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로 보는 싱글 남성의 현실

김태훈 기자
2019.10.28

영화 <조커>가 국내에 개봉한 지 열흘째인 지난 10월 11일, 서울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조커>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커플 사이에 낀 ‘혼영(혼자 영화보기)’ 관객의 모습은 처량하다는 눈길을 받기 십상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았다. 영화관의 주요 관객층인 젊은 남녀 연인들 사이로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젊은 남성 관객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영화가 제작된 미국에서는 모방범죄를 우려해 영화관을 찾은 남성 단독 관객에 대한 몸수색까지 벌어진다는 소식도 전해졌지만, 총기에 대한 걱정이 없는 국내에서는 당초 입장 때부터 영화관 직원의 표 검사도 없이 자율입장으로 관람이 진행됐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조커>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미국선 남성 단독 관객 몸수색까지

이곳에서 만난 남자 대학생 이민용씨(25)는 영화관 인근 대학가에서 자취하는 ‘1인가구’다. “미국이야 워낙 총이 흔하니까 영화에서처럼 쉽게 손에 넣을 수도 있고 욱해서 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이건 한국이건 영화 한 편 본다고 총 쏘고 사람 죽이는 일이 그렇게 쉽게 일어날까요.” 이씨는 <조커>의 범죄 유발 가능성 논란에 대해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이어 “괴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직장도 잃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조커’처럼 범죄자가 될 수도 있긴 할 텐데…. 그래도 그보다 범죄자는 되지 않아도 쓸쓸하게 계속 살아야 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불만을 억누르려고만 하지 않도록 좋은 방법을 찾아야겠죠”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10월 16일 현재 409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고, 전세계에서도 15일 기준 2억890만 달러를 벌어들인 <조커>의 인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화에서 광대로 일하면서도 유명 코미디언이 되고자 하는 장애인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여러 차례 맞부딪치면서 결국 범죄에서 희열을 얻는 ‘조커’로 변해 간다. 그리고 작중 배경인 고담시에서는 그가 조커가 되면서 저지른 범죄의 여파로 기득권층을 향한 대중의 분노가 고조되며 폭력이 대규모로 표출되는 사태로까지 치닫는다. 배경 자체가 현재를 그대로 반영한 듯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일부 요소들이 스크린 밖 현실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모방범죄 조장 등에 대한 우려와 논란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과 주연배우는 이미 이런 우려가 기우이며 범죄나 폭력을 유발할 만한 제작 의도는 전혀 담겨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작품 외적인 논란에 대해 토드 필립스 감독은 영화 홍보를 위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영화는 이 세계의 애정 결핍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부족한 연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주연 호아킨 피닉스도 영국 <텔레그래프>의 영화비평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인터뷰 현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가 젊고 소외된 남성, 특히 영미권에서 ‘인셀(incel)’로 불리는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준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인셀’이란 주로 청년층 이성애자 남성을 가리키는데, 이들을 지칭하는 맥락상 단순히 국내의 ‘모태솔로’와 꼭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혐오하고 전체주의에 가까운 성향의 집단이라는 의미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어 논쟁이 더욱 격해지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조커는 대체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활동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인셀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에 <조커>가 특별히 이들 ‘인셀’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아서(조커)가 참조하고 있는 사람들인 인셀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며 “아서의 이야기와 인셀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는 공명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이 국내만이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미 ‘조커’라는 캐릭터가 주요한 역할을 맡은 또 다른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상영 중이던 2012년 미국에서 모방범죄가 일어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해당 영화를 상영하고 있던 영화관에 총기를 들고 들어간 제임스 홈스(당시 24세)는 “내가 조커다”라고 외치며 총을 난사해 8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체포됐다.

모방범죄 우려, 확실한 근거 없어

그러나 모방범죄라는 점에만 국한해 봤을 때 실제 영화를 보고 모방범죄가 나타난다는 우려는 명확한 사실로 입증되진 않았다. 영화가 범죄를 저지르는 계기가 될지 안 될지 여부가 현재로서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영화를 통해 모방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학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확실한 학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는 않다”며 “특정 연령층이나 특정 성별에서 모방범죄가 더욱 심각하거나 자주 나타난다고 볼 수 있는 근거 역시 부족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영화가 현실에 영향을 미쳐 범죄와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하리라는 우려보다는 오히려 영화가 반영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의 문제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국내에서는 대규모 살상범죄의 위협은 미국보다 낮지만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1인가구의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는 등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변화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인구집단을 범죄나 반사회적 행동의 우려가 높은 집단으로 보기보다는 이들이 처한 환경의 변화로 겪게 될 부작용에 미리 대처할 필요성을 언급한다.

KB경영연구소 1인가구연구센터의 ‘2019 한국 1인가구 보고서’를 보면 국내 가구구조에서 가장 큰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1인가구의 증가추세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이 바로 20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남성 1인가구’의 급증이다. 2020년이면 전체 가구 중 1인가구 비율이 30%선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가운데 남성 1인가구는 절반에 육박한다. 그동안 고령화 때문에 노년 여성 1인가구가 늘면서 여성 1인가구의 비중이 크게 높았던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노년층을 제외한 20대 후반~50대 연령층에서는 남성 1인가구가 여성보다 훨씬 많은 데다, 이전까지 1인가구 수 증가를 이끌어온 노년층에 비해 증가속도도 훨씬 빠르다. 2015년 기준 11%였던 남성 생애미혼율이 2035년에는 30%에 달하면서 현재 300만 가구에 육박하는 남성 1인가구의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남녀 공통으로 1인가구가 겪는 가장 큰 고충인 ‘외로움’ 역시 보통 남성에게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고서를 쓴 정인 1인가구연구센터장은 “1인 생활은 기본적인 경제력 유지에 대한 불안 외에 현재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장래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유발한다”며 “향후 이들 1인가구는 은퇴시기가 됐을 때 생활비와 질병치료자금 등 다수의 경제적 문제에 대한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특히 남성은 최대한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경향이 좀 더 강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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