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누구 때문에 사는가

2005.03.15

'걸어다니는 병동' 상태로 장수하는 비결… 주치의-수녀 5총사 일등공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로운 부도옹(不倒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마다 중병설, 사망설에 시달리다 1997년 93세의 나이로 타계한 중국의 혁명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처럼 중병을 앓고 회복되기를 되풀이하는 까닭이다.

1920년 5월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난 요한 바오로 2세(85)의 몸 상태는 '걸어다니는 병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2년 악성결장 수술, 94년 대퇴골 골절로 인한 인공보철 수술을 받은 데 이어 66년 시작된 파킨슨 병은 96년 이후 악화돼 왼손과 왼쪽 얼굴 근육이 경직되기에 이르렀다. 2002년부터는 왼쪽 무릎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고 올들어 지난 2월 25일에는 마침내 호흡곤란 증세까지 겹쳐 기관절개 수술을 했다.

뿐만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목숨을 장담하지 못했을 정도로 절박했던 사건사고도 끊이질 않았다. 먼저 1981년 5월에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터키인 매흐메 알리가 쏜 총에 맞아 배와 가슴에 상처를 입었다. 93년 11월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 관계자들을 접견중 미끄러져 어깨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고 이듬해 4월 성베드로 성당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우측 대퇴골이 부러졌다. 99년 6월에도 폴란드 바르샤바의 옥외미사를 집전하러 나가다가 쓰러져 오른쪽 관자놀이를 세바늘이나 꿰매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외국 순방 빠지지 않고 동행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고령과 노환에도 불구, 매번 병상에서 떨치고 일어나 후임자에 대한 세간의 논의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비결은 물론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신(神)의 은총'이겠지만 교황 곁에서 수십년간 그림자처럼 보필해온 사람들의 역할도 적지 않다는 게 외신의 분석이다.

AFP통신은 지난 2월 26일자 보도에서 만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진정한 건강상태를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교황 주치의 레나토 부조네티 박사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백발의 부조네티 박사(81)는 자신도 교황만큼이나 나이를 먹었지만 교황이 주교이던 시절부터 진심을 다해 보필해온 수족과 같은 존재다. 로마 교황청의 실질적인 2인자인 안젤로 소다노 교황청 국무장관에 따르면 지난달 초 바오로 2세가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을 때 교황을 설득해 로마 게멜리 병원에 긴급 입원시키기도 했다.

부조네티 박사가 처음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것은 피격사건이 발생한 81년 교황청 공보지 '오세르바토레 로마노'가 교황의 근황을 보도하면서부터다. '오랜 고통의 항해'라고까지 불렸던 위기상황에서 교황은 결국 깨어났고 두꺼운 안경을 쓴 부조네티 박사는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그는 104차례에 걸친 교황의 외국 순방을 거의 대부분 동행하게 된다.

물론 부조네티 박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교황을 직접 치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교황 치료를 위해 세계적인 전문의 중에서 최선의 인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교황의 파킨슨 병 치료를 위해 최신 치료법을 연구중인 전문의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

통신은 교황 비오 12세(1939~1958 재임) 주치의였던 갈레아지 리시 박사와 부조네티 박사를 비교하고 있다. 리시 박사는 죽음을 앞둔 비오 12세의 사진을 찍어 언론에 팔았다가 불명예스럽게 교황청을 떠나야 했지만 부조네티는 취미가 사진 찍기인데도 평생 동안 교황과 관련해 단 한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직무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실제 전세계로부터 로마로 몰려 장사진을 치고 있는 각국 신문-TV 기자들은 게멜리 병원 안과의사로 있는 부조네티의 아들에게조차 별다른 논평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황 일상생활 빈틈없이 챙겨
부조네티가 교황청 밖에서 사는 '바티칸의 바깥 식구'라면 교황과 같은 폴란드 출신의 다섯 수녀는 교황과 함께 숙식을 같이 하며 봉사하는 '바티칸의 안식구'다. 가톨릭 신도들에게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에 가까운 존재지만 교황도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먹고 입고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때문에 그의 뒤에는 그가 크라코프 교구 주교일 때부터 헌신해온 토비아나와 제르마나, 페르난다, 마틸다, 에우프로시아나 등 '예수 성심(聖心)의 종' 수도회 소속 다섯 수녀가 있다.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교황의 일상생활을 빈틈없이 챙겨주는 다섯 수녀의 존재에 대해 교황청 내부에서는 "교황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라고 부른다.

사려와 순종의 귀감인 이들이 다른 수녀들과 다른 점은 남보다 '약간 높은' 두건과 맡은 분야의 탁월한 솜씨뿐이다. 제르마나 수녀는 뛰어난 요리 솜씨로 교황의 귀빈 접대를 도맡는다. 시금치 등을 이용한 그녀의 채소 파이는 80년대 이탈리아 대통령이던 고(故) 산드로 페르티니 대통령을 감동시켰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성탄절 전야 만찬에 나오는 폴란드식 잉어 요리도 여러 사람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교황의 폴란드 친구들이 바티칸을 방문할 때면 고기나 과일로 속을 채운 피로슈키와 파테(고기파이), 치즈 케이크, 그리고 라벤더 향유에 잰 생선 요리가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토비아나 수녀는 병원 임상은 거치지 않았지만 학위를 받은 의사다. 그녀는 부조네티 박사와 함께 교황의 건강을 돌보고 있는데 사람들은 "교황의 시선만으로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정도"로 교황과 가깝다고 말한다. 교황이 호흡곤란으로 게멜리 병원에 입원한 이후 토비아나 수녀와 제르마나 수녀는 병원 10층에 위치한 교황의 스위트 병실에 각자의 방을 갖고 기거하며 밤낮 병상을 지켰다.

페르난다 수녀는 음식 재료 담당이다. 그녀는 로마 외곽에 있는 교황의 여름 별장 카스텔간돌포에서 과일, 채소, 우유 등을 가져와 신선한 재료가 떨어지지 않게 한다. 교황의 의복을 책임지는 이는 마틸다 수녀다.
교황의 개인 서신은 에우프로시아나 수녀가 맡아 처리한다. 이들 다섯 수녀가 속한 '예수 성심의 종' 수도회는 1894년 폴란드인 요제프 세바스티안 페사르 신부가 창설했다. AFP 통신은 이와 함께 교황의 두 수행비서와 스태니슬로 디지위츠 같은 대주교들, 시종 안젤로 구겔 등이 교황의 형제자매 같은 또 다른 '바티칸의 안식구'들이라고 전했다.

국제부/이상연기자 lsy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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