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묻고 이미지가 답하다
이은기 지음·아트북스·1만8000원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들은 ‘서민 코스프레’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 재래시장을 찾아 시장 상인들과 악수를 하고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먹는다. 표를 얻기 위해서다. 설령 후보가 서민의 생활을 잘 모르는 특권층의 삶을 살았더라도 서민과 가깝다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왕정시대에는 어땠을까.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가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습이던 시절, 왕은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를 연출했을까.
책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 이집트와 페르시아 등 지중해 연안의 전 지역과 흑해, 인도까지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한 최초의 왕이다.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라고 불리는 작품에는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를 무찌른 전투 장면이 그려져 있다. 다리우스 3세는 돌진하는 알렉산드로스의 기세에 눌려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황급히 후퇴하고 있다. 반면 알렉산도로스의 표정은 박진감 넘치는 현대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할 만큼 용맹스럽다. 이는 사실 그대로의 묘사가 아니라 미화된 이미지다.
갑옷은 입었으되 투구는 쓰지 않은 모습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깊은 눈, 쏘아보는 표정은 젊은 영웅의 모습 그 자체다. 또 다른 작품 ‘알렉산드로스 석관’에서 알렉산도로스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힘이 장사였던 헤라클레스는 그를 신격화하기에 딱 알맞은 이미지였다. 이 이미지는 초상 조각이나 기념주화 등 그 시대 여러 종류의 시각 매체로 제작, 유포됐다.
미술사학자인 지은이는 고대 이집트부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르는 현재까지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살핀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담은 작품 속에서 예술가와 권력가의 관계를 다루고, 권력자들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를 분석했다. 미술에 담긴 세계를 정치라는 관점으로 재구성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