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라는 시스템을 중·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 처음 알았다. 국회가 어딘가를 감시를 한다는데, 이해도 실감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중학교 3학년 시절 있었던 ‘제5공화국 청문회’를 국정감사로 이해했다. 당시 노무현 의원은 누군가를 불러 집요하게도 추궁을 하다가 보는 사람 속이 다 시원하게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이후 대학생이 되어서도 국정감사와 청문회를 곧잘 혼동했다.
국정감사를 힘의 관계에서 이해한 것은 기자가 되고서다. 그때도 출입하던 법원과 검찰청에 국회의원들이 당당하게 오는 날이 있었다. 국정감사였다. 법조기자를 시작한 2004년은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인 때로, 국회의원은 검찰청에 왔다 하면 구속이었다. 그런데 이날만은 의원들이 탄 승용차 문이 열리기도 전에 검사와 판사들이 허리를 숙였다. 국감을 마치고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결정적인 계기는 노회찬 의원 사건이었다. 오랜 노동운동을 하면서 재판도 여러 차례 받은 초선의원이, 웬일인지 법제사법위원회를 맡았다. 심문 받던 처지에서 질문하는 입장으로 바뀐 셈이다. 이 무렵 서울고등법원에 있던 국정감사에서 그의 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재판장님!”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 제가 하도 재판을 오래 받아놔서. 죄송합니다. 법원장님! 질문하겠습니다.”
기자가 특정분야를 담당하다 보면 출입처에 깊은 애증이 생긴다. 하는 짓이 꼴사납고 너무나도 밉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근거도 없이 비난하면 내 목소리가 먼저 높아진다. 그런 심정이 되는 때가 바로 국정감사 시즌이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으면 ‘저래서야 한방 먹일 수 있겠나’에서 ‘공부는 안 하고 술만 마시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어 간다. 하찮은 질문이나 하면서 자정까지 판·검사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방송사 카메라마저 사라지면 국감장은 더욱 난장판이 된다.
올해 국정감사도 별다른 수익 없이 끝난 모양이다. 모두가 말하듯이 현대국가는 행정국가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빨라지면서 행정부가 입법부·사법부를 압도하고 있다. 행정우위 또는 행정독재를 견제하는 핵심적인 장치가 국정감사다. 의원들이 유능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