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이냐, 대한바둑협회냐

2005.02.22

[바둑산책]한국기원이냐, 대한바둑협회냐

국민여론 조성은 그동안 한국기원도 지속적으로 공을 들여온 부분이니 길게 말할 것이 없다. 문제는 명칭을 바꾸는 것인데, 이것은 논란이 예상된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기원'이라는 명칭은 사실 맞지 않는 면이 있다.

'한국기원'은 '일본기원'이라는 명칭의 직수입품일 것인데, 그후 어떤 경로를 거쳤든 우리는 한국기원이나 일반 시중 기원이나 모두 똑같은 '기원(棋院)'이다. 일본에선 일반 기원은 '기소(棋所)'라고 한다. 일본은 구별이 되는데, 우리는 구별이 안 된다. 중국도 '중국기원'이 있고 '중국위기협회'가 있다. '위기(圍棋)'는 물론 '바둑'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름이나 간판을 바꾸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이름 자체보다는 거기에 내재하는 '역사적 사연'이 의미 있다는 얘기다. 특히 조남철 9단 같은 경우는 '바둑협회'라는 명칭에 상당한 거부감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해가 된다. '한국기원'은 이름이든, 건물이든 개인적으로 조9단 자신의 인생과 인생의 신산고초와 영욕, 그런 것들이 모두 담겨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라는 것이 칼로 금을 긋듯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어느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현대바둑의 경우는 좀 특이한 사례여서 '광복 후, 조남철로부터'라는 것이 이의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 아닌가.

역사적 함의를 살려 전하고 선구자를 예우하는 의미에서 계속 '한국기원'으로 가느냐, 시대의 변화에 맞춰 '체육'에 편입되기 위해 대한체육회가 요구하는 '대한바둑협회'로 가느냐, 숙고할 문제다.

하긴 '협회'라는 것도 그렇게 시대에 맞는 이름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전문기사협회'나 '전국기원협회' 같은 것이라면 모르지만 '바둑협회'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야구협회, 농구협회가 있지 않으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문학협회, 음악협회 같은 것은 없지 않은가. 이것도 아직 바둑을 스포츠로 생각하지 않고, 인문 분야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바둑문화원' 같은 이름을 추천하고 싶다. 체육 종목으로 들어가는 것에 바둑의 미래가 달려 있으니 대한체육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지상명제이며, 따라서 대한바둑협회로 꼭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찬반을 묻는다면 선뜻 찬성표를 던지기는 어렵다. 한국기원이 그냥 한국기원으로 있을 경우, 대한체육회에 열심히 구애할 이유는 없다. 크기와 역량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한국기원도 대한체육회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체니까. 호선이다. 외롭고 고달프더라도 독자적인 위상으로 가느냐, 좀더 잘 살아보기 위해 후손들에게 집칸이라도 변변히 물려주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단체 밑으로 들어갈 것인가. 각자 생각이 다르니 내 것이 정답이라고 우기지는 못하겠다. 다만 후자의 길은 어쩐지 확실한 장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불안한 현재에 등을 떠밀린, 조금은 체념도 섞인 일인 것 같고, 그래서 쓸쓸하다.

아아, 우리는 정말 모두 잘 살고 싶다. 그러나 무엇이 잘 사는 길인지,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누가 좀 가르쳐주면 좋으련만. 

[바둑평론가 이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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