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일본의 문호 다자이 오사무는 왜 자살했나

2017.12.05

아오모리의 대부호 집에서 태어난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극단적인 자기 모멸 끝에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와바다 야스나리,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가 그랬듯이.

<대망>이 그랬듯이, 오래전의 헌책방에서 나는 <설국>도 훑어봤고 <침묵>도 읽어봤고, 도저히 끝을 알 수 없는 마쓰모도 세이초 같은 비정파 추리소설도 읽어봤다. 평범한 독서인으로서 읽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조금은 머리가 여물어지면서 이런 소설들이 지닌 일본 근대성의 복합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면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나 미학자 가라타니 고진을 또한 제목이라도 일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일본의 근대는 무섭도록 알 수 없는 세계가 되었다. 그래서 공부 삼아 다시 일본의 모더니티를 증거하는 무서운 소설과 사상서들, 그 뜨거운 ‘서문’이라도 이번 기회에 살펴볼 생각인데, 가령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인 <인간 실격>의 다음과 같은 ‘서문’은 애증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 기이한 소설의 서문은 한 사람의 생애가 축약된 세 장의 사진에 대한 묘사로 진행된다.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 /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년시절을 찍은 그 첫 번째 사진.

“통속적인 ‘귀염성’ 같은 것이 그 아이의 웃는 얼굴에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미추에 대한 감식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뜻 보기만 해도 금방 몹시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정말 섬뜩한 아이군’ 하고 송충이라도 털어내듯이 그 사진을 내던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대학을 다닌다. 그때의 사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책 표지 사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책 표지 사진.

애증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기이한 소설

“교복 왼쪽 가슴에 있는 주머니에는 하얀 손수건을 꽂고 등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웃고 있다. 이번 미소는 주름투성이의 원숭이 웃음이 아니라 꽤 능란한 미소가 되어 있지만, 그러나 인간의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걸린다. 피의 무게랄까 생명의 깊은 맛이랄까. 그런 충실감이 없는, 새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깃털처럼 가벼운, 그냥 하얀 종이 한 장처럼 그렇게 웃고 있다. 즉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소설의 캐릭터를 작가와 겹쳐 읽는 것은 위험한 독서이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회한과 자학이 짙게 배어 있음은 물론이다.

아오모리. 일본 사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며 그 종류만 해도 70여종에 이른다는 유명한 ‘아오모리 사과’의 생산지 아오모리. 그곳의 대부호 집에서 태어난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극단적인 자기 모멸 끝에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와바다 야스나리,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가 그랬듯이 일븐문학의 거성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했다. 왜?

아오모리의 대지주이자 귀족원(중의원) 의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다자이 오사무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위선적인 생활을 폭로한 작품을 썼다. 고리대금업으로 막대한 부를 긁어모으며 대지주가 되어 온갖 부정한 일을 저지른 아버지였다. 이 과정에서 심한 마음의 병을 얻은 그는 고교 3학년 때인 1929년에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몸을 추스른 다자이 오사무는 1930년에 도쿄대 불문과에 입학했으나 게이샤 출신의 여인과 인연을 맺은 일이나 좌파 활동에 참여했던 일로 인하여 가족으로부터 ‘분가 제적’을 당한다. 1931년에는 좌파 검거 선풍 때 스스로 자수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심각한 죄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카페 여급과 함께 두 번째 자살 시도를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설 <역행>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의 차석으로 선정되었을 때는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소설가이자 심사위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겨냥하여 왜 최고 수석이 아니냐는 항의문을 쓰기도 했다. 정신병원 입원과 마약성 진통제 중독, 세 번째 자살 시도 등을 감행하면서 그렇게 소설가가 되었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시대적 상황이었다. 태평양전쟁과 전후 우경화 경향이 그를 괴롭혔다. 전쟁과 우경화는 강력한 힘의 분출이었고 다자이 오사무는 그러한 힘의 충동을 경멸했다. 온갖 질환과 거듭되는 자살 충동으로 계단조차 오르내리기 어렵게 된 다자이 오사무는 이윽고 1948년의 봄에 <인간 실격>을 완성하고는 그해 6월 13일 밤, 함께 살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 강에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다.

다시, 소설 <인간 실격> 서문의 사진 묘사. 자기 파괴적인 생애를 산 자가 죽음에 이르렀다. 그 세 번째 사진.

“쭈그리고 앉아 화로에 양손을 쪼이다가 그냥 그대로 죽어간 것 같은, 정말로 기분 나쁘고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사진이다. 이상한 것은 그뿐이 아니다. 그 사진에는 얼굴이 비교적 크게 찍혀 있어서 그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었는데 이마도 평범, 주름도 평범, 눈썹도 평범, 눈도 평범, 코도 입도 턱도……. 아아, 그 얼굴에는 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상조차 없다.”

6·25 발발한 날 금각사에 불지르다

다자이 오마무의 자살을 두고, 훗날 극단의 미와 강한 힘을 동경하며 할복자살해 버린 미시마 유키오는 다자이 오사무가 ‘냉수마찰이나 기계체조’로 충분히 해결할 일을 예술로 해버렸다며 비판했지만, 이는 그 나머지의 절반의 진실, 즉 다자이 오사무가 ‘치료하고 싶지 않은 병자’라는 점을 간과한 지적이다.

그는 이 소설의 ‘서문’을 “사람 몸뚱이에다 짐 끄는 말의 목이라도 갖다 붙이면 이런 인상이 되려나?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기묘한 얼굴의 남자를 역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쓰면서 마쳤다. 그 자신의 삶과 그의 시대에 대한 환멸의 표현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는 냉수마찰을 할 생각이 없었고, 설령 그런 마음을 먹는다 해도 그의 질환은 기계체조 정도로는 치유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의 병은 강한 힘을 신봉하던 자기 집안의 독특한 분위기를 시작으로 천황제와 전쟁과 전후 우경화 경향이 함께 빚어낸 ‘치료하고 싶지 않은 시대의 병’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극단적 선택, 즉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시마 유키오는 어떤 글을 썼는가. 그의 대표작 <금각사>는 달리 서문은 없지만, 오늘의 이야기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만한 묘사가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그 첫머리. 소설의 주인공이 교토의 고찰 금각사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후쿠이현과 이 쪽 교토부의 경계를 이루는 기치자카 언덕은 바로 동쪽에 위치한다. 그 언덕 언저리에서 해가 솟는다. 현실의 교토와는 반대방향이지만, 나는 산간의 아침 햇살 속에서 금각이 하늘에 솟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는 소년은 “몸도 약할뿐더러 달리기를 하여도 철봉을 하여도 남에게 뒤지는 데다가, 선천적인 말더듬 증세가” 있어 내성적인 인간이 되었고 성장과정에서 과묵하고 잔인한 폭군이나 그 자신만이 열 수 있는 복잡한 내면의 미로에 갇힌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문제의 날. 그는 금각사에 불을 지르기로 결심한다. 무너져 가는 금각사를 완전히 불태워버림으로써 환멸과 파멸의 시대에 불을 지르려는 것이다. 그 문제의 날이 우리에게는 ‘문제적’이다. 일본 작가들의 근대적 인식은 우리 한반도와 완전히 겹쳐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어보자.

“6월 25일, 한국에 동란이 발생했다. 세계가 확실히 몰락하고 파멸하리라는 내 예감은 사실이 되었다.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그는 금각사에 불을 지른다. 왜? ‘한국동란’이 발발한 날에 왜? 그것이 내가 일본 근대의 소설과 책들을 그 ‘서문’이라도 훑어보려는 이유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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