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의 음주운전, 세상이 달라졌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2020.06.08

한국프로야구가 음주운전 전과를 안고 복귀의 문을 두드린 강정호(33)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강정호는 지난 5월 25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상벌위원회에서 사회적 물의에 대한 책임으로 복귀 후 선수 등록 시점부터 1년 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 제재 징계를 받았다. 음주운전 ‘삼진아웃’으로 최대 3년 중징계가 예상됐던 그가 이르면 2021년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강정호는 보류권을 가진 친정팀 키움 히어로즈가 임의탈퇴를 해제하면 계약 이후 1년 뒤 KBO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 복귀를 시도하고 있는 강정호/USA투데이스포츠연합뉴스

한국프로야구 복귀를 시도하고 있는 강정호/USA투데이스포츠연합뉴스

강정호 복귀?… 낙관론보다 비관론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강정호는 소속사를 통해 “죽는 날까지 후회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면서 “야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야구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강정호는 KBO 상벌위원회에 자신의 연봉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반성문도 제출했다. 그러나 강정호의 복귀를 둘러싼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야구로 속죄하겠다’는 사과문은 좀처럼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강정호를 KBO리그에서 퇴출시켜 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까지 등장했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소속이던 2016년 12월 서울에서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냈을 당시 2009년과 2011년에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실까지 알려진 탓이다. KBO가 ‘클린 베이스볼’을 표방하면서 음주운전을 3회 이상 저질렀을 경우 최소 3년 실격 처리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도 강정호의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

강정호의 보류권(독점 계약권)을 가진 키움도 여론을 살피면서 고민하고 있다. 김치현 키움 단장은 “아직 강정호가 구단에 어떤 접촉 시도도 없었다”고 전제한 뒤 “강정호가 재계약 의사를 밝히거나 임의탈퇴를 요청하면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키움이 강정호를 품지 않는다면 그를 트레이드나 자유계약선수(FA)로 선수로 뛸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나머지 9개 구단 역시 강정호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는 아직 없다. 8개 구단이 “키움이 보류권을 풀더라도 강정호를 영입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롯데 자이언츠가 유일하게 “노 코멘트”라며 확답을 보류했지만 “타팀 소속선수(임의탈퇴)라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음주운전이 심각한 사안인지 인지하고 있다. 영입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한다. 대기업을 모그룹으로 두고 있는 프로야구 대다수 구단은 팬들의 여론과 기업 이미지에 더 무게를 두겠다는 이야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단장은 “한 번의 실수도 아닌 세 번 음주운전을 저지른 선수를 구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억울한 강정호?… 세상이 달라졌네

강정호가 당혹스러운 것은 과거 음주운전을 저지른 선수들이 솜방망이 처벌 후 큰 물의 없이 복귀 수순을 밟았다는 점이다. 2003년 당시 LG 김재현은 음주측정 거부로 입건돼 5경기 출전정지와 제재금 300만원의 징계를 받은 게 전부였다. KBO가 상벌위원회를 만들고 음주운전을 징계한 첫 사례인 두산 이용찬도 음주측정 거부 도주로 불구속 입건돼 시즌 잔여 경기인 9경기 출전정지와 제재금 500만원 징계만 받았다.

하지만 음주운전의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이 지난해 시행되면서 선수들의 처벌 수위도 올라갔다. 단순 적발만 돼도 출장정지 50경기로 처벌이 강화됐다. 실제로 지난해 LG 윤형준과 SK 강승호 등이 음주운전으로 각각 50경기와 9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윤형준은 공식 징계는 끝나가지만, 여론을 감안하면 복귀 시점과 방식에 대한 논의도 나오지 않고 있다. 강승호는 소속팀 자체 징계 성격이 강한 4월 임의탈퇴 기간이 만료됐지만, 앞으로 90경기가 지나야 복귀를 꾀할 수 있다.

올해 2월 음주운전이 적발된 삼성 최충연도 50경기 출장정지에 구단의 자체 100경기 징계를 더해 올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삼성 박한이는 아예 음주운전 적발로 징계(90경기 출전정기)를 받기도 전에 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건강함과 공정함이 상징인 스포츠 스타도 더 이상 음주운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축구는 1번 만으로 퇴출… 농구와 배구도 강화

다른 프로스포츠 종목으로 눈을 돌려도 음주운전에 대한 너그러운 징계를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됐다. 프로농구는 규약 제72조 금지사항에 음주운전을 포함해 최고 제명까지 징계를 내릴 수 있고, 프로배구는 연맹 명예 실추 행위라는 조항에 기반을 둬 상벌위원회를 개최해 징계하고 있다.

프로축구 K리그도 2018년 12월 FC서울 소속이었던 이상호가 그해 9월 음주운전이 적발되고도 신고하지 않은 채 경기까지 출전한 것을 계기로 징계 수위(면허정지 8~15경기·면허취소 15~25경기)를 높였다. 공식적인 징계 수위도 높아졌지만 사실상 한 번만 음주운전이 적발돼도 계약이 해지될 정도로 엄격하게 다뤄진다.

실제로 첫 사례인 이상호는 다른 팀에서 뛰던 2007년(울산 현대)과 2015년(수원 삼성)에도 음주운전 및 음주측정 거부로 적발된 사실이 드러나 임의탈퇴 처리됐다. 불과 한 달 뒤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수원 삼성의 김은선은 공식 징계는 15경기 출전정지였지만, 은퇴를 고민할 시기에 계약 해지돼 큰 타격을 받았다. 수원FC 우찬양과 전남 드래곤즈의 최준기 모두 계약 해지로 K리그를 떠나는 처지가 된 것은 똑같다.

음주운전을 저지른 일부 선수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지만,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프로축구연맹의 한 관계자는 “매년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경고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선수가 잘못된 선택으로 선수 생활이 끝날 수 있는 위기에 처한다. 강정호 선수의 사례가 다른 선수들의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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