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범죄 패가망신사

2005.01.18

어머니와 어린 아들 단둘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집안은 늘 가난했다. 어느날 아들이 친구의 가방을 훔쳐와서는 "엄마, 이 가방 어때요?"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꾸짖는 대신 칭찬을 했다. 아들은 외투도 훔쳤으나 어머니는 칭찬했다. 몇년 뒤 청년이 된 아들은 보석을 훔쳐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어머니는 역시 아들을 혼내지 않고 칭찬했다. 이에 신이 난 아들은 값비싼 물건을 훔치다가 경찰에 붙들렸다. 감옥으로 가기 전 아들은 어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어머니 귀를 물어뜯었다. "아야! 이게 무슨 짓이냐?" 어머니는 아들을 나무랐다. "제가 처음 가방을 훔쳤을 때, 어머니가 지금처럼 절 야단치셨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명작동화 '어린 도둑과 어머니'의 줄거리다. 이 동화는 부모가 할 일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부모임을 망각한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한통속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족범죄 패가망신사

모자지간이어서 의심 안 받아

지난해 11월 대구경찰청은 경북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한 빈집털이 뒤 주택방화 사건의 범인 2명을 붙잡았는데 조사결과 이들은 모자지간으로 드러났다. 어머니 김모씨(68)와 아들 박모씨(24)는 이날 대구 남구 이천동 대로변에서 몽타주를 대조하며 불심검문중이던 경찰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도망가다가 붙잡혔다. 이들은 9월 28일 오전 11시 20분쯤 대구 서구 비산동 김모씨(66)의 빈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불을 지르는 등 대구 인근 지역에서 절도 뒤 주택 방화사건을 총 21차례나 저지른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던 처지였다.

왜 모자가 함께 범행을 저질렀을까. 이들은 호적이 없었다. 경찰의 지문대조에서도 이들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호적이 없어서 취직을 할 수 없었다. 그동안은 아들의 막노동과 친부의 생활비 보조로 그럭저럭 생활은 꾸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아들 박씨가 막노동 품삯을 떼이면서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무호적자라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다. 이들은 포장마차를 차리면 먹고 살 수는 있겠다는 생각에 사업자금을 위해 범행을 모의했다.

서로 먼저 범행을 제의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누가 먼저 범행을 제의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들 모자는 작은 범행부터 시작했다. 방을 보러다닌 뒤 빈 상자를 나르며 이사를 하는 척하다가 "이삿짐 차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거짓말로 집주인으로부터 5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을 빌려 사라지는 수법을 사용했다. 모자지간이었기에 전혀 의심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점 대담해졌다. 전-월세 광고 전단을 보고 공중전화를 이용해 집이 비었는지 확인한 뒤 빈집을 털기 시작했다. 아들이 담을 넘어 문을 열면, 어머니가 같이 침입해 물건을 뒤지는 식이었다. 어렸을 때 장판이 타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아들이 불을 지르면 범행 뒤 남은 흔적까지 타버릴 것이라고 생각해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20여 차례, 이들은 TV에서 집이 불타버린 피해자가 통곡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에는 비슷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고는 흔적을 감추려고 식용유와 간장, 샴푸 등을 뿌린 뒤 도주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모자의 생활고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며 "범행 뒤 불만 지르지 않았더라도 여론의 동정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전했다.

최근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자녀와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혈연만큼 끈끈한 게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6일 경북경찰청에 붙잡힌 나무도둑 일가족이 좋은 예에 속한다. 이들은 2003년 10월부터 붙잡힐 때까지 9차례에 걸쳐 경북 포항시 지역 개인 임야에 기중기 등을 몰고 들어가 30년생 소나무 74그루(1억5천만원 상당)를 훔쳐 팔아넘겼다. 이모씨(47)가 아들과 아내 등 가족을 동원한 것은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무 도둑 전력이 있던 그는 이전에 일용직 근로자를 동원해 나무를 훔치다가 협박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나무 도둑질은 단시간에 돈이 되지도 않는다. 나무를 훔쳐와서, 일정한 장소에 심어서 모아두었다가 조경업자에게 한꺼번에 팔아넘겨야 한다. 따라서 '보안'이 생명이다. 이런 이유로 식구들을 동원한 그는 군 입대를 기다리던 아들에게는 운전을 맡기고, 아내는 망을 보게 했다.

[사회]가족범죄 패가망신사

세살짜리 어린아이까지 끌어들여

지난해 5월 울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음란사이트 일제단속에 적발된 김모씨(50)도 마찬가지다. 음란사이트를 운영해본 그는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음란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경찰에 단속됐다. 명의를 빌려준 '바지 사장'을 위해 변호사 선임비도 대고 사식을 넣으며 뒷바라지했는데도 진짜 사장이 김씨라는 사실을 경찰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이후 그는 믿을 것은 가족 밖에 없다고 생각, 2003년 8월 동서 최모씨에게 접근했다. 동서의 명의를 빌린 김씨는 음란사이트 8개를 만들었다. 김씨는 아들과 함께 웹사이트 관리를, 최씨와 최씨의 아들은 고객관리를 담당했다. 김씨와 최씨의 아들은 군 제대 이후 취직이 안돼 아버지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철부지 어린아이를 범행에 이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형 할인점에서 고급 양주를 전문적으로 훔쳐온 한 부부는 도둑으로 의심받지 않으려고 세살배기 어린아이를 내세웠고, 한 주부는 백화점에서 훔친 옷이 담긴 쇼핑백을 일곱살짜리 딸에게 건네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런 범죄에 대해 "보통 사람이라면 생활이 어려워 범행을 결심해도 자녀 몰래 저지를 텐데, 자녀를 동원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기본적인 도리까지 망각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어머니는 자녀들이 범죄의 늪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난 12월 6일 절도범의 어머니 양모씨(68)는 아들이 훔쳐 숨겨둔 현금과 보석이 든 종이상자를 들고 서울 중부경찰서를 찾았다. 절도범 아들은 교도소에서 나온 지 수개월 만에 억대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한달 전쯤 경찰에 붙잡힌 상황이었다. 아들이 구속된 뒤 아들 방을 치우다가 상자를 발견했다는 어머니 양씨는 "아들이 10살 때 가세가 기울어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며 "아들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며 아들을 사람으로 만들려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모든 부모가 부모로서의 도리를 먼저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나아지지 않는한 계속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정재용 기자 politika9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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