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오후 2시 수문장 교대식이 시작되자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수문장 교대식의 외국어 설명은 첫 번째가 영어이고, 두 번째가 중국어였다. 일본어는 세 번째였다. 요즘 서울을 찾는 외국인의 국적을 가늠케 하는 민낯이었다.

같은 시각 국회 본희장. 대정부 질문에 나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국도 WTO(세계무역기구) 국가로, 정치적 문제의 대응으로 그런 무역보복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싶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전날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중 무역의존도가 25%에 달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의 경제적 보복은 과거 마늘 파동과 비교할 수 없을 것”라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이었다.

중국이 경제보복을 할까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경제학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흔히 나온다. <서울경제>가 2월 17일 경제학자 51명에게 물어본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6.9%는 “중국이 경제보복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41.2%는 다소 낮은 수준의 경제보복을, 15.7%는 강도 높은 수준의 경제제재를 예상했다. “경제제재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은 27.5%에 불과했다. 일반인들에 비해 경제전문가들이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을 더 높게 본다는 것이 드러났다.

유커 빠져나가면 제주 경제 직격탄
중국이 경제보복을 한다면 한국의 대중 의존도가 가장 큰 분야일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관광과 화장품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한국 관광수입은 숫제 중국에 목을 맨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모두 1323만명. 이 가운데 45.2%인 598만명이 중국인이다. 홍콩도 52만명(3.9%)이나 된다. 중국과 홍콩을 합치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둘 중 한 명이 중국인이라는 의미다. 한·일관계가 경색되면서 떠난 일본인의 빈 자리가 별로 아쉽지 않은 게 바로 중국 덕분이었다.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관광객이 급감하자 정부가 즉각 내놓은 카드도 ‘유커(중국인 관광객)’ 붙잡기였다. ‘그랜드 코리아세일’ 등 각종 내수진작책도 실은 타깃은 중국인이었다. 사후면세점의 즉각 환급,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비자 수수료 1년 면제 및 체류 기간 90일로 확대, 복수비자 발급 연령 55세 이상 하향조정 등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법무부, 기획재정부 등 전 부처가 나섰다. 이 같은 유커 유인책은 경제운영방향,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올해 정부가 세운 유커 유치목표는 800만명. 지난해(598만명)보다 33%는 늘린다는 것이 목표다.

실제 유커는 지역경제를 흔들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제주의 서비스업 생산증가율은 6.7%로 전국 평균(3.1%)의 두 배를 넘어섰는데, 바로 유커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 관광 자제를 요구하고, 한국에 대한 감정까지 나빠지면 중국 관광객이 한국을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도 2012년 한·일관계 악화 이후라는 것을 감안하면 양국 간 관계가 관광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화장품의 중국 의존도도 절대적이다. 한류드라마가 뜬 이후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받는 대접은 환상에 가까울 정도다. 중국 화장품 수입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미국, 일본을 제치고 2위다. 일각에서는 이미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1위 프랑스를 제쳤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화장품 수출, 한류 타고 폭발적 성장세
중국 시장에서 이 같은 수출 증가는 한국 화장품 수출액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한국의 화장품 수출은 2011년만 해도 8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29억 달러로 무려 4배가량 늘어났다. 수출이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2015년도 증가율이 전년 대비 34.5%나 됐다. 2014년의 50%에 이은 폭발적 성장세다. ‘만년 화장품 무역적자국’이던 한국은 2014년 사상 처음으로 흑자국이 됐다. 지난해에는 그 흑자액이 전년 대비 5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한국이 화장품으로 벌어들인 돈은 12억1000만 달러, 1조4500억원이나 된다. 이런 추세가 올해도 계속되면 한국은 지난 10년간 까먹은 화장품 무역적자를 다 만회할 정도다.

유커가 국내에서 사 간 화장품까지 따지면 대중 화장품 판매액은 더 크다. 화장품은 올해도 최고 수출 유망품목으로 손꼽힌다. 지난해 코트라가 중국 바이어와 중국 진출 한국 업체를 대상으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유망품목’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가 화장품이 20.5%로 부동의 1위였다.

화장품 판매가 이처럼 증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 화장품의 질이 가격 대비 좋아서지만, 한류와 중국 측의 묵시적 용인도 크다. 중국은 과거 일본산 화장품인 SK-Ⅱ에 대해 중금속 함유를 문제 삼았다. 논란 끝에 중국 측이 내린 결론은 “중금속은 있지만 미미하다”였다. 달리 말하면 한·중관계가 나빠지면 중국이 언제든 한국산 화장품 수입에도 딴죽을 걸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화장품에 대한 안전검사 조항을 조금만 강화해도 한국 화장품 업체들은 반품되는 물량을 걱정해야 한다. 중국으로서는 명분도 있다. 무역적자가 과도해지면서 내부의 우려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화장품 대중 수출입 흑자액은 11억2000만 달러에 달한다. 홍콩(6억7000만 달러)을 합치면 무려 17억900만 달러 흑자다. 우리 돈으로 2조원이 넘는다. 때문에 중국이 “화장품 무역적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세우면 무역제재가 사드 때문인지 아닌지 아리송해진다.

금융시장도 안심할 수는 없다. 중국이 사들인 국채 때문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차이나머니’는 1월 말 기준 전체 외국인 원화채권 보유 잔액의 17.3%(17조4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국가별로 볼 때 미국(17.9%)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중국은 2014년 하반기부터 외환보유액이 감소했지만 원화 채권시장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해온 나라였다. 한·중 간 금융교류가 확대된 것과 함께 한국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작용한 영향도 크다. 중국이 한·중 통화스와프, 한화와 위안화의 결제 확대 등 큰 틀의 정책에 손을 대지 않더라도 채권만 슬며시 팔아도 한국 금융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현 한국 금융은 글로벌 경기부진과 미국 금리인상으로 외국인 자금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바이 코리아’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그림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계 자금의 이탈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있는 만큼 향후 흐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조업도 안심할 수 없는 분야다. 자동차 안전기준만 일부 손대도 한국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수출이 어려울 수 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방안도 있다. 농축수산 분야도 ‘약한 고리’다. 중국이 선심쓰듯 풀어준 쌀, 김치, 삼계탕 등의 수출이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굳이 중국이 제재를 하지 않더라도 한·중 감정이 나빠지면 이런 품목은 소비가 급락한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대할 경우 우리나라를 상대로 경제적 보복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