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늘을 찌를 듯이 오르던 수도권 집값이 올 들어 용산구를 제외하면 비교적 조용하다. 그래도 인터넷을 보면 앞으로 땅이나 집값이 폭등한다고 난리인 곳이 여럿이다. 정부가 지정한 신도시와 혁신도시를 비롯해 한강 르네상스 지역 등 유력한 투자처는 꽤 많다.
현재의 부동산 전망은 여기서 그만. 이 코너는 과학을 다루는 지면이지 부동산을 다루는 지면이 아니다. 그래도 과학의 눈으로 봤을 때 2080년의 부동산 전망은 지금과는 꽤 다를 것이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한반도의 기후와 지형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아열대 국가로 변한 2080년 한반도에서는 어느 부동산에 투자해야 할까?
1.평지보다 구릉지를 사라
어느 부동산 책에서 아파트를 살 때 ‘평지’ ‘Flat’이라는 말을 강조한 걸 본 적이 있다. 캔 하나를 땅바닥에 놓아서 굴러가지 않아야 좋은 아파트 단지라는 것이다. 평지여야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도 쉽게 타고 산책도 편할 것 같다. 이른바 강남권이나 신도시 최고의 장점 중 하나는 평지라는 점이다. 그러나 2080년에는 사정이 다르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올라간다. 해수면은 2000년대 초부터 매년 0.1~0.6㎝씩 올라가고 있다. 기상청이 내놓은 비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르면 2080년에는 2007년보다 해수면이 무려 70㎝가 올라간다. 한반도에서 서해와 남해안 지역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제주도는 4분의 1로 줄어든다.
서울은 어떻게 될까? 강남권이 가장 위험하다. 평지가 많고 지세가 낮기 때문이다. 당장 물에 잠기지는 않더라도 결코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 도봉산을 중심으로 남산과 청계산, 관악산 등을 이은 산 지축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 집을 지어 손자에게 물려줘야 할까. 평지보다 구릉지다. 3층 필로티(건물 전체 또는 일부를 지상에서 기둥으로 들어올려 건물을 지상에서 분리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공간) 설계는 기본이다. 2층 필로티는 안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전세로 살고 있는 곳이 2080년에는 최고의 땅이란 말인가?
2.한강에서 멀찍이 떨어져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의욕적으로 한강 르네상스를 발표하면서 한강 주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지난해에 사려다가 놓친 서부이촌동 아파트가 눈에 아른거린다). 또 청계천과 양재천 복원을 통해 사람들은 하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대형 호수나 인공 호수에 대한 관심도 높다. 21세에 부자들은 수변 지역에 모여 산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2080년에는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해수면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흐르는 물소리가 좋아서 강 옆에 집을 지었다가는 언제 투발루 사람들의 운명을 쫓아갈지 모른다. 투발루는 태평양 한가운데 섬 국가인데 바닷물이 점점 차올라 나라 전체가 없어질 운명이다. 2080년이 되면 기후는 더욱 고약해진다. 전체적인 기온이 높아져 한반도는 지금보다 5℃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무더위, 폭우가 기본이고, 미국 뉴올리언즈를 초토화시킨 태풍 카타리나를 넘어서는 슈퍼 태풍이 한반도를 위협한다. 그렇다면 어디를 가야 하는가? 앞서도 말했지만 산으로 올라가라. ‘무릎 팍 도사’와 함께 산으로 가라.
3.최고의 땅 개마고원
산 중에서도 어디가 최고인가. 중기 투자처는 강원도다. 2080년이 되면 산악 지역을 뺀 서울과 대전, 동해안이 모두 후텁지근한 아열대 기후로 변한다. 그나마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 산악 지역이 지금 날씨를 유지할 것이다(인간은 진화하고 적응하니까 그때가 되면 아열대 기후에 익숙한 사람들이 한반도에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원도도 안심할 수 없다. 강원도에 사는 재미 중 하나는 스키인데 포근한 겨울 날씨 때문에 눈이 적게 내려 스키장도 문을 닫는다. 장기 투자처는 역시 개마고원이다. 2080년이면 통일돼 있지 않겠는가. 개마고원의 날씨는 적당히 포근하고 적당히 쌀쌀해질 것이다. 아오지탄광은 최고의 휴양지로 바뀔지 모른다. 전국을 야자수가 뒤덮고 있는 2080년이라도 한국 사람들은 역시 소나무를 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소나무는 기후에 쫓겨 북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역시 차세대 부촌은 용산도 강남도 판교도 아닌 개마고원이다.
4.아프리카 테마파크가 대박
돈 많은 울트라 부자들은 역시 부동산이라고 했다. 그런 분들이 쩨쩨하게 재건축 아파트 한 채 사놓고 시세차익을 노리겠는가. 대형 개발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노려야 한다. 그런 분들에게 최고의 투자 종목은 아프리카 테마파크다. 동물원에서 최고의 인기는 역시 열대 지역에 사는 녀석들이다. 커다란 코끼리와 기린, 코뿔소, 사자 등이 동물원에 마구 뛰놀아야 한다. 지금은 기후 때문에 아프리카 동물들이 제대로 뛰놀기 어려웠다. 그러나 2080년에는 다르다. 일단 기온이 아열대다. 종로에는 야자수와 바나나가 자란다. 우리에 동물 몇 마리를 가둬놓는 동물원이 아니라 아프리카 초원과 똑같은 거대한 테마파크를 지을 수 있다. 동북아 최고의 관광지가 될 수 있다. 아니면 한때 땅이었던 해안에 해상공원, 씨월드를 짓는다. 범고래가 묘기를 부리고 물개가 재롱을 부린다. 이제 번지점프가 익스트림 스포츠의 대표주자도 아니다. 따뜻한 물을 찾아 저절로 모여든 초대형 해파리와 함께 아찔한 수영체험도 즐길 수 있다. 사자나 범고래에게 뭘 먹이냐고? 찬물을 좋아하는 명태와 대구를 몰아내고 한반도 주변을 점령한 따뜻한 물의 왕자 오징어다.
단 부동산 투자자에게 반드시 당부할 말이 있다. 행여나 이 글을 읽고 현재 투자에 반영하거나 증손자를 위해 어딘가에 땅을 사두지 마시라. 이 글을 쓰는 기자, 주식 투자에서 8년의 장기투자를 통해 마이너스 80%의 수익을 거두고 집만 사면 값이 떨어지고 팔면 폭등하는 ‘투자의 저주’, ‘투자의 개미귀신’으로 불린다.
김상연〈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