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문제 예방~ 사후치료까지 서비스”
저출산, 이혼, 고령화, 청소년 및 노인 자살….
성장속도가 세계 수준을 자랑(?)하며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고민거리로 떠오른 문제들은 ‘가족’이나 ‘가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신없이 낳다보면 삼천리가 거지소굴’을 외치며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이고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면 정관수술까지 시켜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하라’란 주례사도 옛말. 이혼율이 급증해서 오랜만에 만난 부부를 보면 과거의 그 배우자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성적이나 카드빚, 혹은 신병을 비관해 10대부터 팔순 노인까지 목숨을 끊어 가족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좀더 확대하면 부모나 보호자가 있는데도 점심을 굶는 결식아동, 죽음에 이르기까지 잔혹해지는 가정폭력, 이혼 후 양육권까지 빼앗기자 살인마로 변신한 유영철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의 배후에 ‘가족’이 있다.
모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인 ‘또 하나의 가족’이나 모 그룹의 경우 ‘직원 가족 행복 극대화’를 경영이념으로 내세워 눈길을 끌고 CF마다 행복에 겨운 가족, 단란한 가정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요즘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훈훈한 대상이 아니라 가슴 답답하고 애물단지 같은 존재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은 ‘남의 집 안방 일’로만, 그리고 개개인이 해결할 일로만 여겨졌던 ‘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정부가 나섰다. 여성부는 지난 6월 23일 ‘여성가족부’로 새롭게 출범하며 그동안 보건복지부 등에서 맡던 보육업무를 비롯, 전반적인 가족문제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가족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 실현’을 다짐하며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1999년 출범 당시 200억 원 정도의 예산에 100여 명의 초미니부서였던 여성부에서 7000억 원에 가까운 예산과 400여 명의 직원으로 늘어났으니 슈퍼마켓에서 백화점으로 변모한 셈. 취임 6개월 만에 대한민국 가족문제의 해결사로 나선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54)을 만났다.
쟁쟁한 집안에서 태어난 공주(?)
과거 ‘여성부’란 명칭도 말이 많았다. 영어로 풀이하면 양성평등부(Gender Equality)였지만 “지금은 여성상위시대인데 왜 남성부는 없냐”라거나 “항상 직장 내 성희롱 등 직장여성 문제만 다룬다” 등의 비난도 받았다. 여기에 ‘패밀리’를 덧붙인 여성가족부의 출범 첫날, 민주노동당이 “정부부처의 명칭에 가족을 명시하고 지나치게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여성을 존엄한 인격과 시민권을 갖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구성원의 지위에만 가두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구성원에게는 낙인을 찍는 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요지의 논평을 내며 딴지를 걸기도 했다. 장 장관은 ‘오해’라고 강조한다.
“아마 우리 부의 정책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합니다. 과거 여성부는 요보호중심의 가족이나 자녀중심의 가족문제만 주로 다뤘지만 이젠 모든 가족에 대한 보편적인 일들을 다룰 거예요. 5대 핵심추진과제 역시 ▲새로운 가족문화 조성 ▲다양한 형태의 가족지원 확대 ▲가족친화적 사회환경 조성 ▲돌봄의 사회화 및 역할분담, 그리고 ▲가족정책 인프라 확충입니다.
이제 가족형태가 얼마나 다양해요? 1인가족,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국제결혼가족 등도 있고 혈연이 아닌 이들이 모여 살아도 가족으로 여기죠. 이런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어릴 때부터 가족개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 새로운 가족문화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또 이혼율 증가, 가족갈등 등 급격히 약화되는 가족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부부교육, 부모교육, 가족주기·형태에 맞는 교육도 실시하고 상담치료 서비스를 통해서 가족문제 예방에서 사후 치료까지 포괄적 서비스를 해나갈 예정입니다.”
아버지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파파쿼터 제도나 가족 중 환자가 있으면 휴가를 얻을 수 있는 부양자 휴가서비스 지원, 장애인·치매 등 중증질환자가 있는 가족에게 보호 스트레스를 줄여 가족 내 갈등을 해소해주는 가족휴식지원 시스템 등도 여성가족부에서 할 활동들이다.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편견이 심한 이들에게 장하진 장관은 오해받을 요소가 많다. 첫째 그는 남성우월주의자들이 싫어하는 여성운동가 출신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학자이지만 ‘한국여성정치연구소‘를 만들었고 전문분야 역시 여성정책과 여성고용이다. ‘여성노동자 인권을 보장하라’
‘호주제 폐지하라’ 등 시위현장의 모습이 매스컴에 주로 소개되어서인지 여성운동가는 가정도 없고 남성들을 원수로 여기는 ‘마귀할멈’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장 장관은 조선대 총장 출신인 김홍명 교수와 대학생·고교생인 두 아들 등 세 남자와 사랑을 주고받으며 탄탄한 ‘가정’을 이끄는 주부이다.
둘째 ‘공주병 환자’란 의혹(?)이다. 교수 출신, 한국여성개발원 초대 공채 출신 원장, 여성가족부 장관 등 화려한 타이틀은 물론 항상 어떤 자리에 임명될 때마다 공개되는 ‘화려한 가족사’가 의혹의 배경이다.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난 장 장관의 집안은 ‘천재집안’으로 소문났다. 본인은 “평범한 집안이며 특히 나는 더더욱 보통사람”이라고 말해 ‘진짜’ 보통사람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한다.
항일운동가인 할아버지를 비롯, 전직 장관인 삼촌(장재식)은 물론 동생들(고려대 경영대 장하성 교수, 광주대 장하용 교수, 장하원 열린우리당 정책실장)과 그 배우자까지 ‘박사’가 아닌 이들이 드물 정도이다. ‘과거사 논쟁’과 함께 친일파 조상이 밝혀져 곤혹을 치른 정치인이 많지만 장 장관의 집안은 가족들의 활동으로만 항일운동사를 써도 될 정도란다. 그런 뼈대있는 집안의 장녀에 본인도 박사 출신 장관이니 굉장히 잘난 척할만도 한데 ‘집안’ 이야기만 나오면 펄쩍 뛸 만큼 ‘좋은 집안 콤플렉스’(?)가 있고 언행도 소탈하다.
여성개발원 원장 재직시에는 돈을 많이 벌어 CEO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원인지라 여성부 등에서 용역을 주는 과제만 주로 연구했지만 그는 직접 부처나 단체를 찾아가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연구비를 받아왔다. 제일 먼저 경찰청의 문을 열었다.
“신문기사를 꼼꼼히 살펴보니 당시 이무영 경찰청장이 여성마인드가 있는 분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보비란 애칭으로 불리며 모든 여성에게 사랑받는 영국의 경찰처럼 우리도 여성적인 것을 활용해 친절하고 다정한 이미지로 개선해야 한다는 제안서를 만들어 경찰청을 찾아갔죠. 2건에 1억 원의 첫 용역을 따왔습니다. 경찰의 날 행사도 우리와 함께 했어요. 그후 국방부 등 금녀의 영역으로 알려진 부처와 공동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학창시절, 아주 조용한 모범생이었다”고 스스로를 묘사하는 장 장관은 대학시절엔 동기인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 최영희 청소년위원장과 더불어 ‘새얼’이라는 지하서클을 만들어 신문을 발간하는 운동권 학생이었고 이대에서 ‘금관의 예수’ 공연을 마치고 도망다니던 시인 김지하를 집 근처에 숨겨줬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적도 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임권택 감독이란다. 가난한데다 남북 이데올로기에 짓밟힌 환경,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임 감독이 서울대 출신의 정일성 촬영감독과 호흡을 맞춰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걸작들을 내놓은 장인정신을 존중한단다.
‘안 되는 현실’을 인정하는 낙천주의자
다른 근엄한 표정의 장관들과 달리 장하진 장관은 항상 웃는 얼굴이다. 모든 사진에도 미소를 짓고 있다. 억지로 지어 보이는 연출된 미소가 아니라 긍정적인 성격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표정인 것 같다.
자신도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인정한다. 여성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호주제 폐지 통과, 성매매 집결지 화재사건 등 일도 많았고 급성간염으로 3주간 입원해 업무공백도 있었고 ‘여성가족부’로 규모와 일이 엄청나게 늘었는데도 늘 생글생글 웃는다. 취임 100일째를 맞는 인터뷰에서도 “비판도 달게 받고 60점만 맞겠다”며 목표점수도 소박하게 잡았다. 평소 여성부와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보수의 상징 성균관을 직접 찾아갔고 집창촌을 탈출한 성매매 여성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앞으로 직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또 보육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제일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뭐냐”는 질문에 “별로 없다”고 한다.
“원래 걱정을 잘 안 하고 아주 낙천적이에요. 일단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안 되면 ‘역사적 현실’이라고 인정해요. 일이 잘 안 풀려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역사는 천천히 가는 것이다’란 말을 주문처럼 되새깁니다. 만일 역사가 순조롭게 빨리 흐른다면 왜 지금까지 굶는 사람이 있고 전쟁은 왜 안 끝나겠어요. 여성계가 50년간 소리 높여 주장했던 호주제 폐지도 21세기가 되어서야 해결되었잖아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길을 걷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도 “운이 좋았다”는 낙천적인 대답을 했다. 자신보다 훨씬 유능하고 똑똑한 여성도 많지만 자신은 운이 좋아서 장관직까지 올랐단다. 하긴 리더 가운데 머리 좋은 지장보다 덕이 있는 덕장, 또 덕장보다 복많은 복장이 더 낫다고 하지만 운동권 출신의 장관이 ‘운이 참 중요하다’고 말하니 공감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장하진 장관은 임기 내 가장 이루고 싶은 일 가운데 ‘보육문제 해결’을 첫째로 꼽았다. 만 다섯 살까지 350만 아동의 50%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싶다는 것. 저출산의 원인도, 고학력 여성인력의 활용이 제대로 안 되는 요인도, 여성 경제 활동이 부진한 이유도 대부분 보육의 어려움 때문. 그래서 2008년까지 만 5세 이하의 영유아 가운데 절반이라도 국가에서 재원을 지원해줘 마음놓고 제대로 된 시설에 아이를 맡기거나 위탁할 경우 지원금을 주겠다는 복안이다. 시설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빵점엄마라고 고백한다. 남편은 조선대, 자신은 충남대에서 근무해 전라도와 충청도를 오르내리느라 집을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정했지만 일하느라 바빠 두 아들에게 알뜰살뜰한 엄마는 아니었다는 것.
전국민의 가족행복을 책임지는 여성가족부 장관의 가족사랑법이나 행복비결은 뭐냐는 질문에는 “각자 알아서 독립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남편인 김 교수는 장 장관이 여성개발원 원장으로 3년간 재직할 때 집안일로 사무실에 전화를 건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다른 직원들이 놀랐단다. 그러더니 소녀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남편이랑 동갑인 한 교수를 얼마 전에 만났더니 오는 9월이 환갑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남편 생일이 지난달이었는데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사실 뭐 요새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두 아들도 좀 무뚝뚝한 성격이라 다들 그러려니 하고 마음 편하게 살아요.”
장하진 장관이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 밥상은 꼭 직접 챙기고 뜨개질이 취미여서 애들 스웨터는 꼭 떠서 입힌다”라거나 “남편이 아침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결혼기념일에 장미 100송이를 받았다”고 했으면 얼마나 열등감과 좌절감에 시달렸을까. 김 교수와 같은 달인 내 남편 생일을 잊지 않았다는 자부심에 괜히 으쓱해졌다.
가족사랑과 행복에 정답이나 공식은 없다. 다만 열악한 제도와 인식 때문에 빼앗겼던 ‘가족끼리 행복해질 시간’을 장 장관이 앞장서서 찾아주겠다니 기대해봐야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굳세게 밀고 나갈 그의 낙천성을 믿으면서….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