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를 위로하는 21세기의 아편. “유튜브 좀 그만 보세요.” 아이들에게나 하던 이야기를 어르신들에게 하는 집안이 늘고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름 취향저격한답시고 공급하는 콘텐츠가 강화를 거듭해, 어르신의 유튜브는 온통 가짜 뉴스급 극우 콘텐츠로 점철되곤 하는 일이 벌어져서다.
조롱과 혐오는 필경 사람을 반응하게 만든다. 일부 유튜버들은 이 막강한 트릭을 활용, 군중이 제일 잘 반응할 만한 제물을 찾는다.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해 조회수와 클릭만 잘 나오면 그만이다. 유튜브도 이제 엄연한 미디어건만 언론이 지니곤 했던 사회적 사명 따위는 아랑곳 않으니 수준은 한없이 하락한다.
이러한 정서는 선배 노화 국가 일본에서도 목격되는 일이다. 전대미문의 출판 불황에 혐한 장사는 새로운 ‘블루오션’이 됐다. TV에서 잡지까지 기성 미디어 모두 부끄러움 모르고 총출동한다. 주 수요층은 비슷하다. 멋지고 좋았던 왕년의 일본을 그리워하는 노년층이었다.
서글픈 일이다. 인생이 더 이상 생각 같지 않을 때,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처럼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게 될 무렵, 지금의 답답함을 만든 원인이 저기 있다며 누가 손가락을 든다면, 휩쓸려 군중이 된다.
늙는다는 것은 어떤 사안에 놓인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적 호기심은 감퇴한다는 것이 과학적 정설이다. 변화를 싫어하게 되고 현상유지를 약속하는 이들에게 끌리게 마련이라, 보수적이 된다. 이미 만사가 귀찮고 피곤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사소한 일에 냅다 ‘버럭’ 하게 되었다면 노화로 몸과 마음이 힘들어져서다.
노년의 보수화는 자존감을 지키려는 일과 연결된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을 지키는 일은 곧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후속 연구에서는 안녕하지 못한 국가일수록 그런 경향이 높다고 한다. 불안한 사회에서 나를 지키려는 본능이 극우로 치닫게 한다. 내 인생이 부정되느니 내 마음 하나 편한 선택을 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어느새 ‘우국’과 ‘애국’으로 포장된다.
다만 그렇게 내 마음을 지키자고 모두 호기심을 잃는다는 것은 닫힌 사회가 된다는 뜻이라 안타깝다. 낯선 이라도 그가 어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자는 개방감을 잃게 되면, 우리는 작은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우선 적이라 간주하는 공격성이 충만한 사회를 만든다. 현상을 의심하고, 안주하려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만드는 비결이 개방성이었음도 잊는다.
그리고 그렇게 닫힌 마음은 트럼프나 보리스 존슨 같은 인터넷 선동가의 차지가 되고, 모두들 인터넷의 아편에 취해 언론의 순기능마저 넘겨 버린다. 아니 언론부터 클릭 장사에 취해 비틀거린다. 그런데 이 노화가 노년은 물론 40~50대, 아니 그 아래까지도 급히 내려오고 있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보수화는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의 보수화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두들 안녕하지 못하고 당장의 자기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인가 보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