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질병 너머 생물학의 다양성을 위한 소고

김우재 낯선 과학자
2025.07.07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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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들에겐 기분 나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생물학자 대부분은 자유롭게 연구주제를 고르지 못한다. 물론 연구비와 논문 따위 상관없이 ‘안드로메다 행성에 존재할지도 모를 원숭이를 닮은 생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연구는 연구비 지원은커녕 출판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좀더 현실적으로, 초파리 날개 무늬의 진화 역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연구를 상상해보자. 다윈 이후 이어진 생명의 장대한 진화사를 밝히는 이 주제에 현대 생물학계가 부여하는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 과학계, 유행의 노예가 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연구는 결코 큰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할 것이고, 혹시 그 연구가 ‘네이처’, ‘사이언스’처럼 명망 있는 학술지에 실릴지라도, 곧 잊히고 말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선 이런 연구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마 한국에선 거의 확실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아예 이런 연구가 시작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유행을 좇기에 바쁜 한국 생물학자들은 한가하게 초파리 날개의 진화를 연구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줄기세포, 암생물학, 인공지능 생물학처럼 거창한 연구주제를 선호하며, 실제로 대부분의 생물학자가 유행과 대형 연구과제를 따라 연구주제를 바꾼다.

한국에선 패션과 음식에만 유행이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생물학자로 살아남으려면, 진지하게 유행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 유행의 주제는 대부분 미국에서 온다. 미국에서 뇌과학이 뜨면 한국도 따라하고, 미국에서 장내 미생물 연구가 유행하면 한국도 덩달아 뛰어드는 식이다. 미국 대통령 앞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했던 윤석열은 탄핵당하기 직전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2500억원짜리 연구개발(R&D) 사업을 기획했다. 보스턴 바이오 스타트업과 한국 의생명과학자들이 협업해 바이오 난제를 해결한다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삼성과 현대차도 미국에 공장을 짓고 엄청난 돈을 퍼주는 마당에 바이오산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대통령이 2500억원을 퍼주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 수 있다. 무용 전공 교수가 디지털 치료제로 수백억원을 지원받는 한국에서 대통령의 미국 사랑에 누가 감히 딴지를 걸 수 있었겠는가. 물론 각국이 민감한 특허를 보호하며 경쟁하는 바이오산업 분야에서, 도대체 바이오동맹이라는 게 어떻게 가능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일 수는 있다. 아주 가까운 예로, 코로나19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기술에 걸려 있는 특허가 과연 이런 국가 간 바이오동맹으로 만들어진다면, 미국은 그 특허를 흔쾌히 한국에 양보해줄까. 혹은 이렇게 개발된 기술의 특허를 과연 바이오기업이 양보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기획 덕분에 한국의 과학기술이 지금처럼 후퇴한 것은 아닌지 정치인과 관료들은 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내부자들이 만든 관료주의의 가두리 양식장

다시 묻자. 현대 생물학자가 자유롭게 연구주제를 고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이미 대부분의 연구주제는 국가과제가 정한 주제에 종속돼 있고, 이 국가과제들은 내부자들, 즉 과기정통부, 기획재정부 관료와 그들과 결탁한 정치인, 정치과학자들이 밀실에서 정한다. 즉 한국 생명과학 연구비의 대부분은 이들 소수가 밀실에서 결정한 아주 편향된 주제들에 한정돼 있고, 이 주제를 벗어난 연구들은 지원받지 못하거나 아주 적은 연구비로 연명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 밀실의 내부자들이 지원하는 생물학의 주제 대부분은 의학, 그중에서도 질병 연구에 국한돼 있다. 그 이유를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 연구들이 주로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하는 주제들이며, 연구비 선정에서 미국의 유행을 따라하는 전략은 안전하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책임질 일을 만들기 싫어한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도전적인 과제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변해봤자, 관료 입장에서 그런 과제의 실패는 본인의 책임으로 돌아올 뿐이다. 한국 연구개발비가 이런 보수적인 내부자들에 의해 지배돼왔기 때문에, 한국 연구개발 과제는 대부분 성공 과제들뿐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관료주의를 빼곤 이 찬란한 실패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

생물학이 의학의 몇몇 분야, 특히 암생물학이나 줄기세포 혹은 치매와 같은 몇몇 질병에 종속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저술하던 19세기 말만 해도, 생물학자들은 다양한 생물종을 연구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생쥐를 중심으로 인간의 특정 질병에 대부분의 연구주제가 할당되기 시작한 건 철저히 미국에서 기원한 역사다.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분자생물학이 태동하면서 미국은 국립보건원을 중심으로 하는 의학 중심의 생물학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고, 생물학 연구비의 대부분이 바로 이런 의학 기반의 연구에 주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과학기술연구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던 미국 정부를, 공학자 버니바 부시가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라는 보고서로 설득했던 역사가 이런 기반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버니바 부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기반이 물리학이었음을 지적하며, 이젠 생물학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질병 치료라는 근사한 명분이 놓여 있음을 주장했다. 생물학에 지원하되 인간질병 치료라는 거대한 사명을 내걸 수 있다면, 과학기술이 전쟁의 도구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고, 국민의 세금으로 합당한 연구를 지원한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 인간질병 중심의 생물학은 그렇게 세계대전 직후, 미국적 실용주의의 끝에서 탄생한 생물학의 한 갈래일 뿐이다.

다양성이 훼손된 현대생물학의 비극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구하던 시절, 연구비 신청서에는 반드시 연구의 응용 가능성에 대한 항목이 들어 있었다. 초파리 교미 시간을 연구하던 나에게 이 항목은 난감한 주제였다. 초파리 교미 시간을 연구하면 동물이 몇 분의 시간을 어떻게 측정하는지를 유전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신경회로와 메커니즘이 인간에까지 보존돼 있을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생물학자들은 언젠가부터 모든 유전자의 기능이 인간에 보존돼 있는지 묻는 일을 무슨 당연한 일인 것처럼 취급하지만, 반대로 인간 유전자의 기능이 초파리나 꿀벌에 보존돼 있는지를 묻지는 않는다.

찰스 다윈이 인간의 지위를 존재의 대사슬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생물학자들은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의 위계적인 구조 속에서 인간을 사고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가장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있어야 할 생물학자들이 가장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대 생물학의 몇몇 질병중심의 연구행태는 진정한 비극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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