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2004.06.10

탈레반 당의장... 몇 가지 오해

하루 4시간밖에 못 잘 만큼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리고,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타인의 시각으로 해석되고 낱낱이 알려지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장마철처럼 하염없이 비가 내리던 5월 28일 아침, 과일들이 가득한 영등포 청과물 시장 안 열린우리당 당사에서 신기남 당의장을 만나고 그런 의문이 들었다. 경기고 서울법대 사법고시란 엘리트코스를 달려왔고 아름다운 부인과 세 아이를 둔 다복한 가정의 가장, 게다가 언제라도 개업할 수 있는 변호사 자격증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천당갈 확률까지 높은 그는 현재 집권여당의 최고자리인 당의장이다. 정치 입문 8년 만의 초고속 승진이다. 신의 특혜가 과한 건가? 모든 것을 다 갖춘 듯한 그인데 표정은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김혁규 총리 문제, 보궐선거, 개각, 승계가 아니라 다시 선거로 당의장을 뽑을 전당대회를 치를지 말지 등 현안이 가득했지만 민감한 정치이야기는 묻고싶지 않았다. 준비된 답변이 나올 테고 그것 역시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정치적 견해를 말해달라는 것은 "점심 메뉴로 뭘 먹을까"를 물어보는 것과 같다. 아무리 짬뽕이 먹고 싶어도 사주는 사람이 "그냥 자장면으로 통일하지" 하면 따라야 하고, 모처럼 팔보채가 먹고 싶어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자장면으로 만족해야 하듯 `개인적 철학과 소신이 담긴 견해'를 피력해도 동료 정치인이나 더 웃분의 의견과 조율되지 않은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가 나가면 "기자들이 왜곡했다"고 둘러대기도 한다. 그래서 신의장이 받은 오해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너무 강성 이미지로만 비춰지는 것 같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개혁성향은 있지만 강경파는 아니다. 내가 강성이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정치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미친 상태여서 지극히 온당한 주장을 일관되게 해온 내가 상대적으로 강경해 보였을 뿐이다. 파벌과 보복의 정치를 하지 말자, 돈 없으면 안 되는 정치나 출생지로 나눠 원수같이 싸우는 증오의 정치는 하지 말자고 진언해도 먹혀들지 않아 국민에게 큰목소리로 호소했다. 원칙에 어긋나면 보스에게도 대들었다. 그래서 얻은 `탈레반'이란 애칭은 마음에 든다. 치열하게 원칙을 준수해왔음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다. 신기남은 개혁파란 것은 오해가 아니라 정해, 바른 판단이다. 또 술도 잘 마시고 울기도 잘 하고 많이 웃는데 신문방송에는 꼭 무뚝뚝하거나 화난 듯한 표정만 나오는 것도 불만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줄 거라고 했다. 성향이 다른 당원들을 다독거리고 야당과도 소통하며 상생의 정치를 보여주면 강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포용력이나 조화력도 갖췄음이 드러날 것이란다.

또 초고속 승진, 정치인으로서 연륜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도 억울하다고 했다. 기간은 짧지만 큰 보폭으로 빠르게 달려왔고 한시도 머물거나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집권당 최고지도위원을 두 번 하고 전국 규모의 선거에 도전해서 인정받은 그에게 정치적 나이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낭만파 정치인... 지금이 삶의 절정이다.

그렇다면 정작 자신이 생각하는 신기남은 어떤 사람일까. 3가지 형용사로 자신을 묘사하라고 했더니 그는 개혁적, 낭만적, 아웃사이더란 단어를 선택했다.

"항상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나야말로 진짜 낭만파다. 서울대 법대에서도 유명한 비고시파였다.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청년이었고 친구들과 술마시기 대회에 나갈 만큼 술과 벗을 좋아한다. 야구부에서도 활동했고 태권도부장이었다. 하지만 항상 내 원칙대로 살아서 다소 아웃사이더였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그의 홈페이지에는 학창시절 사진이 올려져 있는데 대학 때까지도 매우 유순한 얼굴이다. 평화롭던 시절, 일자였던 그의 눈썹이 이제 날카롭게 삼각형으로 변한 것은 그만큼 눈썹을 치켜세우며 핏대를 올릴 일이 많아서일까. 하지만 낭만적인 성격이 아주 없어지진 않은 것 같다. 집권여당 최고책임자인 그의 홈페이지에는 연애시절은 물론 부인의 처녀시절 사진과 "참 예뻤다"란 찬사까지 올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현재 정신적-육체적으로 정점에 올라 있다고 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이 생의 피크라는 것을 느낀단다. 이런 시점에 당의장을 맡은 것은 매우 흡족한 일이다. 마흔세살에 정치에 입문한 그는 "더 일찍 정계에 들어와 트레이닝을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군 장교 생활, 외국 유학, 변호사, 방송진행 4년 등의 풍부하고 폭넓은 사회경험으로 이미 준비된 정치인이었다"며 "정치인으로는 연륜이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 역시 오해"라고 주장했다.

다만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외국의 정치인들처럼 30대에 정치를 시작했을 거란다.

52세인 현재 당의장, 대권까지 충분히 꿈꿀 그에게 좀 미안한 질문을 했다. 지금이 피크라면 곧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만 남았냐고. 그는 잠시 얼굴이 굳어졌지만 곧 평온을 되찾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겐 변호사가 제1의 인생, 정치인이 제2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서 더 할 일이 없다면, 내 능력이 국민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면 당연히 떠날 것이다. 빨리 정리해서 제3의 인생을 살 거다. 그리고 제3의 인생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아마 철학과 예술, 여행으로 가득찬 또다른 절정기를 맞을 것 같다. 여행을 하며 글을 쓰는 여행작가가 되지 않을까?"

해묵은 숙제를 내가 하겠다

고수익을 올리는 변호사에 TV에 출연해 대중적 인기도 누리며 평화롭게 살 수도 있던 그가 왜 탈레반 정치인이 되었을까. 그리고 당의장이긴 해도 보궐선거를 포함해서 할 일은 가득한데, 정작 겉으론 동지여도 속내는 적으로 가득한 정치판에서 외롭지 않을까. 갑자기 반장이 되었는데 반 친구들은 천방지축 제 주장만 하고, 환경미화 등 숙제는 가득하고 더구나 선생님은 "이번에 얼마나 잘 하는지 네 리더십을 보겠다"고 하는, 그런 막막한 심정이 아닐까.

"나의 개혁적 성격이 정치에 뛰어들게 했다. 변호사 출신답게 바른 법을 만들고, 제대로 정치를 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 어떤 이들보다 국민의 지지가 중요하고 그들에게 칭찬받고 싶다. 특히 네티즌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어 전혀 외롭지 않다. 언제라도 벌거벗고 국민 앞에 나설 용기와 자신도 있다.

또 당의장이 되어 언론개혁, 사법개혁을 강조했는데 민생은 안 돌보고 그 분야만 개혁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만의 주장도 아니다. 언론-사법개혁은 이미 수십 년간 논의만 되고 수렴되지 않은 해묵은 숙제들이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그 숙제를 이제 깨끗하게 해치우자는 것이다. 청소를 해야 새 집을 짓듯 진정한 개혁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개혁 역시 정치적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자율적으로 제안하고 방안을 찾도록 시장논리에 맡길 거다."

그는 변호사답게 말을 잘 했고 정치인답게 할 말 안 할 말을 골라 말했다. 하지만 탈레반이란 별명처럼 그의 말에는 `간이 쎈' 표현이 많았다.

하루 4시간 자는 잠조차 악몽에 시달려 중간에 깨는 적이 많다는 신 의장. 그래서 회의 도중에 졸기도 하지만 자신을 졸게 만드는 지루한 회의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신의장. 그가 악몽을 꾸지 않고 평화롭게 잠들고, "더 이상 내가 할 일이 없을 만큼 나라가 안정적이다"라며 흔쾌히 여행작가로 변신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날이 대한민국도 행복한 날일 테니까.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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