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내 아이가 학교폭력을 당한다면

이상우 경기 오산 금암초등학교 교사(실천교사 정책위원)
2019.05.27

부모 입장에서 대처방법 몰라 당황… 비난하지 말고 자녀 말에 공감하고 경청해야

초등학교에서는 드물게 학교폭력 관련 업무만 7년을 했다. 매우 경미한 사건부터 언론에 보도될 만큼 심각한 사건들도 있었다. 학교 안팎에서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을 만났다. 사정은 다르지만 다들 비슷한 얘기를 한다.

“우리 애가 ‘학폭’을 당할 줄은 몰랐어요. 막상 이런 일을 당하니 당황스럽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네요. 선생님 어떻게 해야 되죠?”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부모 입장에서는 걱정스럽고 막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처음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보통 아이가 집에 와서 알려주거나 담임교사가 전화로 연락하는 경우다. 우선은 당황하기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사건의 전후 맥락보다는 자기가 유리한 부분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한 경우도 있겠으나, 보통은 양쪽 모두 어느 정도 피해를 주고받는다. 아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면서 상황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말에 경청하고 공감하면서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물어보는 게 좋다. 절대 아이를 비난하지 말고,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부모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을 약속한다. 부모를 믿고 용기를 내어 말한 자녀가 고맙고 기특하지 않은가?

담임교사와 직접 면대면 상담을

부모는 담임교사의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직접 면대면 상담을 해도 좋다. 교사에게 평소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떤지 물어보고 아이에게 들은 학교폭력 사실을 얘기할 수 있다. 보통 초등학교에서는 1차 조사는 담임교사가 맡고 중학교는 생활지도부에서 한다. 관련된 학생의 인원수가 많지 않을 경우 하루이틀이면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조사 결과는 다양할 수 있다.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내 아이가 피해학생이면서 가해학생인 경우, 내 아이가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상대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 경우 등이다. 간혹 증거가 없어서 피해사실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보통 부모들은 자녀에게 처음 들은 얘기로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의심보다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교사에게 부탁하고, 해결방법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좋다.

학교폭력이 신고된 후 이것이 정말 학교폭력인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학부모위원과 교원위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다. 그렇다고 무조건 모든 사건을 학폭위에서 다루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교폭력이 신고되면 무조건 학폭위를 개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때마다 회의가 열리면 담당교사는 정상적인 수업을 할 수 없다. 학교폭력 신고 접수부터 학폭위 결정의 통보와 결정 이행까지 적어도 20시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매우 경미한 사안은 관련 학생들이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비교적 경미한 사안은 학폭위를 개최하지 않고 학교장 자체종결 사안으로 다루기도 한다. 가해학생은 잘못을 인정한 뒤 사과하고 피해학생은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서류양식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서명을 하고 학교에서 내부결재를 맡아 잠정적인 종결을 한다. 여기서 ‘잠정적인 종결’이라 함은 나중에 피해학생이 문제를 삼으면 언제든 학폭위 개최를 다시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통 자체종결 후 가해학생의 태도가 나아지지 않고 계속적인 피해를 주는 경우 예전의 자체종결 사안과 새롭게 발생한 사안을 병합해 다루기도 한다. 최근에는 학교장 종결제가 학부모로부터 학교폭력을 은폐·축소한다는 의심을 받게 할 수 있어서 학교 입장에서는 꺼리는 경향도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를 보호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 학폭위 개최를 요구할 수 있다. 만약 학폭위를 열기 전에 자녀의 피해상태가 심각하거나 추가적인 피해와 신고로 인해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면 학교장이 긴급하게 피해학생 보호조치와 가해학생에 대한 긴급조치(예를 들면 특별교육과 출석정지)를 내릴 수 있다.

양쪽 부모, 학교가 마련한 자리서 만나야

학폭위가 열리면 관련 학생과 학부모는 의견을 진술하고, 5~10명의 학폭위 위원들의 협의로 학교폭력 여부를 판단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피해학생에게는 상담이나 치료, 그밖에 필요한 조치를 결정한다. 피해학생이 교육청에서 지정된 상담기관과 의료기관을 이용하면 안전공제회에서 비용 지급이 가능하다. 가해학생에게 내려진 조치는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경중에 따라 졸업과 동시에 바로 삭제하거나 졸업 후 2년 뒤에 삭제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데 실제로는 피해학생을 보호하지도, 가해학생을 선도하지도 못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교사들은 업무시간을 쪼개 학폭위 절차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해학생 학부모는 준사법기구 같은 학폭위로 인해 자녀가 범죄자로 취급당한다고 생각한다. 전체 위원 과반수 이상의 학부모위원들에 대한 전문성 부족을 문제삼기도 한다. 피해학부모 중에서 엄벌이 자녀를 보호하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 가해학생의 ‘강제전학’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전학조치가 내려지는 경우는 드물다. 전학은 의무교육기관에서 내리는 가장 무거운 징계로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학부모라면 학폭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생각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 개최를 요구할 것이다. 그보다 사과로 충분하다면 상대편 학생의 진실한 사과를 받고 마무리하겠다. 피해 정도가 가볍지 않고 재발이 염려된다면 상대 학부모에게 사과와 재발방지 노력에 대한 약속을 받을 것이다.

최근 피해학부모가 자녀 보호에 대한 걱정이 지나쳐서 가해추정 학생을 따로 만나서 무리하게 훈계하다가 아동학대 시비에 휘말려 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빠지는 경우를 본다. 아울러 양쪽 학부모가 사건 전모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 학부모에게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분쟁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학교가 마련한 자리에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좋다.

학교폭력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에게 반갑지 않다. 그러나 실제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학폭위로 가더라도 직접 사과와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거나 갈등 중재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아이들의 상처와 관계가 회복되고, 학교 공동체가 아픔을 딛고 더욱 단단하게 성장해가는 모습도 자주 봤다.

범죄 수준의 심각한 학교폭력은 학교에서 감당하기 어렵고, 경찰에서 다루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학교폭력으로 명명된 90% 이상의 학교폭력은 교육의 프레임 안에서 갈등 해결을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 폭력과 평화의 이분법적 논리로 아이들의 문제를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도 된다.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맺기 기술이 더욱 중요한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야생 버라이어티’를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상우 경기 오산 금암초등학교 교사(실천교사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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