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비콘-1957년 미국 흑인차별, 그리고 2018년 한국

정용인 기자
2018.07.16

서버비콘은 전형적인 교외 백인 중산층 마을이다. 여기에 마이어스네가 이사를 오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웃들과 마이어스네가 다른 점? 그들만 흑인이었다는 점이다.

제목 서버비콘
원제 Suburbicon
각본/제작 코엔 형제
감독 조지 클루니
출연 맷 데이먼, 줄리안 무어, 노아 주프, 오스카 아이삭
상영시간 105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8년 7월 12일

㈜영화사진진

㈜영화사진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체포당하는 조지 클루니. 영화가 아니라 실제다. 2012년 3월, 그는 미국 워싱턴 소재 수단 대사관 앞에서 그 나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항의하다 체포됐다. 대표적인 사회파 배우다. 그는 21세기 들어서는 영화감독으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TV 시리즈 연출을 제외하더라도 이 영화 <서버비콘>을 포함해 5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조지 클루니보다 코엔 형제 영화

하지만 이 영화가 누구의 영화냐고 언급하자면 그보다 먼저 언급돼야 할 사람들이 있다. 코엔 형제다. 7월 4일 서울 용산에서 진행된 언론시사 때도 그랬다. “영화 어떠셨어요?” 거의 마지막으로 상영관 문을 나서는 기자에게 영화 홍보사 관계자가 물었다. 보통 저런 질문은 영화에 대해 걱정되는 것이 있을 때 내지는 아직 어디에 홍보 강조점을 둬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을 때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회사에 돌아와 찾아보니 로튼 토마토 지수를 절반도 못 받았다. 흥행성적도 좋지 않았다. 반응이 신통치 않자 홍보사 관계자 입에서 나온 말이 “그래도 코엔 형제 영화인데”였다.

정말 그렇다. 딱 코엔 형제다. 가장 떠오르는 영화는 그들의 이름을 알린 장편 데뷔작 <분노의 저격자(blood simple)>(1984)다. 1990년대 어디든 넘쳐나던 시네필들의 필견작. 오프닝은 그림책 같은 포맷으로 만들어진 ‘서버비콘’이라는 도시의 홍보영상이다. “서버비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947년에 첫 삽을 뜬 이 타운은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모든 사람들의 번영을 약속….” 다시 떠오른 것은 <옥자>나 <설국열차>와 같은 봉준호 감독의 최근작들이다. 맞다. 봉 감독이 코엔 형제를 좋아했었지. 시작은 미미했으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캐릭터들의 좌충우돌이 전혀 엉뚱한 결과로 귀결되는 시놉시스의 전개도 전형적이다.

뒷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코엔 형제는 <분노의 저격자>를 만들 때 이미 이 각본의 초기 버전을 만들어뒀고, 그걸 썩히는 걸 아까워한 조지 클루니가 영화를 만들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서버비콘은 전형적인 교외 백인 중산층 마을이다. 여기에 마이어스네가 이사를 오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웃들과 마이어스네가 다른 점? 그들만 흑인이었다는 점이다. 이웃 중산층 백인 전업주부들은 내심 경악한다. 동네의 백인 남자들은 마을자치회를 대상으로 청문회를 연다. 어떻게 흑인이 이사올 수 있었는지. 그들은 마이어스네 집 주변에 울타리를 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집에 이웃한 가드너네 가족. 부인 로즈가 아들 니키에게 마이어스네 또래아이 앤디와 캐치볼을 하도록 했던 날 밤, 2인조 강도가 가드너네 집에 침입한다. 이 강도들은 가드너 가족을 결박한 뒤 클로로포름에 적신 수건으로 정신을 잃게 하는데, 꼬마 니키는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 강도들이 자신의 엄마에게 클로로포름을 과다 사용해 결국 죽이는 걸 목격한다.

왜 가드너네 가족은 그런 취급을 당해야 했을까. 아이가 이웃집 흑인 가족과 어울렸기 때문? 마이어스 가족에 대한 동네 주민들의 혐오공격 수위가 높아지는 것과 가드너 가족이 겪는 사건은 비례해 진행한다. 천연덕스럽게 “흑인차별은 반대하지만 그들과 같은 동네에서 살 수는 없다”고 언론 인터뷰를 하는 동네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그렇지만, 1950년대 백인 중산층인 가드너 가족의 위선 내지는 가식이 폭로되는 순간, 우연한 사고로 덮여버리는 과정 등은 일종의 블랙코미디 내지는 잔혹동화극처럼 연출이 되어 있다.

흑인 가족과 어울린 이웃집 아이

왜 이 영화가 외국에서는 망했을까. 백인사회의 허울에 대한 신랄한 폭로와 비아냥을 마냥 웃기엔 가슴에 찔리는 대목이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와 비슷한 시점에 세상에 나온 영화 <세이프 오브 워터>(기에르모 델 토로 감독·2017)가 떠올랐다. 서브플롯에서 다룬 소재가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 백인 중산층 가족의 위선 내지는 몰락’이다.

<서버비콘>은 코엔 형제 영화지만, 또 코엔 형제의 각본답지 않게 직선적이다. 니키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구세주로 나타난 삼촌 미치의 캐릭터가 충분히 천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것은 아쉽다. 각본보다 연출 문제로 보인다.

영화가 개봉하면, 한국 사회의 어떤 맥락과 접목되어 읽힐까. 난민 이슈다. 영화에서 사건이 마무리된 뒤 동네 주민들은 TV 카메라 앞에 서서 가드너 가족이 갑작스레 당한 ‘불행’도 ‘그들’이 이사 온 시점과 일치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니까 모두 다 동네 민심을 흉흉하게 만든 ‘그들’ 탓이다. 희한한 주장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유색인종, 흑인이 매도되던 자리에 2018년 대한민국 무슬림 난민을 끼워넣으면 얼추 맞아 떨어진다.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은 영화상 설정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문제다. 모골이 송연한 일이다.

영화의 실제 모델, 마이어스 부부의 그 후

영화 앞 선전 영상. 서버비콘 마을은 “뉴욕이나 오하이오주, 미시시피보다 인종 다양성이 낮다”고 선전된다. 물론 진짜는 아니고 가상 마을이다. 그렇다면 거기로 이사 갔다 봉변당한 흑인 가족 마이어스네도? 불행히도 진짜다. 이름도 같다.

영화의 실제 모델이었던 데이지, 윌리엄 마이어스 부부. | blackamericaweb.com

영화의 실제 모델이었던 데이지, 윌리엄 마이어스 부부. | blackamericaweb.com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뉴욕과 같은 대도시 주변엔 교외마을이 여럿 조성된다. 미국 정부 주택국과 보훈처가 보조해 만든 이 마을들은 주로 새로 가족을 꾸리게 된 퇴역군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인근 대도시에 있는 직장에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백인 중산층 거주지 정도의 개념이다. 사건은 1957년 8월 벌어졌다. 교외타운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 레빗타운이었다. 윌리엄, 데이지 마이어스 흑인 부부 가족이 이사를 가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남편 윌리엄은 엔지니어였고, 데이지는 학교 교원이었다. 은근한 왕따로부터 시작된 마을 백인 주민들의 소요는 점점 폭력성을 띠게 되었고, 급기야 야밤에 떼로 몰려들어 유리창에 돌을 던지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등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쓰레기 투척이나 방화 등으로 번지자 주(州) 차원에서 개입했다. 하지만 소요는 계속됐다. ‘흑인 역사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Little Known Black History Facts)’이라는 인터넷에 따르면 ‘이들 가족이 굴하지 않고, 이사를 가지 않는다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깨닫고 나서야’ 소요나 집단 괴롭힘은 잦아들었다.

그 후 마이어스 부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그 후 4년을 거기서 더 산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마을을 떠났다. 영화의 설정과 달리 그들 부부 사이에는 딸이 있었다. 딸의 회고에 따르면 그녀의 부모들은 동네 주민들의 집단 괴롭힘보다 그들을 도왔던 소수의 동네 주민들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북돋워주는 방식으로 그 기간을 버텨냈다.

거의 반세기가 지난 2005년, 부인 데이지 마이어스는 이때 당한 경험을 회고하는 책을 냈다. 남편 윌리암 마이어스 사후 레빗타운 측은 그녀를 초청해 그때 사건을 공식사과하고, 타운의 시청 앞에 그녀의 이름을 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