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김현수는 갔지만 해외파 2세대가 돌아왔다

최근 몇 년 사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유망주들이 국내 리그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고교를 마치고 해외에 진출했다가 드래프트를 통해 국내로 복귀한 선수들은 정영일·김동엽(이상 SK), 장필준(삼성), 안태경·나경민(이상 롯데), 김재윤·남태혁(이상 KT), 정수민(NC) 등이다.

2007년 4월 KBO는 해외파 특별 지명회의를 열었다. 규정에 막혀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는 선수들을 구제하기 위한 한시적 제도에 따른 회의였다. 1990년대 후반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성공에 고무된 선수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한국프로야구 대신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를 막기 위해 KBO는 1999년 1월 이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해외로 진출한 선수들이 국내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방출 뒤 최소 2년이 지나야 국내 프로야구 구단과 계약할 수 있는 조항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 활약한 선수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마침 한국 프로야구는 IMF 사태 이후 계속된 리그 침체가 이어졌다. 이승엽이 56홈런을 때리며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었던 2003년에도 리그 총 관중 수는 272만2801명에 그쳤다. 1995년 540만6374명을 기록했던 데 비하면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숫자였다. 이마저도 이승엽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자 2004년에는 233만1978명으로 더 줄어들었다.

해외파 2세대 중 가장 주목받는 선수 정영일이 일본 가고시마에서 진행 중인 SK와이번스 특별캠프에서 훈련하고 있다. / SK와이번스 제공

해외파 2세대 중 가장 주목받는 선수 정영일이 일본 가고시마에서 진행 중인 SK와이번스 특별캠프에서 훈련하고 있다. / SK와이번스 제공

해외파 1세대 복귀 리그 활력소 역할
해외파 특별 지명회의는 리그 활성화를 위한 선택이었다. 연고지 고교 졸업생을 우선으로 하되 나머지는 드래프트 방식으로 지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연고 선수가 2명 이상이었던 롯데와 KIA가 각각 송승준과 최희섭을 우선 지명했고, 드래프트를 통해 SK가 추신수, LG가 류제국, 두산이 이승학, 삼성이 채태인, 현대가 김병현을 지명했다. 한화는 추첨에서 탈락해 지명받지 못했다. 특별 지명회의 외에도 연고 선수 1차 지명 형태를 통해 김선우가 두산(2008년)과, 봉중근이 LG(2007년)와, 서재응이 KIA(2008년)와 계약했다.

해외파의 대거 복귀는 리그 전체를 들뜨게 만들었다. 2007년 리그 총 관중 수는 전년도 304만명에서 410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김선우, 서재응이 합류한 2008년에는 525만명을 기록해 1995년 이후 처음으로 리그 총 관중 500만명을 돌파했다. 이후 꾸준히 증가한 관중 수는 2012년 700만명을 돌파했다.

실제 해외에서 돌아온 선수들은 전력면에서도 각 팀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최희섭은 2009년 KIA의 우승을 이끈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송승준은 여전히 롯데의 토종 선발 에이스다.

KBO리그는 이제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2015년 강정호가 피츠버그와 계약한 뒤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데 이어 리그 최고 타자였던 박병호와 김현수가 올 시즌 각각 미네소타, 볼티모어와 계약해 리그를 떠났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이대호와 오승환 역시 시애틀,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했다. 스타가 떠나며 리그 관중 수는 줄어들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를 만회할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앞선 복귀 선수들이 해외파 1.0이었다면 이제는 해외파 2.0이라 부를 만한 선수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유망주들이 국내 리그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해외파 특별지명 형태가 아니라 규정에 따른 복귀다. 원 소속구단에서 방출된 뒤 무적 상태에서 유예기간 2년을 채워 드래프트를 통해 복귀한 선수들이다. 대부분 2년 동안 군복무를 통해 병역을 해결한 뒤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았다.

고교를 마치고 해외에 진출했다가 드래프트를 통해 국내로 복귀한 선수들은 정영일·김동엽(이상 SK), 장필준(삼성), 안태경·나경민(이상 롯데), 김재윤·남태혁(이상 KT), 정수민(NC) 등이다. 가장 주목을 받는 이들은 SK에 지명된 뒤 상무 복무를 마친 정영일과 지난해 삼성에 지명된 장필준이다.

이제는 리그 에이스로 성장한 김광현은 고교 시절 정영일, 장필준과 함께 ‘트로이카’라 불렸다. 김광현은 안산공고, 정영일은 진흥고, 장필준은 천안 북일고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다. 이후 서로의 길이 갈렸다. 김광현은 SK에 지명돼 국내리그에 남았지만 정영일은 LA 에인절스와 계약했다. 장필준은 한화에 지명됐지만 계약금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이후 상무를 거쳐 LA 에인절스와 계약했다.

10년 전이었던 2006년 모두 고3으로 각 팀의 에이스였던 이들은 10년이 흘러 다시 KBO리그에서 만나게 됐다. 정영일과 장필준 모두 스프링캠프에서 150㎞ 언저리의 공을 던지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둘 모두 SK와 삼성의 불펜에서 팀에 보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NC 투수 정수민도 기대를 모은다. NC의 2차 캠프까지 살아남으면서 국내 데뷔 준비를 마쳤다. 정수민 역시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지만 빅리그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NC에 2차 1순위에 지명됐다.

한 번의 실패 딛고 재도전 도약 기대
KT 김재윤은 검증된 해외 복귀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고교 졸업 뒤 메이저리그 애리조나와 계약했던 김재윤의 원래 포지션은 포수였다. 애리조나에서 빅리그 도전에 실패한 뒤 국내로 돌아와 KT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김재윤은 전향 1년도 채 안 됐지만 KT 불펜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지난 시즌 42경기에 나와 1승2패, 6홀드 방어율 4.23을 기록했다.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지 1년도 안 된 상태에서 묵직한 공을 뿌렸다. 올 시즌 KT의 핵심 불펜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투수로서 경험이 아직 짧기 때문에 구종의 단순함이 약점으로 지적되지만, 오히려 투구 경험이 많지 않아 어깨가 싱싱하다는 점,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장점으로 평가받는다.

2016 드래프트에서 2차 9라운드 지명된 SK 김동엽은 캠프에서 기대 이상의 장타력을 선보이며 SK 타선 강화의 히든 카드로 떠올랐다. 한화에서 뛰었던 포수 김상국의 아들인 김동엽은 고교 졸업 뒤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다가 돌아왔다.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2차 전체 1순위에 뽑혀 KT 유니폼을 입은 남태혁도 주목할 만한 선수다. 드래프트에 앞서 열린 해외 복귀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남다른 장타력으로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LA 다저스와 계약했다가 돌아온 남태혁은 이대호와 닮은 외모, 덩치로 더욱 눈길을 끈다.

KBO리그는 그동안 새 얼굴, 특히 선발투수 쪽에서 갈증이 심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발투수들이 좌완 일색이었다. SK 김광현, KIA 양현종, 삼성 차우찬을 비롯해 두산 유희관, 장원준 등이 모두 좌완이다. 프리미어 12에서도 우완 선발 쪽에서 마땅한 선수를 찾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해외파 2.0이라 불릴 수 있는 투수들이 대부분 리그에 부족했던 우완 투수다. 일단은 각 팀에서 불펜 투수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성장에 따라 선발투수로 뛸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선발진에 합류한다면 리그의 다양성이 커지는 효과도 얻는다.

스타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스타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야구는 신인들, 새얼굴 보는 재미가 절반을 넘는다. 강정호, 박병호, 김현수가 떠난 자리를 새로운 얼굴들이 채울 수 있다면 프로야구의 재미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들은 단지 새얼굴일 뿐만 아니라 큰 무대에서 한 번의 실패를 맛봤다. 한 번의 실패에 무자비한 우리 사회에서 실패를 겪은 이들이 다시 한 번 도전하게 되는 장면만으로도 단순한 공놀이 이상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과거의 메이저리그 도전을 두고 치기어린 헛바람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규정에 따른 2년을 채우고 돌아온 이들이다. 재도전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면, 앞선 도전도 새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이제 곧 2016 프로야구가 시작된다. 3월 8일부터 2016시즌 KBO리그 시범경기가 출발한다. 시범경기에서 이들 돌아온 선수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은 올 시즌을 즐기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용균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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