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화가’ 윤형근 회고전

이윤정 올댓아트 에디터
2018.09.10

역사는 때론 한 개인에게 가혹한 발자취를 남긴다. ‘단색화 거목’ 윤형근(1928~2007)도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했다. 1928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역사적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1947년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 시위에 참가해 제적당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학창시절 시위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당할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다.

<다색> 1980, 마포에 유채, 181.6x228.3cm | 국립현대미술관

<다색> 1980, 마포에 유채, 181.6x228.3cm | 국립현대미술관

전쟁이 끝나고도 시대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전쟁 중 피란을 가지 않고 서울에 남았다는 이유로 1956년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해야 했다. 다시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윤형근은 청주여고 교사가 됐지만, 4·19 이후 이승만 정권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가 부당한 발령을 받고 사직한다. 이후 숙명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일했지만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으로 부정입학했던 학생의 비리를 따져 물었다가 1973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다.

세 번의 복역과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45세의 화가는 울분을 삼키며 예술을 토해냈다.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작업실에 틀어박혔지만 역설적으로 주옥 같은 작품을 쏟아냈다.

윤형근은 스스로 이 시기를 ‘천지문(天地門)’으로 일컫는다. 평소 작가는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그윽하고 깊은 신비, 삼라만상의 묘한 이치가 나오는 문(玄之又玄 衆妙之門)’을 자주 언급했다. 특히 깊은 신비를 뜻하는 ‘검을 현’(玄)에 주목했다. 그의 그림은 하늘의 색인 청색과 땅의 색인 암갈색이 섞인 오묘한 검정색이 주를 이룬다.

스승 김환기 화백이 하늘의 색에 승부수를 두었다면, 제자이자 사위였던 윤형근은 땅의 빛깔로 자신을 드러냈다. 스승을 넘어 한국 단색화의 새로운 길을 묵묵히 닦았다.

윤형근의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최초 공개작을 포함해 작품 40여점, 드로잉 40여점, 아카이브 100여점이 전시됐다. 또 장인 김환기를 비롯, 도널드 저드, 조셉 러브 등 당대 예술가, 지식인들과의 교유관계도 재조명된다.

특히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울분을 담아낸 작품 <다색>이 최초 공개됐다.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던 작가는 광주의 눈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당시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은 똥이여, 사람들이 픽픽 죽어가는데 예술이 다 뭐 말라죽은 거여”라고 한탄했다. 화폭에는 쓰러진 기둥이 새겨졌고 짙은 물감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평소 “내 작품은 그림이 아니다. 그냥 화풀이 작업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한 화가는 묵직한 단색화에 ‘한’을 녹여냈다.

생전에도 말이 없어 윤형근은 ‘침묵의 화가’로 불렸다. 하지만 그가 말로 내뱉지 않은 시대의 아픔은 화폭에 오롯이 새겨졌다. “천진무구한 인품에서 영원불변한 예술이 만들어진다”고 했던 작가의 말처럼 그의 깊은 인품은 큰 작품을 만들어냈다. 전시는 오는 12월 16일까지.

<이윤정 올댓아트 에디터>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