 폐간호에 실린 기사들의 모티브가 되는 글도 실제 ‘뉴요커’에 실린 보도다. 예컨대 자전거로 가상의 프랑스 도시 응위를 돌며 과거와 현재 장소를 비교하는 기사를 쓰는 ‘자전거 기자’는 실제 이 잡지에 기고했던 작가 조셉 미첼 이야기다. 정신병동 감옥의 예술가 모제스 로젠탈러를 발견한 미술거간상 카다지오 역시 실제 인물 조셉 두빈을 모델로 하고 있다. 두빈은 대영제국 박물관의 자신의 이름을 딴 두빈갤러리에 파르테논신전에서 떼어온 대리석 조각들을 전시하고 있다. 감독은 모제스가 자신의 천재적인 작품을 교도소 담벼락에 남겼고, 이걸 다시 미국 중부의 부호가 통째로 떼어 옥수수밭 한가운데 만들어진 뮤지엄에서 전시한다는 식으로 비틀어 농담으로 만들고 있다.
비틀어 농담으로 만든 앤더슨식 우화
시위대와 폭동진압 경찰이 대치하는 풍경을 다룬 세 번째 이야기도 심각했을 상황을 시위대 대표와 경찰 측 지휘관이 체스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살짝 비틀어 의례화한다. 시위대의 젊은 주동자는 체 게바라 사후에 붉은 별 베레모 사진이 상품화되듯 티셔츠에 인쇄돼 젊은 세대의 저항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도 실제에서 따왔다. 1968년 ‘뉴요커’에 실린 매비스 갤런트의 ‘오월의 사건들: 파리 노트북’이라는 2회짜리 장문의 기사가 그것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여느 시위 보도기사와 달리 매비스는 프랑스 파리를 휩쓴 68혁명의 한가운데에 들어가 시위대와 함께 먹고 자고 마시며 그들의 현재 고민과 이상과 바람 등을 생생한 필치로 옮겨놨다. 기사의 부제는 ‘우리는 모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어떤 미래에 살고 있다(We are all living in a future, in something that has not taken place.)’다. 멋지지 않은가.
분명 감독은 자신이 만들어낸 판타지 우화를 전달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미쟝센과 구도에 집착하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은 SNS상에 유행한 ‘이상한 만족 비디오’처럼 자꾸만 다시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틈날 때마다 다시 보고 싶어지는, 소장 욕구를 당기는 영화다.
“이번 여름에 개봉할 웨스 앤더슨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주간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영화이지만 실제로 많은 부분이, 그리고 사실은 실제 사건이었던 ‘뉴요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지난해 2월 11일 잡지 ‘뉴요커’에 실린 문화면 편집장 기사의 첫 문장이다. 글에 따르면 앤더슨 감독은 자신이 10대 시절부터 ‘뉴요커’의 팬이었고, 1940년대 발간된 잡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삽화 없이 텍스트만 7페이지짜리 기사’ 등으로 악명 높은(!) ‘뉴요커’가 웬일인지 이 기사는 텍스트는 짧고 지면 대부분이 영화 스틸사진과 사진에 대한 해설로 채워져 있다.
“가상의 20세기 도시에서 발행하는 미국 신문을 만드는 저널리스트들에 바치는 러브레터”를 영화화하겠다고 웨스 앤더슨이 첫 언급한 것은 2018년이었다. 처음에 기획됐을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영화였다고 한다.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이 영화도 웨스 앤더슨 사단쯤으로 불릴 수 있는 정상급 배우가 떼거리로 참여했다. 우리에게는 봉준호 영화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틸타 스윈튼이 콘크리트의 거장편에서 기자(뉴요커의 전통에 따른다면 작가)로 출연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배역을 꼽으라면 모제스가 매번 그리는 추상화의 누드모델이 되는 여간수 시몬인데, 레아 세이두가 맡았다. 그는 얼마 전 리뷰한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007시리즈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제임스 본드가 마지막으로 안착하는 여인으로 열연한 바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