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기자를 고용하는 이유

이성규 전 메디아티 미디어테크 랩장
2019.09.09

페이스북은 뉴스를 위한 독립적 공간을 올 하반기 개설할 계획을 공개하면서, 기계에 맡겼던 정책을 버리고 ‘인간’ 기자들을 고용해 일부 업무를 맡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간의 사고를 자동화하려는 시도는 1600년대 말 독일의 철학·수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로부터 시작됐다. 그가 개발한 ‘단계식 사고 기계’는 철학자들 간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이성적 사고행위의 대체물이었다. 그의 철학적·물리적 유산은 ‘튜링 머신’으로 이어져 지금의 알고리즘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엔지니어가 스스로의 존재와 권력을 증명하기 위해 세상에 꺼내놓은 기술적 방책은 실리콘밸리와 만나 거대한 무기로 변신하고 있다.

경향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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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실리콘밸리는 자동화를 향한 열망들의 응축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노동을 논리연산으로 씹어먹었던 이들 집단은 현재, 인간의 사고를 알고리즘에 아웃소싱하기 위한 혁명적 작업을 향해 돌진 중이다. 특히나 대형 기술기업의 알고리즘 경연장이 된 추천 엔진은 인간의 창의적 판단 영역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과감한 도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후예들로서 넷플릭스, 페이스북, 구글은 이 같은 추천 엔진 개발을 시대적 소임으로 수용한 특별한 사고체계를 지닌 집단의 전위부대다.

하지만 독특하고도 혁명적인 이들의 사고체계가 허위·조작정보 등을 만나 비틀대고 있다. 사고의 자동화를 위한 기계의 잠재력을 한껏 숭배했던 이들이 의외의 복병과 마주한 것이다. 놀라운 점은 알고리즘이 풀지 못한 도전적 과제 앞에서 그들은 새로운 대안으로 인간을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그 테이프를 강제로 끊어야 했던 주체가 페이스북이었기에 벌어진 입을 다물기가 쉽지 않다.

페이스북은 뉴스를 위한 독립적 공간을 올 하반기 개설할 계획을 공개하면서, ‘인간’ 기자들을 고용해 일부 업무를 맡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6년 트렌딩 토픽 논란으로 곤혹스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모든 인간 편집자를 해고하고 기계에 맡겨버린 정책을 내놓은 지 불과 3년 만의 결정이다. 한때 “우리가 쓰는 말에서 인간성을 덜어내고 더 기계적인 말로 바꿔야 한다”고 할 만큼 뼛속 깊은 ‘알고리즘주의자’였던 그들. 이들이 그렇게나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자동화 알고리즘에서 한 발 물러나 다시 인간을 바라보게 된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페이스북에만 그치지도 않는다. 추천 알고리즘의 상징과도 같은 넷플릭스도 인간이 직접 추천하는 별도의 영화 메뉴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넷플릭스도 “콘텐츠를 소비하는 다양한 방식”이라고 포장했다. 그것이 진심이고 속내일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더 이상 상업적으로 차별화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인간의 조력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어서다. 물론 숙련된 인간으로부터 더 양질의 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해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콘텐츠 생산자로부터 가해지는 강력한 압박에 못이겨 타협안을 내놓은 것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대안’이 인간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기술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은 기계의 완전성은 자동화에 있지 않다고 했다. 자동화는 낮은 단계의 완전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계가 완전함을 띠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 감수성을 지닌, 비결정 상태로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기계는 인간을 통역자로 그리고 조정자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했다. 그 상태가 바로 열린 기계인 것이다.

페이스북의 이번 결정이 시몽동이 말한 ‘기술적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변곡점을 의미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허위·조작정보가 기술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페이스북이 인간의 가치에 다시 주목한 것을 계기로,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새로운 사고체계가 구성되길 바라본다.

<이성규 전 메디아티 미디어테크 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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