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쇼를 사랑한 남자
원제 Behind the Candelabra
제작연도 2013년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마이클 더글라스_리버라치, 맷 데이먼_스콧, 로브 로우_잭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시간 118분
개봉 2013년 10월 9일
월터 리버라치를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리버라치, 비하인드 더 뮤직>이라는 영화였다. 내 기억에 1990년대 어느 시점에 토요명화에서 방영해준 바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쇼를 사랑한 남자>는 그보다 훨씬 리버라치의 진실에 근접한 영화다. 리버라치는 화려한 삶을 살았으나 외로웠고 게이였으며 심부전이 아닌 에이즈로 사망했다.
영화는 스콧 도슨이 팝 피아니스트 리버라치의 눈에 들어 그의 곁을 지키는 심복이자 애인이 되는 지점에서 시작해, 그들의 관계가 박살난 뒤 시간이 흘러 리버라치가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어쨌거나 이 영화가 주목하는 건 리버라치의 (이제와서 새삼 은밀하고 말 것도 없는) 사생활이 아니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는 방식의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빤한 결말로 직행하게 되는지에 관한 영화다.
월터 리버라치는 첫눈에 스콧 도슨과 사랑에 빠진다. 나이 많은 유명한 남자가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연인을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24시간 곁에 두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를 ‘고용’하는 일이다. 월터 리버라치는 스콧 도슨을 고용한다. 스콧 도슨은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고 이 유명한 남자의 곁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실제 그는 리버라치와 사랑에 빠진다.
그가 그의 고용주를 위해 하는 일은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저 리버라치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한다. 스콧은 외부에 리버라치의 운전사로 알려진다. 리버라치는 그의 연인을 24시간 집안에만 머물게 한다. 스콧이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건 리버라치를 그의 공연장까지 에스코트할 때뿐이다. 한동안은 잘 굴러갔다.
포로로서의 연인관계가 대개 그렇듯이, 스콧은 리버라치의 간섭과 규제를 사랑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아니, 사실 그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 리버라치가 사주는 수많은 고급 옷과 자동차, 보석만으로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리버라치는 늙어가는 자기 모습에 충격을 받아 성형수술을 하고, 급기야 스콧에게도 수술을 강요한다. 자기와 닮은 모습으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스콧은 의사가 처방해준 약에 중독된다.
시간이 흐르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둘 사이의 대화에선 서로에게 쌓인 앙금들이 독한 말로 포장되어 양념처럼 등장한다. 스콧은 리버라치에게 외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자주 피력한다. 리버라치는 스콧을 자기 돈을 축내는 버러지나 약물중독자로 묘사한다.
싸움은 잦아지고 언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그러나 이미 리버라치의 소유물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스콧은 이 관계 안에서 어떤 종류의 성숙함이나 성찰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는 리버라치에게 어떻게든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 관계가 끝날 수 있는 시점은 그를 소유하고 있는 리버라치가 스콧을 지겨워하며 다른 소유물을 찾았을 때뿐인 것이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정확히 그렇게 끝난다. 소유물로서의 연애관계란 언뜻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폭력처럼 들리지만 결국 쌍방의 합의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언제나 한결같이 매우 일방적으로, 비참하게 끝난다.
월터 리버라치를 연기한 마이클 더글라스와 스콧 도슨을 연기한 맷 데이먼은 단연 이 영화의 백미다. 자신이 연기하는 실존 인물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이 배우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은퇴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소더버그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정말 은퇴할 것처럼 보인다.
맷 데이먼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경우를 언급하며 소더버그에게 은퇴를 말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더버그는 “이스트우드는 스토리텔러지만 나는 스토리텔러가 아니다”라는 말로 반려했다. 맞다. <쇼를 사랑한 남자>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소더버그는 이스트우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스트우드도 결코 소더버그가 될 수 없다.
허지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