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여권을 대체했다. 그 덕에 공항 내 수속절차는 편리해졌다. 손바닥만한 스캐너에 얼굴만 비추면 절차는 완료된다. 하지만 께름칙하다. ‘대체 저 작은 기계가 어떻게 나를 식별하고 판별하는 걸까.’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얼굴 사진을 항공사에 제출한 적도 없고, 항공사 직원을 만난 적도 없는데, 예약자인 나를 판별해 기내로 안내해준다. 물론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4월 미국 JFK 공항에서 제트블루라는 항공사를 이용해 국제선 항공기에 탑승하려던 매킨지 페간이라는 승객의 실제 사례를 옮겨 적었을 뿐이다. 이 승객은 트위터를 통해 항공사에 경위를 따져물었다. 제트블루로부터 돌아온 응답은 더 공포스러웠다. 국토안보부 산하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의 데이터베이스와 대조를 했다는 것이다. 관세국경보호청은 페간에게 개인 얼굴 이미지의 활용범위에 대한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제트블루가 JFK 공항에 생체인식 체크인 기기를 설치한 건 2018년 11월. 약 6개월이 지나도록 프라이버시 이슈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심지어 해당 식별 소프트웨어의 뒤에 국가기구의 데이터베이스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드러나지도 않았다. 국가와 기업의 ‘감시체계 결탁’은 혁신적 서비스와 편의성이라는 그림자 뒤에 이렇게 숨어 있었다.
얼굴 인식 알고리즘의 기술 구성을 알면 감시를 향한 불안감은 증폭된다. 일반적인 얼굴 인식 알고리즘은 얼굴 탐지·보정·재현·검증 4단계로 이뤄져 있다. 각 단계마다 기계학습이 개입돼 얼굴 인식의 정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더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확보하려면 더 많은 시민들의 얼굴 이미지 데이터를 공급받아야 한다. 다양한 표정, 촬영 각도, 주변의 밝기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에 웬만한 수준의 얼굴 데이터만으로는 정확한 식별이 불가능하다.
사실 디지털 세계에서 감시는 정상 상태에 가깝다. 감시와 편의가 교환되는 사회여서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 가입해 이미지를 업로드하며 자기만족을 확장해 가는 기회를 얻는다는 건 곧 인스타그램의 감시체계를 수용한다는 메시지다. 사용자들도 이를 이해하고 감내한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해야 할 지점이 포착된다. 감시자의 규모와 감시의 방식이다. 제트블루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감시자들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국가-기업의 연합 형태로 몸집을 키운다.
감시를 두고 시민과 국가-기업 연합의 대결구도가 짜여진다면 시민의 편의는 감시의 공포에 짓눌릴 수도 있다. 이는 디지털 사회가 지닌 감시체계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판옵티콘이 시선의 비대칭성을 먹고 성장했다면, 디지털 감시체계는 데이터 접근권의 비대칭성에 기반해 세력을 확장한다. 이를테면 국가-기업 감시연합은 얼굴 템플릿과 같은 생체지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지만, 시민은 국가-기업 블록의 알고리즘이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다. 접근 대칭성의 균형이 무너지면 편의나 유익의 교환을 넘어 통제적 감시로 나아갈 가능성 높아진다.
인천공항도 2020년부터 생체인증 패스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했다. 발표문에는 ‘지문, 얼굴 등 정부기관이 관리하고 있는 생체정보를 이용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미 확보한 생체지표 데이터이기에 편의를 위해 마음껏 활용해도 된다는 뉘앙스다. 국토부-공기업-항공사의 감시자 연합 블록이 형성돼 시민을 감시하기 시작하면 시민들의 자유와 저항범위는 상대적으로 취약해진다. 아무리 털릴 대로 털린 개인정보라지만 ‘삭제 불능’의 생체지표 데이터가 지닌 민감성을 감안한다면 수용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편의 이면에 숨어 있는 감시의 로직을 인식해야 할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성규 전 메디아티 미디어테크 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