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를수록 세진다? 정치풍자 방송의 역사

김찬호 기자
2021.11.15

군사정권에 억눌린 대중에 쾌감 선사… 이후엔 ‘정치 편향’ 지적 속 TV서 위축

1960년대 TV 보급과 함께 시작된 상업방송은 코미디 시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희극 배우의 표정, 몸짓 등을 볼 수 있는 TV 방송은 만담과 라디오 코미디극을 빠르게 대체했다. 당시 대표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은 문화방송(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1969)와 동양방송(TBC)의 <고전 유모어 극장>(1974) 등이었다.

KBS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방송 장면 / KBS COMEDY: 크큭티비 갈무리

KBS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방송 장면 / KBS COMEDY: 크큭티비 갈무리

이 시대를 이끈 것은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의 TV 코미디 ‘1세대 트로이카’다. 이들은 극장 공연이나 라디오에 익숙한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카메라 앞에서 슬랩스틱 코미디(신체를 활용해 동작을 과장한 형식)와 노래, 만담이 합쳐진 종합예술을 자유자재로 선보였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서슬 퍼런 군부독재는 정치를 풍자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웃으면 복이 와요>를 연출한 김경태 PD는 월간지 ‘방송’에 “정치는 건드리기 어렵고, 사회문제 또한 같다”는 고충을 토로할 정도였다. 독재, 비리 등 정치적 풍자거리는 넘쳤지만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모순’의 시대였다.

1980년: 정치 코미디의 시작

정치풍자가 본격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노태우 정부’ 시절이었다.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노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1988년 1월,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그는 “정치인에 대한 풍자의 자유를 적극 허용한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한국 코미디의 일대 전환점이 됐다.

본격적인 정치 코미디로 첫 손에 꼽히는 것은 1986~1988년까지 방영된 KBS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다. 비룡그룹이라는 가상 재벌그룹을 배경으로 회장 역에 고 김형곤, 임원 역으로 김학래, 엄용수, 양종철 등이 출연했다. “잘될 턱이 있나” “밥 먹고 합시다” 등의 유행어를 만들었고, 회장이 “어때요?”라고 물으면 임원들이 무조건 “좋다”고 답하는 클리셰를 강조했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작가 장덕균씨는 “당시 국회가 정권의 거수기 역할만 하는 것을 풍자했다”며 “주인공은 어느 회사의 재벌 총수였지만 우리 사회 최고 위치에 있는 결정권자들의 행태를 대변해서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방송 내용은 정치, 경제, 사회 현안을 총망라했다. 예를 들어, 1988년 11월 12일 방영분은 이보다 10일 전 열린 5공 청문회를 재현했다. ‘전두환씨 일가의 각종 비리’를 빗대 비룡그룹 사내 비리를 청문회 대상으로 올렸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임원들이 청문회 말미 “회장님 어떻게 하느냐. (사원들이) 단식 농성을 한다고 하는데”라고 묻는다. 그러자 회장은 “뭘 어떡해? 한두끼 굶다가 말겠지. 흥, 장사 하루 이틀 하나”라며 마무리된다. 실제로 5공 청문회 이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국민적 목소리가 높았지만 전두환씨가 백담사에 은거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코미디가 현실을 제대로 풍자한 셈이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종료된 후에는 고 김형곤, 고 이주일 등이 출연한 ‘탱자 가사라대’가 정치 풍자를 이어 나갔다.

1987년부터 시작한 KBS <쇼 비디오 자키>의 ‘네로 25시’ 역시 정치 코미디의 원조로 평가받는다. 로마의 폭군 네로황제 역에 최양락, 그의 왕비인 날라리아 역에 임미숙 등이 출연했다. 취업, 남녀평등, 농촌문제, 세금 등 당시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황제와 원로원이 우스꽝스럽고 무능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리보전과 아부에만 천착하는 당시 정치권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됐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네로 25시’는 종영한 지 3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정치 코미디의 원조라고 불리며 여전히 유튜브 등에서 방송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누리꾼들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지금의 정치현실과 어찌 이리 똑같을까”, “요새는 나올 수 없는 개그프로”라는 댓글을 달며 과거를 추억한다. 장 작가는 “풍자 코미디가 정치권의 압력 속에서도 방영될 수 있었던 것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벽이 돼준 방송사 실무진, 사설을 쓰며 지켜준 신문사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그래도 이런 방송 하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바람막이가 돼준 모든 분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KBS <쇼 비디오 자키>의 ‘네로 25시’ 방송 장면 / KBS COMEDY: 크큭티비 갈무리

KBS <쇼 비디오 자키>의 ‘네로 25시’ 방송 장면 / KBS COMEDY: 크큭티비 갈무리

1990년: 공개 코미디의 활황

정치 코미디의 또 한 번의 확장은 ‘선거’와 함께 이뤄졌다.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은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친숙함’을 내세웠다. 판사 출신의 엘리트 길을 걸어온 이 후보에 맞서 ‘권위’를 내려놓은 것이다. 스스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현했고, 대중가수 DJ DOC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코미디의 주요 소재인 ‘성대모사’ 역시 용인됐다. “에~”라는 특유의 추임새를 넣는 DJ 성대모사의 유행은 그를 웃음을 주는 친숙한 정치인으로 변신시켰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씨 등의 성대모사도 인기 소재가 됐다.

DJ는 집권 후에도 “문화 예술 분야는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후 각 방송사에는 공개 코미디 전성시대가 열렸다. 1999년 KBS <개그콘서트>가 시작했고 2000년에는 MBC <코미디 하우스>, 2003년에는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이 뒤를 이었다.

당시 공개 코미디는 정치풍자를 적극 활용했는데 대표적으로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토론회를 패러디한 <코미디 하우스>의 ‘3자 토론’이 있다. 배칠수, 박명수, 김학도 등이 각각 노무현 전 대통령, 이회창씨, 권영길씨 등을 성대모사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약 21년간 방송된 <개그콘서트> 역시 크고 작게 수많은 정치풍자를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사마귀 유치원’에 출연한 최효종씨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집권 여당 수뇌부와 친해져 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하면 된다”며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진다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강용석 무소속 의원이 최씨를 ‘국회의원에 대한 집단 모욕죄’로 형사고소하며 주목받았다. 또 ‘민상토론’은 정치 문제들을 질문하고 대답하기 곤란해하는 유민상씨 모습에서 웃음을 찾았고, ‘1 대 1’에서는 ‘기호 0번 이상호’라는 캐릭터가 국회의원과 정치행태를 묘사했다.

하지만 ‘지상파 공개 코미디’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여야 정치권, 각 진영 지지자 모두로부터 편향성을 지적받는 상황이 잇따르자 지상파 방송에서 정치풍자는 점차 설자리를 잃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1980년대는 독재 권력이라는 풍자 대상이 명확했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상황에서 정치풍자 코미디가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며 “반면 2000년대 이후에는 정치적 입장이 다양해지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이 대체재로 등장하며 정치풍자 코미디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 / tvN

의 ‘여의도 텔레토비’ / tvN

2010년: 과감한 풍자 위한 케이블 진출

‘지상파 코미디’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는 2011년 케이블방송국 tvN의 <SNL 코리아>와 함께 시작됐다. <SNL 코리아>는 미국 NBC의 동명 프로그램(Saturday Night Live) 형식을 수입했는데 고정 출연하는 크루들과 매주 새로운 호스트가 콩트를 펼치는 방식이었다. 미국 SNL의 경우 호스트로 초대되는 인물이 연예인, 기업인, 정치인 등으로 다양했고 이들이 망가지며 웃음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물, 직업 등에 대한 풍자도 가능했다.

<SNL 코리아>의 정치풍자는 기존 지상파 방송국의 풍자보다 좀더 과감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방영한 ‘여의도 텔레토비’다. 기존 어린이 방송 <꼬꼬마 텔레토비> 캐릭터를 당시 대선주자들에게 빗댔다.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라는 기존 캐릭터가 각각 구라돌이(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 앰비(이명박씨), 문제니(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또(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라는 이름으로 변신했다. 이후 안쳤어(안철수)와 홍그리버드(홍준표)도 합류했다. 일부 대선후보들은 해당 캐릭터와 만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새누리당은 ‘또’라는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심한 욕을 하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문제 제기를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여의도 텔레토비’를 심의하고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여의도 텔레토비’는 폐지됐다. <SNL 코리아>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도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패러디한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로 정치풍자를 이어갔다. 센터 재수생 ‘문재수’, 엘리트 연습생 ‘안찰스’, 효자손 아이돌 ‘레드준표’ 등의 캐릭터는 당시 선거 상황을 풍자하며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SNL 코리아>는 시즌9를 끝으로 TV 방송국 시대를 끝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SNL 코리아> 역시 OTT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규제와 정치풍자는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상파에서 못하던 것을 케이블로 옮기고 이마저도 규제가 심해지니 OTT로까지 넘어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SNS, 유튜브 등의 정치풍자는 규제에서 자유롭지만 완성도 측면에서 아마추어리즘에 머무르고 있는 만큼 대중이 다뤄주길 원하는 현안을 빠르게 수용해 완성도 있게 만든다면 방송도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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